포도재배는 향미 농사

김준철의 와인교실(7)

 

포도재배는 향미 농사

 

김준철 원장 (김준철와인스쿨)

 

 

와인의 맛은 0.1%도 안 되는 향이 지배

김준철와인스쿨(원장)

우리가 먹고 마실 때, 대부분은 코로 들이쉬면서 느끼는 것을 냄새라고 하며, 입안에서 코로 전달되어 느끼는 것을 맛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이것도 냄새다. 이것을 입에서 느끼는 냄새라고 구분할 수 있는데, 옥스퍼드 사전에는 이것을 ‘향미(Flavor)’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향미는 후각의 도움을 받아서 느끼는 물질의 맛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맛이란 혀에서 느끼는 것이 아니고 코에서 느끼는 것이다. 와인 역시 0.1%도 안 되는 향이 후각을 지배하면서 맛을 좌우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고급 와인 생산을 위한 포도재배는 ‘향미의 농사’라고 묘사되고 있다.

 

야생에 가깝게 재배해야

와인용 포도는 옛날부터 기름진 토양에 심지 않았다. 왜냐면 서양 사람들도 기름진 땅에는 밀을 심어서 주식을 먼저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도는 놀고 있는 언덕배기의 거칠고 메마른 토양에 심을 수밖에 없었고, 포도나무는 이런 토양에서 살기 위해 땅 속 깊이 뿌리를 뻗어 저 밑에 있는 수분과 양분을 악착같이 빨아들이면서, 수천 년 동안 이렇게 적응되어 온 것이다. 이렇게 해서 와인용 포도는 자연스럽게 야생에 가깝게 재배될 수밖에 없었다.

포도 향이 좋아야 와인 향이 좋아진다. 향이 좋은 포도를 얻으려면 어떻게 재배해야 할까? 야생상태 가깝게 재배해야 한다. 들에 나가서 캐낸 냉이와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냉이의 향은 열배 이상 차이가 난다. 식물이 분비하는 향이란 대부분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방어 물질이다. 척박한 환경에서 자신만이 성장하기 위해 다른 식물이나 동물에게 해로운 물질을 분비하거나, 반대로 자손 번식을 위해 꿀벌과 나비를 유혹하기 위해서도 향을 풍긴다. 그러니까 온도와 습도가 적당하고 물과 양분이 풍부한 비닐하우스에서 자란 식물은 이러한 물질을 내 놓을 이유가 없다. 즉 식물은 척박한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만큼 이러한 휘발성 성분을 더 만들고, 우리는 그것을 향이라고 한다. 우리는 향이 좋다고 좋아하지만, 반대로 식물은 발버둥거리면서 살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식용 포도와는 차원이 다르다

여유가 있어서 와인용 포도를 기름진 토양에서 재배를 하면, 나무는 왕성하게 뻗어나가고 열매도 커지지만, 와인의 향을 좌우하는 방어 물질을 많이 내놓지 않아서 식용으로는 좋겠지만, 고급 와인을 만드는 데는 부적합한 포도가 열리게 된다. 우리나라 식용 포도의 당도는 13-15 %인데 반해, 와인용 포도의 당도는 20-25 %가 나온다. 식용 포도가 너무 달면 질려서 한 송이도 못 먹고 남기게 된다. 식용으로는 우리나라 포도가 가장 좋다. 또, 단위면적 당 생산량도 많은 차이가 난다. 고급 와인용 포도는 1 정보(ha)에서 5,000-6,000 ㎏을 생산하지만, 우리 식용 포도는 같은 면적에서 30,000 ㎏을 생산해야 농사를 잘 지었다는 소리를 듣는다. 게다가 유럽의 고급 와인산지에서는 단위면적 당 생산량을 얼마 이하로 규제하고 있다. 이렇게 와인용 포도와 식용 포도는 그 목적이 다른 만큼 재배방법이 다르다.

 

와인에 적합한 유럽 포도는 건조지대에서 자라서 당도는 높지만, 알맹이 무게가 우리가 흔히 먹는 캠벨(Campbell Early)에 비해 1/3밖에 안 되고, 씨는 똑같은 크기로 들어 있으니까 별로 먹을 것이 없다. 열매가 작으니까 동일한 양이면 껍질과 씨의 비율이 높아서 색깔이 훨씬 진하게 나오고, 씨와 껍질에서 타닌도 더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와인을 담근 것이다. 반면, 미국에서 온 캠벨은 식용으로는 좋지만, 와인을 만들 때 색깔을 잘 뽑아야 진한 로제 정도 되고, 타닌이 거의 없으며, 특유의 향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렸을 때 먹었던 포도주 냄새가 난다고 무시하기까지 한다. 그 만큼 포도가 다르기도 하다.

 

테루아르(Terroir)

테루아르는 와인 애호가들이 중요하다고 수없이 이야기하지만, 쉽게 이야기하면 ‘남귤북지(南橘北枳)’라는 뜻이다. 따뜻한 남쪽지방에서 자라는 귤을 북쪽지방에 옮겨 심으면 탱자나무로 변한다는 말로, 사람은 사는 곳의 환경에 따라서 착하게도 되고 악하게도 된다는 뜻으로 쓰이는데, 포도 역시 추운 북쪽지방에서 자라면 신맛이 강해지고,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신맛은 약해지고 단맛이 강해진다. 단맛이 강하다는 말은 당분 함량이 높다는 얘기가 되고, 당분이 변해서 알코올이 되기 때문에, 당분 함량이 높은 포도로 만든 와인은 알코올 함량이 높을 수밖에 없다.

 

조건이 좋지 않아, 포도의 당도가 낮으면 그만큼을 설탕으로 보충하고, 신맛이 많으면 중화제를 넣어야 한다. 그러나 인위적인 조작이 원래의 포도성분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토질이나 기후조건이 양호한 곳에서 양질의 와인이 나올 수밖에 없다. 포도가 나쁘면 비용과 노력이 더 들어가면서도 와인은 맛이 없어진다. 이렇게 포도는 와인 그 자체의 품질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는 ‘테루아르(Terroir)’라는 단어 하나로 포도밭의 모든 것을 이야기해 버린다. 유럽 언어에서 ‘terr’이란 땅이나 흙을 의미하듯이,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테루아르’란 ‘촌스럽다’ 혹은 ‘토속적이다’라는 약간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20세기 언제부터인가 긍정적인 뜻으로 바뀌어 와인의 특성을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어,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는 이를 기초로 원산지 명칭을 관리하고 와인의 등급을 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까 유럽에서는 토양의 성질과 기후가 와인의 품질을 좌우한다는 믿음이 강할 수밖에 없다. 즉, 테루아르가 좋은 포도밭은 가만히 두어도 와인용으로 좋은 포도가 열리는데, 테루아르가 나쁘면 아무리 노력해도 좋은 포도를 생산할 수 없다는 말이다.

과일 예찬론

인간은 물과 소금을 제외하고는 살아있는 동물이든 식물이든 생명체를 죽여서 먹는다. 살려고 발버둥치는 동물을 죽여서 맛있게 먹는 동물성 식품은 말할 것도 없고, 배추나 시금치 같은 식물성 식품도 생명체를 통째로 먹어치우고, 쌀이나 보리도 살아있는 어린 생명체를 먹는 셈이다. 그러나 예외가 두 가지 있다. 자기 새끼를 먹이기 위해 내놓는 ‘젖’과 과수가 씨를 퍼뜨리기 위해서 내놓는 ‘과일’이다. 그러니까 영양학적인 측면을 떠나서 우유나 과일 등은 우리가 섭취할 때, 그 생명을 죽이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살려주는 식품이라고 할 수 있다.

 

포도를 비롯한 과일은 “나를 먹어주세요!” 외치고 있는 셈이다. 과일은 식물이 자기 씨를 널리 퍼뜨리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 그래서 씨가 여물지 않았을 때의 과일은 알맹이가 작고 단단하고, 시고 쓴맛을 가득 넣어서 동물들이 먹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고, 그것도 안심이 안 되어 잎과 똑같은 보호색을 띠고 있다. 그러나 씨가 여물어 가면, 알맹이가 커지면서 부드러워지고, 적절한 신맛에 단맛을 가득 넣어 주고, 향까지 풍기면서 동물을 유혹하면서, 동물들 눈에 쉽게 띠도록 갖가지 색깔로 치장도 한다. 동물들은 이 과일을 먹고 씨만 멀리 뱉어주면 된다. 그러면 과수가 원하는 종족번식의 목적은 달성되고, 동물은 맛있고 배부르니 이렇게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아마도 에덴동산이 이런 과일로 꽉 차있는 곳이 아니었을까 싶다.

 

필자:▴김준철와인스쿨(원장)▴한국와인협회(회장)▴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프레즈노캠퍼스 와인양조학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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