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난(雲南)의 자연을 거닐고 싶다

다리시저우

윈난(雲南)의 자연을 거닐고 싶다

임재철 칼럼니스트

중국인에게 죽기 전에 꼭 가고 싶은 곳 세 곳을 뽑으라면 흔히 자금성, 만리장성, 태산을 뽑는다. 황제처럼 자금성을 거닐고, 만리장성처럼 웅대한 꿈을 간직하며, 태산처럼 만고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싶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마천 또한 사형 선고 앞에서 “사람이 자고로 한 번 죽음에 태산처럼 무거운 죽음이 있고, 깃털처럼 가벼운 죽음이 있다(人固一死, 或重於泰山, 或輕於鴻毛)”는 명언을 남기고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기 위해, 태산처럼 무거운 역사 기술의 대업을 완성하기 위해 치욕적인 궁형을 택하지 않았던가.

 

태산을 오르는 것은 태산처럼 묵직한 삶을 살다간 사람들을 만나는 길인 동시에 자신의 삶을 그 거울에 비춰보는 일이기도 하다.

여하튼 시간은 질주하여 겨울은 어느새 사라지고 봄이다. 개인적 인생의 봄날은 날아가 버렸다는 필자의 생각이지만 그래도 새로운 계절이니 거닐고 싶다. 그래서 태산도 좋으나 바람의 숨결이 닿는 곳으로 떠나고 싶다. 나그네길 위에 인생이 있고, 여행이 있고, 삶고 죽음이 있다고 믿는 필자로선 거닐거나 떠나고 싶은 곳의 필요충분조건이 그리 많지 않다. 지금 중요한 건 그냥 거닐고 싶다는 거다.

다리

중국을 수없이 다녀온 필자인지라 중국 여러 지역이 떠오르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중국 말고는 갈 곳이 없는 건 아니겠지만 그렇다. 그 중에서도 계절 때문인지 꽃이 피는 따뜻한 봄 중국 윈난(雲南)의 자연을 거닐고 싶다. 이미 연초에 윈난(雲南)성 푸얼(普洱)시 중화푸얼차(普洱茶, 보이차)박람원에 겨울 벚꽃이 앞 다투어 피며 봄이 오는 소식을 알렸다.

조금 더 들어가 보면 윈난 성은 중국 남서부 국경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윈난 성은 고산지역이 많아 해발 격차가 크고 사계절이 뚜렷해 많은 야생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윈난 성은 예로부터 ‘동물의 왕국’, ‘식물의 왕국’이라 불려왔으며 현재 생물 다양성에서 중국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산림률 역시 60.3%로 1위다.

다리고성

그러니까 윈난은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 중에 하나로, 얼하이창산(洱海蒼山)에서 위룽쉐산(玉龍雪山), 시솽반나(西雙版納)의 열대우림에서 샹그릴라(香格裏拉)의 홍초지(紅草地), 리장(麗江)에서 메이리쉐산(梅裏雪山)까지 다양한 매력으로 전 세계 여행객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는 지역이다.

굳이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발길 닿는 대로 거닐고 싶은 필자이지만, 윈난 중에서도 중국의 프로방스라고 불리는 다리(大理)가 머릿속을 휘감는다. 세번 정도 여정을 보낸 곳이나 다시 가서 거닐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 지역이다. 그곳이 그렇게 매력적인 것은 고원의 진주처럼 빤짝이는 얼하이(洱海) 호수와 다리를 병풍처럼 감싸 안은 창산(蒼山)이 평화롭고 목가적인 풍경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시저우고진

유유자적(悠悠自適) 여유롭게 느끼고 감상하면서 청정한 자연을 느긋하게 산책하면 ‘느림의 미학’을 알게 해 주는 곳이 필자의 다리 키워드다.

특히 당시 다리고성 안에서 창산을 바라보고 있을 때 정말 마음이 편안 해졌다. 또한 장엄한 창산에 올라 산책하며 바다처럼 드넓고 아름다운 얼하이를 감상했을 때는 아늑함을 덧입을 수 있었다. 파란 하늘 아래 얼하이의 푸른 물결이 일렁이는 호수가를 산책할 때는 마음속에 고향 같은 느낌이 진하게 머리에 떠올랐었다.

다리시저우

그리고 다리고성이 필자에게 중후한 매력으로 다가왔던 이유는 노년의 서양인 부부들이 사이좋게 산책하는 모습이었다. 사람이 살기 좋은 자연에 둘러싸인 다리고성은 나이든 사람에게는 리장보다 더 지내기 좋다는 생각이다. 고성 북문에서 보는 일출, 창산 아래 숭성사도 보이고 다리마을 풍경을 바라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던 추억이 있다. 어둠이 내리는 다리고성이나 길거리를 한 바퀴 돌며 걸었던 기억도 애틋하게 다가온다.

 

다리는 바이족(백족, 白族)자치주이다. 바이 족이 거주하는 시저우(喜洲) 마을에는 바이족 전통양식이 즐비하고 그저 아름답기만 한 자연이 아니다. 누구나 ‘여기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곳의 재래시장이나 먹거리를 맛보면 더욱 그렇다. 재래시장에 가면 바이족 뿐만 아니라 이족, 회족 등 다양항 소수 민족을 만날 수 있다.

다리는 무형문화유산의 화려하지 않는 묵화 같은 매력을 지녔다. 볕 좋은 카페에 앉아 창산 위로 흘러가는 풍경을 바라보고 조금 높은 언덕에 올라서서 얼하이를 한없이 바라볼 때 다리는 비로소 아름답다. 그래서 휴가를 즐기기에 알맞은 지역이다. 빠듯한 일정도, 대충대충 보고 지나가는 여행도 필요 없이 그저 시간적 여유와 느긋하게 즐길 줄 아는 마음만 있으면 되는 곳이다.

 

느린 삶이 어울리는 자연의 으뜸은 중국에서 다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데 최근 들려오는 소식에 따르면 그 소탈한 마을 풍경과 먹거리, 목가적 정취로 조용했던 다리 사람들의 일상이 갈수록 상업화되고 심지어는 일반 관광지로 변하고 있다는 뉴스엔 안쓰럽다.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흐르는 세월과 함께 어느덧 찾아온 중년으로 울적한 기분일 때나 쓸쓸한 느낌이 들 때는 지난 여행 기록을 간간이 꺼내 보거나 뇌리의 기억을 들춰 보는 것도 때로는 필요하고 좋은 것 같다. 몸과 마음이 절로 유유자적해지는 여행이었다면 더욱 그렇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했다.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자는 그 책의 단지 한 폐이지 만을 읽을 뿐이다.” 이는 너무 무겁고, 말하자면 생활의 굴레에서 벗어나 내숭이 없는 마음으로 풍경과 풍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시선의 관대함, 비일상적 낭만의 향유와 감성충전이 가능한 게 여행일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조금은 의도를 가지고서라도 여행을 떠나고 즐긴다고 본다.

다시 필자는 지금 윈난으로 떠나는 비행기에 오르고 싶은 심정이다. 다리에서 오래 머물며 거닐고 싶다. 그러나 하고 싶은 것을 모두 이룰 수 없는 것이 삶이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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