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에 마셔본 막걸리

김원하의 취중진담

 

호기심에 마셔본 막걸리

 

 

인생을 살다 보면 호기심 천국이라고 할 만큼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들이 부지기수로 많다. 사전적 의미로 호기심(好奇心)은 새롭고 신기한 것을 좋아하거나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라고 정의한다.

특히 한국인의 호기심은 특출난 데가 있는 것 같다. 신랑신부가 초야(初夜)를 치러야 할 방문의 창호지를 뚫고서 들여다봐야 직성이 풀리는 동네 아주머니들의 짓궂은 호기심. 모르긴 해도 그들도 첫날밤에 당했던 분풀이(?)를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요즘에야 신혼여행 떠나면 그 뿐이겠지만 전통혼례로 혼사를 치르던 시절에는 결혼의 라스트신이 초야를 훔쳐보는 것이 관례처럼 되던 시절도 있었다. 그만한 호기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도를 닦고 하산하는 제자에게 스승이 주머니 하나를 건넨다. 스승은 제자에게 가장 어려울 때 열어보라며 건네는 주머니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궁금증을 자아내는 주머니나 항아리는 현대뿐만 아니라 고대사에도 수 없이 등장한다.

대표적인 것이 ‘판도라의 상자’일 것이다. 반반한 얼굴 덕분에 부자 에피메테우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티탄 신족)의 아내가 된 판도라는 모든 걸 마음대로 할 수 있었지만 딱 한 가지 예외가 있었다. 남편이 집안 한쪽에 모셔놓은 항아리의 뚜껑을 절대 열지 말라고 신신 당부한 것. 항아리 뚜껑에 ‘꽂힌’ 판도라는 결국 남편이 외출한 틈을 타서 뚜껑을 열었고 그 순간 죽음과 질병, 미움과 질투 등 모든 해악이 사방으로 퍼졌다. ‘판도라의 항아리’(훗날 ‘판도라의 상자’로 바뀜)는 이 때문에 어떤 학자들은 호기심은 백해무익함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혹평하기도 한다. 필자도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열어봤을 것 같다. 그래서 모르는 게 약이라는 데 동의하기가 어렵다.

호기심은 ‘정보를 향한 욕망’으로 호기심의 충족은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과정이다. 즉 좋을 게 없는 내용을 담고 있더라도 눈앞에 있는 상자를 열어 봐야 직성이 풀린다는 말이다. 미국 시카고대 크리스토퍼 시 교수는 이런 경향을 ‘판도라 효과(Pandora effect)’라고 부른다. 최근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있는 것은 바로 판도라 효과일 수도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 볼 때 가장 대표적인 가짜 뉴스를 꼽으라면 10여 년 전 이명박 정부초기 MBC PD수첩에서의 광우병 난동 선동 보도가 아닐까 여겨진다. 그 때 동원되었던 많은 사람들, 심지어 유모차까지 끌고 나왔던 사람들은 미국산 수입소고기를 먹은 사람들이 1도 없을까. 이 사람들 가운데는 호기심에 이끌려 데모에 참가했을 수도 있다. 생각이 짧고 멍청한 짓을 했다는 생각이 아직까지 들지 않았다면 그들은 진짜 멍청한 사람들일 것이다.

수르스트뢰밍(삭힌 청어), 삭힌 홍어와 더불어 세계 3대 악취음식으로 꼽히는 것이 중국의 취두부(臭豆腐)다. 한국 사람들도 삭힌 홍어 냄새를 맡기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외국인들 가운데는 삭힌 홍어 마니아도 있듯이 한국인들 가운데는 취두부를 잘 먹는 사람도 있다. 언젠가 대만의 야시장을 구경하고 있을 때 갑자기 호기심이 생겨 취두부를 먹어보자는 제안에 일행들은 손 사례를 쳐서 필자 혼자만 취두부를 먹어본 경험이 있다. 생각보다 고소해서 먹을 만 했다.

1904년 미국 사회주의 작가 잭 런던은 “한국인의 두드러진 특성은 호기심이다. 그들은 ‘기웃거리는 것’을 좋아한다. 한국말로는 ‘구경’이라고 한다.”고 했다. 이런 한국인들의 호기심이 현재 세계 10대 경제대국을 이루는 밑바탕이 되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호기심은 배움의 시작이다. 뭔가를 배우려면 그것을 배우고 싶은 욕구가 있어야 한다. 매사에 호기심이 부족한 사람은 발전하기 어렵다. 알고 싶은 게 없다면 성장할 수 없는 법이다. 호기심을 키워 변화에 적절히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호기심이 왕성하고, 호기심이 강하면 더 빠르고 쉽게 배울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호기심이 있는 사람은 나이보다 젊게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호기심만은 따라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지난 3월 19일 인천 고층 아파트서 쇠구슬을 쏴 유리창에 구멍을 낸 60대가 구속됐다는 뉴스가 떴다. 구속된 사람은 새총으로 쇠구슬을 쏴 이웃집 3곳 유리창을 파손한 혐의를 받았다. 구속된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쇠구슬이 실제로 어디까지 날아가나 호기심에 쐈고 인터넷에서 새총과 쇠구슬을 샀다”며 “특정 세대를 조준한 것은 아니다”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호기심도 지나치면 범죄자가 된다는 것을 알만한 나이인데….

지금의 중장년들이 어렸을 적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주전자를 들고 막걸리를 받아온 경험이 있을 것이다. 막걸리가 도대체 무엇인데 어른들은 막걸리를 마시는가. 호기심에 주전자 주둥이를 입에 대고 한 모금 마셔본 적이 많을 것이다.

주당의 시작은 이런 호기심에서 시작된 발로(發露)가 아닐까.

<삶과술 발행인 ti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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