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노래, 뿌리를 찾아서

김상돈의 酒馬看山③

 

물의 노래, 뿌리를 찾아서

 

술의 불기운을 잘 다스려 물의 노래로 승화시킨 인물들은 많지만, 그 중에서도 첫 손에 꼽을 수 있는 이가 바로 도연명(陶淵明)이다. 평생 술과 함께한 은자(隱者)이면서도 절의를 지켰고 <귀거래사>와 <도화원기>, <오류선생전> 등의 시문은 물론 음주시 20수를 남긴 시선이기도 하다. 그는 술로써 이상향을 노래했고 술과 더불어 인생을 달관했다. 그의 청빈하고 소박한 삶과 고아한 뜻은 후대 사대부들이나 지식인들의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도연명은 중국의 동진(東晉: 317∼420) 중기에서 남조(南朝) 송(宋: 420∼479) 초기에 걸쳐 살았던 인물이다. 당시 사회가 어지럽고 백성이 고통을 겪으며 왕조가 교체되는 혼란기가 지속되었다. 도연명은 “5두미(五斗米)를 위하여 향리의 소인(小人)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며 관직을 미련 없이 버린다.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으며 낙향한 뒤, 집 앞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를 심고 스스로 오류선생이라 불렀다. 전원에서 국화농사를 지으며 거문고와 술에 마음을 붙인 채 은거를 하게 된다. 그는 늘 술과 같이 하였지만 술조차 마음껏 마시지 못할 정도로 빈한했다. 국화가 뜰에 가득하여도 술 받아올 길이 없어 국화만 따 먹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두려운 건 춥고 배고픈 게 아니다. 빈천과 부귀가 늘 서로 싸우지만, 도의가 이기니 얼굴에 근심이 없다”면서 고궁절(固窮節)을 잃지 않았다. 곤궁 속에서도 절의를 지킨 도연명의 모습은 그야말로 삶과 술의 표상이리라.

그의 맑고 깨끗한 시어와 달관의 경지에서 배어나오는 인생철학의 바탕에는 바로 술이 있었다. 소박한 가운데서도 어찌 보면 투박스러운 질그릇(陶)처럼 삶의 향기가 묻어 나오고, 그 그릇에 담긴 술처럼 예술의 향기가 한껏 퍼져 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물의 노래는 그야말로 아래로 아래로 흘러 후세의 칭송과 추앙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당대의 이백, 두보, 백거이, 소식 등의 시인묵객들은 다투어 도연명을 연가 했고, 송대에 이르러서는 그의 시와 인품이 모두 학습의 기본이 되었다고 한다. 성리학을 집대성한 남송의 대학자 주희는 도연명에 대한 존경심을 한껏 드높였다. 그 이후로도 이런 추송은 계속 이어진다.

그에 대한 흠모는 중국대륙만의 얘기가 아니다. 신라의 최고 문사로 일컬어지는 최치원과 고려의 대표문인 이규보는 도연명 시의 소담하고 진지한 천착과 끝내 절개를 지켰던 인품을 높이 평가했고 여말 삼은 중 한사람인 목은 이색은 도연명을 ‘천고의 고상한 선비’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또한 노계 이인로는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화운한 <화귀거래사(和歸去來辭)>를 지었으며, 자신의 거처를 와도헌(臥陶軒)이라고 이름 붙였다. 조선시대 들어서는 사림파의 종장 김종직과 생육신의 한사람인 김시습 등이 도연명을 추앙했고, 퇴계 이황 또한 그의 시문에 화답하는 글을 남기기까지 했다.

문사들은 글로써, 안견과 같은 화공은 <몽유도원도>라는 그림으로 도연명을 만난다. 겸재 정선은 물론 근대 전통화단의 소정 변관식 등도 무릉도원이나 귀거래, 음주 등을 소재로 화폭에 담아냈다. 이처럼 후대 지식인들은 글과 그림으로 도연명을 기리고 또 그렸다.

도연명의 삶과 술은 지식인들이나 사대부들의 롤 모델이자 상징이기도 했다. 정신문화의 수도라 일컬어지는 경상북도 안동지방에는 유난히도 도연명을 따른 흔적이 많다. 퇴계는 도연명의 삶의 철학과 절개를 존숭하여, 낙향한 뒤 지명을 도산(陶山)으로 바꾸고 호도 퇴도(退陶)로 쓸 정도였다. 지금은 임하댐건설로 물밑에 잠긴 도연폭포(陶淵瀑布)의 유래도 그에 있다하며, 표은 김시온도 혼탁했던 중앙의 관직을 버리고 은사가 되어 도연명의 절의를 따랐다고 한다. 안동 오류헌(五柳軒)은 오류선생 도연명의 고절을 좇아 옥호를 지었는데 조선 중기의 대표적 한옥으로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집 자체가 하나의 공예품이라고 평가될 만큼, 단아하고 유려한 미를 간직하고 있다. 오류헌이 직접 영위한 술도가(都家)의 막걸리와 소주 맛은 인근지역에서 널리 정평이 나 있었다고 한다. 오류선생의 청빈한 생활과 오류헌의 단정한 자태, 그 속에 술과 함께 녹아있는 멋과 맛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시선이자 주선이기도 한 오류선생의 삶과 술이 오류헌에서 하나가 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일이다.

 

글쓴이 김상돈 : 물과 불을 넘나들면서 명정(酩酊) 40년을 살았고, 언론계와 국회 당, 공기업 임원 등을 두루 거친 뒤 지금은 사단법인 4월회 사무총장과 전국자동차검사정비사업조합연합회 전무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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