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주담정 홍승희 사장
붉은색 건강 물결이 살아 있는 ‘웃음마당 문경 오미자막걸리’
수작업으로 빚은 ‘문희’는 100일 숙성시킨 오리지널 전통주
이른 아침 경상북도 문경으로 향하는 버스 안은 승객이 적어 썰렁하다. 그렇지만 차창 밖의 풍성한 가을 풍경이 가을 안개와 함께 가득 밀려 든 버스 안은 풍성하다. 게다가 오늘 가는 곳이 경상도에서도 이름난 술도가(都家)가 아닌가. 술도가란 이름만 떠 올려도 입가엔 어느새 미소가 흐른다. 어떤 술이 기다리고 있을까. 상상의 날개는 벌써 문경의 하늘을 날고 있었다.
서울에서 주담정(문경주조. 대표 洪承喜)을 찾는 여정은 결코 녹녹치 않았다. 동부터미널에서 점촌 시외버스터미널까지는 2시간 남짓 걸려 도착했지만 동로행 시내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택시를 타고 시내버스정류장으로 가야 한다. 여기서 배차 간격이 2시간인 동로행 버스를 1시간여나 기다려 서 탔다. 점촌에서 주담정이 위치 해 있는 동로까지는 50분 거리란다.
버스 승객이라곤 기자를 포함해서 7, 8분의 촌로들이 전부인 버스가 점촌을 빠져나간다. 촌로들은 점촌에서 장을 보고 가는 모양이다. 앞에 앉은 할머니는 사골(四骨)을 사가는 중이며 친구가 병들어 고생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귀에 들어온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들으며 타고 가는 것이 시골 버스를 타는 재미가 아닌가.
시간을 보니 동로가 가까워지는 것 같다. 몇 구비를 돌아드니 경천 호라는 저수지가 나타난다. 꽤 규모가 크다. 축성된 지 30여년이 세월이 흘러 호반을 중심을 형성된 경관이 빼어나다.
호텔처럼 깨끗하고 자연친화적인 문경주조 도가
주담정(문경주조)이 터 잡고 있는 곳은 문경시 동로면 노은1길이다. 이웃해 있는 대미산(1,115m)과 황장산(1,077m)의 줄기가 만들어 낸 깊은 골에서 흐르는 금천이 동로면 소재지를 관통 해 흐르고 있는데 주담정은 바로 이 금천 가에 있다. 여기 사람들은 금천이 바로 낙동강의 발원지라고 여길 만큼 금천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시내를 흐르는 내지만 수질이 좋아 바로 식수로 사용할 만큼 깨끗한 물인데 그 만큼 환경정화에 힘을 쏟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주담정이 이곳에 왜 터를 잡았는지를 미루어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주담정은 여느 술도가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술도가가 아닌 작은 호텔 같다고나 할까. 전체적인 건물양식은 기와집이지만 벽은 흙벽돌을 사용하여 자연 친화적이다. 모두가 주담정의 홍사장이 기획해서 만들어 낸 술도가란다. 58년 개띠라는 홍 사장은 한 마디로 여장부 같다는 인상이다.
홍 사장이 주류업계와 인연을 맺은 것은 그의 나이 37살 때 남편이 주류유통업에 손댄지 1년여 만에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사별했다고 한다. 당시 슬하에는 8살과 15개월 된 아들 둘이 있어 생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남편이 하던 사업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사실 주류 유통업은 남자들도 하기 힘든 업종인데 여자의 몸으로 이 사업을 영위하자니 자연히 강한 여성으로 변모하게 돼 오늘의 홍 사장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닌지 모른다.
홍 사장이 막걸리 유통업을 하면서 느낀 점은 진정 맛있는 막걸 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괜찮다 싶던 막걸리도 시간이 흐르면 옛 맛이 나지 않아 손님들이 외면하기 일쑤였다. 홍 사장은 고민 끝에 직접 술을 생산해야 겠다는 생각을 굳힌 결과 오늘의 주담정을 일궈 낸 것이라 했다.
특히 홍 사장이 유통업을 하면서 많은 술도가를 다니며 느낀 점은 술도 음식인데 제조 과정이 너무나 불결한 곳이 많았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지저분한 곳에서 제 아무리 좋은 술을 만들어 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어 술공장을 지으면서 공장 건물도 위생적이고 자연 친화적인 건물을 구상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공장 내·외관이 깨끗한 덕에 2012년에는 고용노동부로부터 CLEAN 사업장 인정서도 받았다.
과실주로는 국내 1호로 허가 받은 ‘웃음마당’ 문경 오미자 막걸리
“원래 제 고향은 예천군 유천면이거든요, 그래서 그곳에서 오래 살았습니다. 그곳도 살기 좋은 고장이긴 하지만 술도가를 세울만한 입지조건에 맞는 땅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삼지 사방을 찾아 헤매던 중 이곳이 마음에 들어 터를 잡게 되었습니다.”
특히 홍 사장이 이곳에 필이 꽂힌 것은 이곳이 대한민국 오미자(五味子) 특구로 지정될 만큼 오미자가 지천으로 흔했고, 물맛이 좋았기 때문이라 했다.
전국 오미자 생산의 절반을 이곳에서 생산하고 있는데 이는 일교차가 커서 오미자를 재배하는 데 최적의 기후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곳 오미자가 다 팔려야 타 지역 오미자가 팔릴 만큼 이곳 오미자는 전국에서 최고 대접을 받는다.
오미자는 껍질은 시고, 살은 달고, 씨는 맵고 쓰며, 전체적으로는 짠맛의 5가지 맛이 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여태껏 오미자는 약재료로 사용하거나 차 또는 식재료로 사용하는 정도였다.
특히 동의보감에 따르면 오미자의 신맛은 간을 보호하여 해독기능이 뛰어나 숙취해소에 좋고, 쓴 맛은 심장을 보호하여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한다는데 착안하여 홍 사장은 오미자를 가지고 술을 만들어 보겠다는 결심을 갖게 된다.
홍 사장의 마음을 더욱 굳힌 것은 친정 오빠가 강원도 횡성에서 옥수수로 막걸리를 빚는 데 그 맛이 좋았다. 이를 생각한 홍 사장은 ‘오미자막걸리’를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을 갖고 제조에 착수하려 했으나 당시의 주세법에는 과실을 첨가한 막걸리는 제조가 불가능했었다.
이 때 홍 사장은 여장부의 기질을 발휘하게 된다. 관련 부처 공무원들을 붙들고 법 개정을 해야 한다고 설득하기를 수십 번. 결국에는 과실을 첨가한 술을 만들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었다.
그래서 오미자 주는 과실주 1호라는 영광을 얻게 되고, 2011년 9월에는 <오미자가 첨가된 건강 증진 기능성 오미자 생막걸리 및 그 제조방법>에 관한 특허까지 받았다.
‘웃음마당’은 와인을 대신하는 건배주로 자리매김
갖은 산고 끝에 2008년 9월 ‘웃음마당’이란 상표를 달고 ‘生오미자막걸리’가 출시되었다. 이때의 느낌에 대해 홍 사장은 “문경 황장산 자락의 지하 200m 청정암반수와 100% 우리 쌀 오미자와 허브를 첨가했더니 정말 맛있는 막걸리가 탄생했습니다. 그동안 전통 막걸리 맛을 찾아 전국을 헤매다 시피 했는데 정말 좋은 술이 나오니 그동안의 고생이 한 순간 날아가는 느낌이었다”고 회고 했다.
‘웃음마당’이란 상표를 생각 해 낸 것은 “생각해 보세요, 한양서 과거 급제한 선비가 문경 새재를 넘으며 고향 땅을 밟으니 얼굴에는 절로 웃음이 만발하지 않겠어요, 이 때 텁텁한 막걸리라도 한 사발 들이켜고 싶지 않겠어요, 요즘은 문경 새재를 관광한 관광객들이 ‘웃음마당’을 마십니다만….”
‘웃음마당’은 붉은색인 오미자 열매를 우려낸 물을 막걸리에 첨가하는 방식으로 생산한다. 그러다 보니 지금껏 마셔온 노란색의 일반 막걸리와 달리 분홍색을 띠면서 오미자의 단맛과 신맛, 매운맛, 짠맛 등이 조화를 이뤄 풍미가 뛰어나고 목 넘김이 부드럽다.
‘웃음마당’은 맛과 향, 숙취, 빛깔 등 모든 면에서 기존 막걸리와 크게 차별화 되었지만 초기엔 종전의 막걸리의 텁텁한 맛과 다르다면서 외면당하기도 했지만 점차 젊은 층과 여성들에게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여성들은 로맥틱한 핑크빛에다가 맛이 깔끔해서 파티 등에서 와인 잔에 담아 건배주로 마시기 시작하면서 ‘웃음마당’은 와인을 대신하는 건배주로 자리매김을 하기 시작한다.
특히 ‘웃음마당’은 기존의 막걸리와 안주에 대한 선입견도 바꾸어 놓았다. 막걸리는 파전 등과 먹어야 어울린다는 인식이 있는데, ‘웃음마당’ 막걸리의 경우 회와 불고기 등과 먹어도 궁합이 잘 맞는다고 여기기 시작해서 횟집에서도 찾기 시작한다는 것이 주담정 김태환 실장의 설명이다.
전국에서 술을 사랑하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주담정 홈피에서 홍승희 대표의 인사말은 ‘주향불파항자심(酒香不 巷子深∙술 맛이 좋으면 골목이 깊은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즉, 술맛만 좋으면 아무리 찾기 어려운 깊숙한 골목에 있어도 손님은 끊이지 않고 찾아온다는 중국의 속담으로 시작된다.
이런 홍 사장의 마음을 읽기라도 해서인가 전국에서 술을 사랑하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들은 술도가를 찾아서 “어떻게 빚기에 일체의 첨가제도 첨가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달달한 맛을 낼 수 있느냐”며 비법 공개를 요구하기도 하고 혹시 독특한 단맛을 첨가하지는 않았는지 공장 여기저기를 찾기도 한다고 홍 사장은 웃었다.
기자도 이 대목이 궁금했다.
“잘 아시겠지만 술은 물맛이 70%를 좌우합니다. 이곳 물맛은 정말 좋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생수를 모를 정도로 수돗물을 정수 하지 않고 그대로 마십니다. 거기다가 좋은 원료로 빚고 청정지역이라 공기도 맑습니다. 그리고 최신 위생시설에 모든 제조과정이 황토방 공장에서 숙성되고 있습니다. 굳이 한 가지를 더 한다면 제 손맛도 한 목하겠죠”
100일을 숙성시켜서 진짜 좋은 술을 빚는데 성공한 ‘문희’
홍 사장은 ‘웃음마당’에 만족하지 않고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술을 빚고 싶었다고 한다.
보통 일반 막걸리는 이런 저런 첨가제를 넣어서 1주일 혹은 보름정도에 막걸리를 숙성시키지만 재료를 세 번에 담는 전통 삼양주 기법으로 90일 내지 100일을 숙성시켜서 진짜 좋은 술을 빚는데 성공했다.
이 술이 바로 ‘문희’다.
‘문희’를 내놓자 영화배우 문희와 무슨 연관이 있느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렇지만 ‘문희’는 문경(聞慶)의 옛 이름 ‘문희(聞喜)에서 따온 이름이다.
지금 경상북도 문경시청 청사 앞에는 ‘聞喜慶瑞’라고 새겨진 기념비가 있다. 경서(慶瑞)는 경사스러운 일을 이르는 것이니 문경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이 기쁘지 않을 수 없다. 옛 사람들이 전하는 소식마다 각기 개성적인 등장인물이 있고, 희로애락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문희’라는 이름은 ‘웃음마당’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런 속사정을 알고 나서 오미자가 첨가된 100일 숙성된 ‘가향주(佳香酒) 문희’와 ‘찹쌀탁주 문희’의 맛을 보았다.
한 마디로 표현이 안 되는 맛과 향이 그야말로 오감을 자극했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술들을 먹고 마셨지만 그 어느 술과도 견주어도 이런 오묘한 맛을 느낄 수 없었다.
어째서 이런 훌륭한 술이 나올 수 있었을까. 이는 마지막 술을 거를 때 청주를 빼지 않고 합주를 마시던 옛 방법을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홍 사장은 설명한다.
술을 빚은 이 앞에서 ‘술맛 좋다’고 아양을 떠는 말을 하기가 쑥스럽지만 기자는 연발 ‘참으로 술맛 좋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술 몇 잔에 취해서 하는 말은 절대 아니었다.
‘문희’는 여러 번 손이 가야만 맛을 볼 수 있다. 밑술에 유기농 햇 찹쌀과 전통 누룩이 들어가고 덧술과 재 덧술을 한다. 이렇게 담근 술은 자연 건조시킨 황토 벽돌로 지은 황토방에서 술은 익어간다.
박목월 시인도 이런 술익는 냄새에 반해서 <나그네>란 시를 쓴 것은 아닐까. “술익는 마을 마다 타는 저녁 놀” 주당들은 이 시구 한 소절에도 껍먹 죽는다.
홍승희 사장은 모든 과정을 손으로 직접 한다. 그래야만 제 대로 된 좋은 술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인데 힘겨운 육체노동과 정성이 뒤따른다. 지금 주담정에는 홍 사장의 술 빚기를 배우기 위해 젊은이들이 찾아와 상당기간 술 빚는 것을 배우고 있지만 직접 빚는 홍 사장을 보고는 모두가 혀를 내 두른다고 했다.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홍 사장이 이 처럼 고집스레 힘들게 술을 빚는 것은 탁주가 가지고 있는 원초의 맛을 찾기 위해서란다. 쌀과 누룩 그리고 좋은 물이 전부인 재료로 정성을 다해 빚어 놓으면 여기서 달콤한 맛도 나고 과일향도 나고 그런다고 했다. 술이란 참으로 예민해서 술 빚는 날 정성이 다소라도 덜 들어갔다고 생각되면 확실히 술 맛이 떨어지는 것을 알고 나서는 그야말로 정성껏 술을 빚는다. 술을 빚는 즐거움을 오래 오래 간직하고 싶어 어느 사이 28살이나 먹은 장남 황득희 씨를 후계자로 키우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전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돌아서도 좋은 술 빚는 기술을 배우도록 하고 있단다.
샴페인처럼 청량감 넘치는 ‘오희’도 출시 예정
홍승희 사장은 주담정의 발전은 곧 인근 농민들이 발전이라고 믿는다. 주담정에서 술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인근에서 생산된 쌀이랑 오미자를 대량 구매해서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다 많은 술 판매를 위해서 홍 사장은 지금의 유통망도 대폭확충하고, 새로운 술도 개발해서 주종도 다양성을 꽤한다는 것.
‘문희’를 베이스로 해서 청주, ‘오희(五喜) 스파쿨링’ 같은 술은 이미 개발이 완료된 상태다. ‘오희 스파쿨링’은 샴페인을 착각할 만큼 청량감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김태환 실장은 “뭐든지 처음 연구하고 개발하는 사람은 힘들게 고생해서 결실을 보고 있는데 시중에서는 신제품이 출시되면 이를 모방한 제품을 엉터리로 만들어 팔고 있는 분위기가 안타깝다”면서 “주류 업계도 과거 가시오가피나 복분자 같은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홍 사장은 전통주 대중화 보급을 위해서 주담정 부근에 전통주 체험장을 신설하여 방문객들이 각자의 전통주를 여기서 빚고, 숙성시켜 자기만의 술을 빚을 수 할 계획도 세워 놓고 있다. 이렇게 되면 과거 우리의 조상들이 각 가정마다 독특한 술을 빚어 마시는 것처럼 다양한 전통주가 나올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문희’는 가슴으로 취하는 술이다. 수줍은 시골 새색시가 연지곤지 바르고 초례상 앞에 서 있는 기분이랄까.
이웃한 식당에서 이 지역 특산물인 자여산 송이탕에 ‘문희’를 마시는 기분은 두메산골에서 어쩌다 마주친 생얼에 웃음을 가득담은 어여쁜 아가씨 만나는 바로 그런 기분이었다.
<문경 동로 현지에서 김원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