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의 실루엣

 

아버지와 아들의 실루엣

 

빚이 만든 양조장

(주)배상면주가에 입사를 하고 내 꿈은 언젠가는 양조장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월급 가운데 조금씩 주식에 밀어 넣었다. 그런데 손대는 것마다 제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약이 올라서 더 큰 금액을 집어넣었고 결국 1억 이상 빚을 지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최대 대출을 끼고 산 아파트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산 금액보다 훨씬 낮은 금액으로 주저앉았다.

죽고 싶었다. 한강에 가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되었다.

어렵게 고학을 해서 대학을 졸업했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결혼을 했는데 아내 몰래 주식을 하다가 집안까지 말아먹게 생겼으니….

아내에게 커밍아웃을 하고 고향 전주로 내려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아무대책 없이.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양조장을 하겠다는 꿈도 접고 이미 제어할 수 없는 빚에 눌려서 이성적 판단을 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회사의 사장님이 부르시더니 맡고 있던 지방의 느린마을 양조장을 관리해야 하니 일주일에 한 번만 출근하고 고향 전주에서 나머지 일을 보라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어렵사리 전주로 낙향하여 전셋집을 마련하고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으려고 몸부림을 쳤다. 정부 창업지원 프로그램에 응모하여 자본을 만들기 시작했다. 1년여의 주 1회 서울출근도 접고 그 후로 닥치는 대로 일 했다. 오로지 한 가지 일념이었다. 빚보다 빨리 뛰는 것.

그렇게 빚보다 빨리 뛰기 시작한지 2014년 10월 28일이면 딱 3년이 되는 날이다.

3년 동안 창업지원을 받고 또 벌어서 양조장과 매장(주점)을 만들었다. 민박집도 하고 강의도 나가고 낮에는 쪼끔 시간이 널널한 회사도 다녔다. 밤에는 매장을 하는 아내를 대신해 애를 보면서 일을 했다.

빚을 고마워할 수는 없겠지만 발이 보이지 않게 뛰며 나는 어느새 양조장을 만들었던 것이다. 양조장을 만들었지만 외곽에서 도는 일이 더 많았다. 기본설비만 했지 부대로 들어가는 설비와 시설의 비용을 벌기 위해 돈이 되는 일은 마다하지 않았다.

때로는 함께 운영하는 주점에 만든 술이 떨어질 때가 있을 정도로 시간에 쫓겨 살았다. 만나는 사람들이 나와 밥 먹다 보면 정신 산만하고 급해서 체할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되도록 남과도 밥을 같이 먹지 않았고 일할 시간을 빼앗는 술자리도 잘 가지 않았다.

 

대(代)

비염이 심했지만 병원에 가지 않았다. 양방과 한방을 동원하여 10여 년 전 비염 수술과 치료를 받았지만 전혀 개선이 되지 않았다. 그 후로 자포자기 심정으로 병원 가는 것을 잊고 살았다.

그러다 문득 혼자 중국집에서 밥을 먹으며 냄새를 못 맡으니 맛도 모르는 면발을 씹고 있는 내가 한심해 보였다. 당장 담배를 끊었다. 다행스럽게도 치료를 받을수록 아주 서서히 후각기능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다시 짜릿한 술 냄새를 맡게 되다니.

아들 밑금을 닦아주며 퍼런 몽고반점을 보았다. 중고등학교 시절 우리 아버지는 양어장에서 가물치를 키웠다.

가물치 새끼들은 먹이가 없으면 지들끼리 잡아먹는다. 여름 한낮 부화한 새끼들을 건져보면 어떤 새끼 가물치의 주둥이에는 아직 삼키지 못한 동족의 꼬리지느러미가 있었다. 지들끼리 그러다가 파란 몽고반점이 온몸에 퍼져 가물치의 얼룩무늬가 된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여름날 폭풍우로 양어장의 둑이 터져 그 많던 가물치가 하천을 따라 쓸려가 버렸다. 비 그치고 뻘에 남은 몇 마리 가물치의 스잔한 포복을 보았다.

어쩌면 그때 나는 가물치와 함께 방생된 물고기였는지 모른다. 먼 길과 대양을 돌아 결국 모천으로 돌아오는 연어처럼.

모천에서 대를 잇는 양조장을 준비하는 나에게는 굽은 등 기와집으로 들어간 아버지와 내 파란 몽고반점을 나눠준 아들이 내 삶의 전부가 되었다.

 

제목 <아버지와 아들의 실루엣>은 시인 신경림의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에서 빌려왔음을 밝힙니다.

 

◈ 글쓴이 유 상 우는

전라북도 막걸리 해설사 1호. 혹은 전라북도 酒당의 도당 위원장 쯤 된다. 한옥마을 인근의 동문거리에서 양조장과 술집(시)을 겸업하고 있으며, 2014년에는 전북의 막걸리 발전을 위해 막걸리해설사를 양성하려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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