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단상

4월의 단상

 

임 재철 칼럼니스트

 

해가 바뀐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달력은 4월이다. 꽃들이 피고 진 것도 잠시. 꽃이 피고 지는 것이 어디 한두 해일까 마는 세상에서 가장 야속한 것은 아마도 시간이 아닐까 싶다. 정신없게 4월이 온 데다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 부귀도, 건강도, 행복도 시간이 재촉하면 의미가 없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 앞에서 새삼 공부가 필요함을 느끼는 필자다.

 

그렇다면 나의 공부는 어디쯤에 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 쑥스럽고 부끄럽다. 가령 필자의 모친이 살아 계실 때 늘 하시던 말씀이 겉 공부하지 말고 속 공부하라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현실의 중압감이 어깨를 짓누른다. 무엇인가 하려고 애쓰지 않고, 때 지난 것을 만회하려고 기를 쓰지도 않은 것 같다. 그래서 더 허무하고 우울하다.

 

분명 필자 또한 그렇게 말씀하시던 돌아가신 어머니(亡妣)의 인생역정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평생 자식 노릇을 제대로 못한 불효막심에 울었고, 자식 이름 한번 불러 주지 못하고 가신 서글픔에 너무 서러워 몸서리치며 흐느껴 울기만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후회하고 서럽게 흔들리는 그리움 너머로 눈물 흘리며 수많은 일기를 적게 되었고, 말하자면 ‘어머니’와 ‘고향’이 필자의 긁적거림의 뿌리이자 키워드가 되어 버린 것이다. 다만 그런 그리움과 사모의 정이 조그만 사랑이고 신념과 평화라 느껴졌기 때문이다.

 

2012년 중국에 노벨문학상의 영광을 안겨준 중국의 대 문호 모옌은 고향에 관해 이렇게 언급했다. “작가의 고향은 단지 부모의 나라만이 아니라 본인이 어린 시절 내지는 젊은 시절에 살았던 곳을 가리킨다.” 그곳엔 어머니가 그를 낳을 때 흘린 핏자국이 있고 그의 조상이 묻혀 있기에, 고향은 그의 ‘피가 흐르는 땅’이라는 거다.

이러한 관점으로 보면 글을 쓰는 필자의 고향은 ‘전라도’ 전체라고 할 수 있겠다. 전라도인의 피가 흐르는 땅, 그러니까 고향은 뿌리이고, 과거이자 미래이며 특히 어머니와 정의 결속일 수밖에 없다. 누구나 고향은 생에 가장 아름다운 곳이며 마음을 열어 대지의 약동을 느끼는 곳이라 생각되지만, 그곳의 일부 이야기를 담아 엮은 것이 필자의 ‘다동 나그네’일지 모르겠다.

 

쌀쌀한 봄날의 무상함과 애상(哀傷)에 하늘도 필자의 맘을 읽었는지 구름이 걷히고 날도 제법 더운 4월의 제 빛을 한껏 뿜어내는 중이다. 주위에는 결혼 소식도 많아지고 또 하나 느끼는 변화는 팬데믹이 끝났음을 실감하고 있다. 주변에는 청명한 계절에 어울리는 푸릇푸릇한 파티가 한창이다. 곧 다가올 녹음 짙은 여름을 담기 위한 것이리라.

 

헌데 가슴으로 묵직한 돌덩이 하나가 떨어지는 기분이 든다. 체력이 대단히 좋은 편은 아닌 필자이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무게감이 사지를 짓누르는 것이 아닌가. 아마 연초 막판에 걸린 코로나 후유증이 틀림없이 덮친 것이라 생각됐다. 몸이 휘청거려 병원에 갈 힘도 없고, 눈도 흐리하고, 귀도 멍하고, 모든 게 언밸런스 하여 이대로 정신줄을 놓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그 와중에도 핸드폰에서 검색해봐야 하겠다 싶었다. 혹시 도움을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그 무렵 무심코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메모장에 손이 멈추는 느낌을 받아 그냥 클릭해 보니 ‘그렇게 울고 나면’이란 제목의 메모에 눈이 향했다. ‘울고 싶을 땐 마음껏 울고 나면… 빈자리에 햇살과 바람이 고인다. 그 용기가 하루를 살게 하고…’ 그걸 보며 필자는 그냥 서럽게 눈물을 흘렸다. 그 후 흐트러진 몸에 왠지 모를 힘이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어느새 책상의 의자에 앉게 했다.

 

무겁고 기운이 없던 몸이 조금씩 제자리로 돌아가며 회복되어 감이 분명했다. 창을 열고 바깥을 응시하니 자연의 방식인 바람이 흩날리고 계절이 바뀌어 가는 것을 느낀다. 아~또 이렇게 4월이 가고 머지않아 주저 없이 5월에 그 자리를 내주겠지. 너무나 빠르게 지나가는 순간들 앞에 젊음도 흘러가는 세월 속에 떠나가 버리고 어느 사이에 황혼의 빛이 다가와 있으니 이게 인생사이고 그러기에 남은 세월에 애착이 가는 것 같다.

 

어쩌면 시간이 흐르고 꽃이 피고 지는 일 또한 거룩한 생의 선순환이지 않을까 하는 교훈을 건네준다. 절정에서 만개했던 꽃이 져야 연한 잎이 나고, 다가올 것들을 위해 고요히 물러나는 것이다. 때문에 꽃이 진다고 해서 슬퍼할 일만은 아닌 이유일 거다. 속절없이 지는 것이 어디 꽃뿐이랴. 지는 꽃 따라 흘러가는 세월에 휘감겨 가는 게 삶이고 인생 아니겠는가. 우리도 계절 따라 졌다가 다시 어느 봄에 또 살아 피어나면 좋으련만.

 

수도 없이 생겨나는 현상들, 다양한 하루하루의 삶 앞에 서두에서 언급했듯 고개 숙이고 필요한 공부만 할 수 있을까. 정녕 공부하던 시절이 지나갔는데 말이다. 지난 삶의 익숙한 궤도를 벗어나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다. 하지만, 다른 일들은 잠시 접어 두고 어떻게 든 해 볼 생각이다. 돈으로만 살 수 있는 삶이 아니기에 언제나 살아남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즐겨보면 될 일인 것 같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지금처럼 연초록이 아름다운 계절을 노래하는 날들이었으면 좋겠다. 훈훈함이 섞인 산바람을 찾아, 잠시 산허리를 산책하며 쉼을 갖고 다시 돌아와 공부하고 또 내일을 설계하는 사람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해보는 요즈음이다. 즉 취생몽사하는 시간들을 삭제하고 마음을 다잡아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와 열망으로 슬럼프를 헤쳐 나가고 싶다. 여름날 ‘맛있는’ 한잔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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