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38)

南台祐 교수의 특별기고

 

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38)

 

Dionysos 인도 여행과 시바 신과의 인연

 

디오니소수 필자 남태우 교수

디오니소스는 성인이 된 후 각지를 여행하게 된다. 헤라 때문에 정신이 이상해졌을 때 떠돌아다녔다고도 한다. 그는 이집트, 시리아 등 아시아 전역을 여행하였으며, 각 지역에 포도재배를 전파하였다. 그래서 디오니소스의 신화에 유래에 대하여 많은 설들이 존재한다. 어떤 학자들은 미케네 문명에서 유래한 신이라고 하고, 다른 학자들은 테베에서 숭배된 신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디오니소스 신앙은 트라키아(Thracia) 지방에서 그리스로 전파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제정신으로 돌아온 디오니소스의 아시아 여행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몇 년 동안 지속된 인도 탐험이다. 인도에서 그는 깨달음을 얻어 그리스로 돌아와 이 종교를 널리 전파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군주들은 이 새로운 종교에 수반되는 무질서한 광증이 두려워 포교를 반대하였다. 디오니소스는 인도를 여행을 하면서 포도주 제법을 전수하고, 동시에 인도의 시바(Shiva) 신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 증거로 인도에서 시바 신을 모시는 제의를 할 때는 남성의 성기의 상징인 ‘링가(Linga)’라는 것을 이용했다. ‘링감(Lingam)’은 남근상(Phallus)을 상징하는데, 이는 남성의 창조적 에너지의 상징으로 해석된다.

‘링감(Lingam, 남성의 성기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은 ‘링가, 링, 시바링가(Shivalinga), 시브링(Shiv Ling)’으로도 불리는데, 산스크리트어로 ‘표시(Mark)’, ‘기호(Sign)’, ‘성별(Gender)’, ‘남근상(Phallus)’, ‘결론(Inference)’ 또는 ‘영구한 생명력의 싹’이라는 뜻으로 힌두 신앙의 최고의 신 ‘시바’를 숭배하기 위해 사용된다.

또한 ‘링감’은 신의 육체적인 몸이나 어떤 순수한 정신적인 주제로 오랜 시간 동안 힌두교 내에서 토론의 주제가 되어왔다.

 

힌두교의 3대 신 중 시바는 힌두교의 세 번째 신이며, 파괴의 신이자 해체의 신으로 힌두교에서 파괴 혹은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삶의 새로운 형태로의 변화이다. 파괴를 통한 새로운 창조를 추구한다. 원래는 부와 행복, 길조를 의미하는 신이었으나, 나중에 창조와 파괴의 신이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디오니소스와는 닮은꼴이다.

시바 신이 지상에 인간으로 나타난 것이 왕이며, 왕은 신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라고 믿었다. 서사시에서 표현되는 시바는 10개의 팔과 4개의 얼굴, 그리고 이마에 세 개의 눈을 가져 과거 현재 미래를 투시하며, 그 가운데 3번째의 눈은 내면을 바라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외부의 사물을 바라볼 때는 그 사물을 태워 버리는 놀라운 힘의 소유자로 표현되고 있다. 머리에는 초승달을 이고 있으며, 목은 용의 독을 마셔서 검푸른 색을 띠고 있는 것으로 표현된다.

(Shiva 신)

시바(Shiva)는 힌두교의 주요 신들 중의 하나로 힌두교의 트리무르티(삼주신) 중의 하나이다. 시바라는 낱말은 본래 힌두교 경전 <리그 베다>에 등장하는 바람과 폭풍우의 신 루드라(Rudra)의 별칭 또는 존칭이었다. 원래 시바는 부와 행복, 길조를 의미하는 신이었으나, 나중에 파괴의 신이 되었다. 시바가 지상에 인간으로 나타난 것이 왕이며, 왕은 신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라고 믿었다. 시바를 최고신으로 숭배하는 힌두교 종파를 시바파라 한다. 인도 서사시에선 10개의 팔과 4개의 얼굴을 가졌으며, 눈은 셋이고 용의 독을 마셔 목이 검푸르다고 전해진다. 또한 생식과 뱀을 관장하는 신이기도 하다.

 

몸에는 호랑이 가죽을 걸치고, 창과 도끼와 끝이 세 갈래로 갈라진 삼지창을 들고, 깊은 산 속에서 요괴를 거느리며 살고, 몸에는 송장의 재를 묻히고 화장터에 나타나며, 미친 듯이 떠들어 대는 동시에 음산한 모습을 하고 있다. 해골 목걸이를 걸치고 있으며, 목에는 뱀을, 머리에는 코르바(Korba)를 두르고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신이다. 손에는 사슴 가죽이나 삼지창 또는 작은 북이나 해골로 된 방망이를 들고 있는 신으로 표현된다.

디오니소스의 방황하던 시절의 행태와 매우 닮아 있다. 이러한 형상은 디오니소스가 인도에서 돌아올 때의 모습과 그리스 등에서 그의 종교를 보급할 때 하고 있었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그래서 디오니소스가 인도에서 시바 신과 접신했을 것이라는 추정도 가능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시바는 만물을 파괴하고 창조하는 위력을 가졌음으로, 모든 신들의 힘을 합쳐도 그를 당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신이다.

 

시바는 단순하게 파괴만을 하는 신이 아니라, 파괴를 함으로서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신이므로, 현생에서의 삶이 아니라, 다음 생의 삶을 위한 숭배와 위대한 신으로 경배를 받으면서도, 가장 천한 계층의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사귀며 스스로를 낮추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행태도 디오니소스와 많이 닮은 점이다.

시바는 여러 명의 아내가 있다. 시바의 부인은 사티(Sati)이다. 그녀는 파르와티(Parvati, 히말라야의 딸), 우마(Uma, 빛), 두르가(Durga), 가우리(Gauri, 하얀 광채로 빛나는 자), 칼리(Kali) 등으로 모습을 바꾸어 나타나는데, 이러한 시바의 배우자 각각의 얼굴도 그 자신처럼 파괴자와 온유한 자라는 두 가지 속성으로 나눠진다. 그가 주로 머물고 수행하는 곳은 카알라스(Kailrasa) 산이었고, 흰소 난디(Nandi)를 타고 다녔다.

 

어느 날 길거리에 행색이 남루한 청년 두 명이 나타났다. 한 명은 준수한 외모에 온화한 표정의 청년이었고, 또 한 명은 다부진 체격에 눈매가 서릿발 같았다. 둘은 밥 집 앞에서 주뼛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시장은 하지만 밥값이 없는 듯 했다. 그때에 디오니소스가 포도주를 한 병 들고 나섰다. “손님들 시장하신 모양인데 제가 저녁을 사드려도 될까요?” 둘은 사양하지 않고 디오니소스를 따라 밥집으로 들어섰다. 두 청년은 밥을 세 그릇씩 해치웠다. 몹시 시장했던 모양이었다. 시장기가 가시고 포도주가 몇 잔 들어가자 준수한 청년이 말문을 열었다. “저녁 잘 먹었습니다. 이 술이란 것은 처음 마셔보는데, 아주 맛이 좋군요. 저는 비슈뉴(Vishnu)라 하고 이쪽은 동생 시바(Shiva)입니다.” 이미 이렇게 두 신은 해후를 했던 신들이었다.

 

두 청년은 인도에서 왔고, 이집트를 여행하고 돌아오는 중이었다. 이집트의 큰 강 하구의 마을을 돌아보며 마을의 규모와 물산의 풍부함에 둘은 감탄하였다. 이어서 둘은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상인들의 여행에 동참하였다. 안내인은 오시리스라는 영리한 소년이었다. 일행이 탄 배는 강을 거슬러 올라가 두 강이 합쳐지는 곳에서 왼쪽 강을 따라 계속 올라갔다. 주변의 풍경이 사막에서 산악으로 바뀌었다. 한 참을 올라가다가 한 마을에서 뭍에 올랐다. 이 마을에서 상인들은 보석을 고를 예정이었다. 시바 신은 한 자리에서 그리스와 이집트 주신(酒神)을 모두 만난 것이다.

갑자기 주변이 소란해졌다. 이 근방에서 유명한 도적떼가 나타난 것이었다. 오시리스가 급히 일행보고 땅에 엎드리라고 말하였다. 한 명을 빼고는 모두 땅에 엎드리었다. 시바는 꿋꿋하게 서 있었다. 도적떼가 시바를 에워쌌다. 시바는 뾰족한 돌을 주워 바위에 깨서 정사각뿔 모양의 돌 단검을 만들었다. “해치워라.” 도적떼의 두목의 명령이 떨어지자 시바 앞의 도둑 세 명이 시바에게 달려들었다.

 

시바가 단검을 휘두르자 세 명이 순식간에 쓰러졌다. 곧 바로 시바 뒤의 두 명이 시바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시바가 단검을 던졌다. 던져진 단검은 휘돌아 도둑 두 명의 목을 꿰뚫고 다시 시바의 손에 들려졌다. 이 광경을 본 도둑 두목이 땅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아이고, 잘 못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앞으로 한 번 더 나쁜 짓을 하면 이 단검이 용서치 않으리라.” 말을 마친 시바가 돌 단검을 옆의 바위에 박아 넣었다. 단검은 자루가 바위에 박히어 정사각뿔 모양만 남았다.

 

도둑들은 그 날 이후 도둑질을 그만두고 사냥과 농사로 생계를 이어갔다. 매일 해가 뜰 때와 해가 질 때에 바위에 박힌 시바의 단검에 경배를 드렸다. 두 인도 청년과 헤어지면서 디오니소스는 포도주와 노잣돈을 그들의 손에 쥐어주었다. “고맙습니다. 인도에 꼭 한번 놀러 오십시오.” 비슈누가 인사를 하였다. 디오니소스는 한 참 동안 손을 흔들며 두 청년을 배웅하였다. 이렇게 디오니소스는 인도방문차에 시바 신과 접신하였고, 시바는 이집트 여행 중 디오니소스를 만났으니 두 신들의 만남이 영혼에 영향을 미치고 받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디오니소스가 인도에서 테바이로 돌아올 때는 신통한 힘을 가진 신의 경지가 되어 있었다. 지금도 인도에서는 시바 신을 믿는 신통한 요술을 가진 요기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인도에서 돌아온 그는 창조와 파괴의 신 시바의 상징인 ‘알감(뭇 귀신들의 왕)’이란 남근 상을 앞세우고 다니며 신통방통한 힘을 발휘하고 다닌다. 이 또한 시바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큰 고양이(課)를 타고 있는 Dionysus)
Triumphal cortege of Dionysus

 

디오니소스가 인도 땅에서 어떤 것을 가르치고 무엇을 배워 왔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디오니소스가 귀향한 뒤부터 신도들은 거리를 누빌 때마다 인도 땅 시바 신을 상징하는 남성의 생식기와 비슷한 남근상 ‘팔루스(phallus)’를 앞세우고 다녔다고 한다. 어쨌든 그는 그를 광적으로 추종하는 여신도들인 마에나데스를 이끌고 다시 그리스로 돌아왔다.

 

고대에서 ‘남근(phallus)’은 종교의 이미지로서 꼿꼿하게 세워진 막대(지팡이 지도자 장(杖))로 표현되었다. 이 용어는 남성 성기(penis)의 상징으로 표현되며, 그러나 페니스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페니스는 실재적 대상을 지칭하는 반면에, 팔루스는 상상적 대상, 상징적 대상이다. 이것(팔루스)은 힘, 남성적 권능, 생산성(풍요성), 가끔은 디오니소스 신앙에서처럼, 신 자체를 표현한다. 디오니소스 신앙에서 팔루스는 며칠간 축제 과정에서 장엄하게 치장한다.

팔루스는 건장성(남성성)의 상징인 한에서,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거나, 어떤 인간 행동의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몇몇 남성 환자는 그것의 완전한 소유를 수용할 수 없음을 드러낼 수 있는 반면에, 여성들의 경우에 결코 지니고 있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을 어렵게 받아들인다. 그것은 여성들이 일상적 삶에서 남성과 경쟁관계에 있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팔루스’라는 말은 단순히 ‘남근(penis)’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통상적인 용례로 보면 남근의 표상을 뜻하는 용어이다. 팔루스가 전 지구적 문화에서는 그렇지 않다 해도 서양문화에서는 가장 중요한 상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팔루스’는 무엇이든 표상하기 때문에 해체론자들은 그것을 ‘보편적 기표’라고 불러왔다. ‘팔루스’는 남성의 성, 남성이 가지고 있는(특히 여성에게 행사하는) 권위와 권력, 일반적인 권위와 권력, 개인성, 모든 종류의 통일성, 신, 삶 그 자체 등과 연관되어왔다. ‘팔루스적 상징’이란 남근의 표상처럼 보이는 것(예를 들면 높은 빌딩, 시가 등)이며, 그래서 (남성) 권력이라는 공시 의미를 전달하기도 한다.

디오니소스의 상징(?) 팔루스(Phallus)

이제 그는 더 이상 미치광이 소년이 아니었다. 표범 위에 올라타고 손에는 삿갓 모양의 손잡이가 달리고 덩굴장식이 화려한 ‘튀르소스(Thyrsos)’라는 막대기를 든 당당한 모습의 신이었다. 그의 곁에는 항상 그를 추종하는 한 떼의 무리, 즉 그를 길러 준 뉘사의 요정들과 판(Pan) 신, 사튀로스(Styros), 세일레노스(Seilenos), 그리고 디오니소스를 광신적으로 믿는 ‘마이나데스(Mainades)’들이 뒤따랐다. 디오니소스는 인도에서 돌아온 뒤 승리감에 고무되어 그리스로 귀환하면서 자신의 신앙을 전파하기 시작하지만 무질서하고 광적이라는 이유로 처음에는 강한 반발을 샀다.

Alexandros에 의하면 그가 인더스 강 근처 뉘사라는 도시에서 들렸을 때 사람들이 자신들의 도시는 디오니소스가 건설했으며, 그래서 그에게 바쳐진 도시라고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뉘사는 실제 현존했던 도시라기보다는 신화적인 도시로서 신화학자에 따라 아주 다양하다. 가령 호메로스에 따르면 뉘사는 페니키아에서 멀리 떨어진 이집트의 강가에, 그것은 호메로스가 즐겨 마시고 칭찬했던 ‘프람니안(pramnian)’ 포도주가 바로 자신들을 만들어내는 포도주와 같다는 점을 그 근거로 내세웠다. 디오도루스 시쿨루스(Diodorus Siculus)에 따르면 아라비아에 헤로도투스에 따르면 에티오피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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