홧김에 마시는 술은 毒이 된다

김원하의 취중진담

 

홧김에 마시는 술은 毒이 된다

 

 

풋술을 하던 시절, 어르신들로부터 “술은 기분 좋을 때 마셔야 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 땐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술 마실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기분이 좋건 나쁘건 사족을 못 쓰고 마셨다. ‘술 잘 마신다’는 말을 많이 마시는 것인 줄 알고 술을 많이 마셨다. 그야말로 두주불사로 술을 마시던 시절도 이젠 한 갓 추억일 뿐이다.

나이 들면서 술을 잘 마시는 것이 많이 마시는 것이 아님을 알고 나니 부끄럽기도 했다.

그러면 술을 잘 마시는 것은 어떻게 마셔야 하는 것일까. 주당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술을 마실 수 있는 용량에서 70% 정도만 마시면 어떨까. 대부분의 주당들은 나이 들어가면서 각자 터득한 주법이 있을게다. 술이 백약지장(百藥之長)이라고 하지만 술 이기는 장사 없다는 말처럼 술을 많이 마시면 결국 술병이 난다.

술도 음식이므로 밥처럼 먹는 것이 좋다. 과식을 하게 되면 살도 찌고 소화도 힘들다. 술 또한 과음하게 되면 취하게 되고 주위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게 된다.

기름진 안주는 더욱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의사들은 말하지만 “여보게 친구! 삼겹살에 소주 한 잔 어때” 이 말 한 마디에 회가 동한다.

술 마실 줄 아는 사람이 건강상의 이유이거나 의사의 강권 등으로 술을 끊기 전에는 항상 술을 마신다. 술은 마약과 같아서 한번 마시기 시작하면 거의 죽는 날까지 마신다. 우스갯소리로 죽어서도 마신다. 우리나라 제사상에는 술이 올라오지 않던가.

그러나 주당들도 나이 들어 철이 들면서 ‘절주 하자’는 소리를 낸다. 건강하게 수명을 누리려면 과음보다는 술을 즐기면서 마시자는 것이다.

옛 조상들은 좀 더 과학적으로 절주하기 위해 계영배(戒盈杯)라는 술잔을 만들어 이 술잔으로 마셨다고 한다. 계영배는 ‘넘침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뜻인데 잔의 70% 이상 술을 채우면 모두 밑으로 흘러내리도록 만든 술잔이다. 이처럼 좋은 술잔이 맥을 이어오지 못한 이유는 나변(那邊)에 있을까. 추측컨대 주당들이 술이 70%에 밖에 남지 않아도 이를 여러 잔 마시면 그게 그것이 되고 말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우리 속담에 ‘홧김에 서방질한다’는 말이 있다. 울분을 참지 못하여 차마 못 할 짓을 저지른다는 말이다. 그러면 서방질이 아니라 홧김에 술을 마시는 것은 어떨까.

많은 의사들이 홧김에 마시는 술은 독이 될 수 있다고 경고 한다. 화는 곧 스트레스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마시는 술이 독이 되는 것은 “술은 부정적 감정의 증폭기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문의들은 말한다. 또 “술기운이 오를 때는 우울, 불안, 외로움, 슬픔, 분노, 스트레스가 호전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술기운이 깨기 시작하면서 더 우울해지고 더 불안해지고 더 외로워지고 화가 나고 스트레스가 증가한다”고 조언한다. 실제로 “기분 좋게 술자리를 시작했다 하더라도 결국은 안 좋게 끝나는 경우가 많은 것이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라며 “따라서 더 유쾌해지고 즐거워지기 위해서 술을 마시는 경우보다는 부정적 기분을 나아지게 하기 위해서 술을 마시는 경우가 훨씬 나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으며 중독으로 진행될 가능성도 훨씬 높다”고 경고했다.

요즘 순간적인 분노를 참지 못해 발생하는 ‘욱 범죄’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평소 눌러왔던 부정적인 감정과 함께 분노가 순간적으로 표출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여기 술까지 들어가면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꼴이 된다.

2년 전 천년고찰 내장사(內藏寺)가 한 승려가 불을 질러 소실되었다. 경찰에서 이 승려는 다른 스님들과 다툰 후 홧김에 술을 마시고 불을 질렀다고 진술했다.

요즘 우리사회에서 특히 정치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짜증나고 화나는 일들이 너무 많다. 김남국 의원의 작태는 왜 이런 사람들이 정치를 하고 있나 하는 의문마저 생기게 한다. 노동자를 위한다는 노동조합들이 시민의 안위는 내 팽개치고 자기들만의 세상인 듯 행동하는 꼴을 보고 있노라면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다. 그래도 참아야 하는 것일까.

기분 나쁜 마음으로 술을 마시면 그 감정이 어떤 식으로든 밖으로 표출될 가능성이 크니, “술을 마시지 말라”는 어른들의 말에 따라야 하는 것인가.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사상가인 레프 톨스토이는 “화를 내면 주위의 사람들은 많은 상처를 입는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상처를 입는 사람은 바로 화를 내는 당사자”라고 했다.

‘참을忍자 셋이면 살인도 피한다’는 말이 있듯이 화난다고 술 마시지 말고 냉수나 한잔 마시는 것은 어떨까.

<삶과술 발행인 tinews@naver.com>

 

LEAVE A REPLY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