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당들의 걸쭉한 수다

김원하의 취중진담

 

주당들의 걸쭉한 수다

 

 

술집은 왁자지껄해야 제 맛이 난다. 절간처럼 조용하거나 성당에서 기도를 드릴 때처럼 엄숙하면 술맛이 나겠는가. 왜냐하면 보통 사람들은 술을 마시면 말이 많아져 자연히 시끌버끌해진다.

물론 비즈니스로 술을 마실 때나 연인과의 술자리는 조용한 곳이 좋을지 모르지만 소시민들이 퇴근 후 한잔 할 때는 그런 것 다 제쳐두고 하루의 피곤과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술집을 찾는다.

그런데 술값을 내는 사람이 유별나게 꼰대 짓을 하며 ‘조용히 마시자’며 수다를 떨지 못하게 하면 어떨까. 이런 분위기에선 차라리 술을 안마시면 안 마셨지 그 짓은 못하겠다는 사람이 많을 듯 싶다.

‘술은 취하자고 마신다’는 것이 정설이다. 또한 술을 마심에 있어 술잔 앞에 모두는 평등하다. 술자리에서 취하고 덜 취함은 신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얼마나 잘 버티느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주당들이 술을 마시기 전 하는 약속이 있다. “오늘은 정치, 종교, 돈 자랑은 하지말자” 이약속이 지켜지는 술자리를 거의 보지 못했다. 수다를 떨다보면 그놈 저놈하며 정치가들을 안주 삼아 씹는다.

몇 순배 술잔이 돌다보면 알딸딸한 기분이 UP되어 목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그러다보면, 마음속에 있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남이 듣든 말든 계속 하게 된다. 취중진담이 여기서 나온다. 이 자리 저 자리에서 말들이 많아지다 보면 상대방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목청은 점점 더 커진다. 이런 상승효과(?)로 술집은 항상 시끌버끌하다.

술자리에서 큰 소리 빵빵 치며 “다음은 내가 살게” 하는 친구의 호언-장담(豪言壯談)을 믿는 사람은 아직은 순진한 사람이다. 술자리에선 숫제 약속 같은 것 하지도 말고 믿지도 말아야 진정(?)한 주당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주당들의 수다는 아침에 술이 깨면 기억나지 않는다. 술값을 누가 냈더라. 주머니 뒤져 보니 카드 긁은 영수증이 나온다. 아! 불사. 그 놈들이 지들이 산다고 해 놓고 나한테 씌웠구먼!

수다는 여성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면 아직 사회를 모르는 초년병들이다. 이는 “남자들은 과묵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혼자서 술집에 들어가 주당들이 하는 수다를 경청(?)해 보시라. 귀가 아플 정도로 시끄럽지만 재밌다. 술자리마다 같은 주제를 놓고 격론을 벌리는 일은 드물지만 온갖 이야기들이 튀어나온다.

술자리에서 수다의 주제는 최근 돌아가는 사회성이 가장 많고, 직장인들끼리라면 자리에 없는 상사의 흉보기가 아닐까. 그러다가 막상 그 상사가 우연찮게 그 술자리에 끼게 되면 아부 근성이 나온다. 이를 나쁘다고만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주당들의 수다도 연령에 따라 변해가는 것 같다. 젊은 날을 회상해보면 화제가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나 카사노바 같은 유의 대화가 주를 이루었다면 중년층은 돈 버는 이야기나 골프 같은 사치스러운 이야기가 공통분모를 이루고 있다.

그러다가 은퇴 후 친구들 모임에서는 건강문제가 주를 이룬다. 누구는 무슨병에 걸려서 수술을 했다거나 일찍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는 등 우울한 이야기뿐이다.

어느 글에서 본 것이다. 직장에서 갓 은퇴한 어느 중년 남자가 자동차에 Retired(은퇴했음).

No Hurry, No Worry, No Boss, Free Life,라는 글을 적어 놓고 다닌 다는 것이었다.

​이 남자는 이제 자신을 구속하는 것이 없어 홀가분하고 즐거웠다는 것을 강조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규칙적인 삶과 질서로부터 벗어났으며, 직장에서 은퇴한 뒤 아무 구속 없이 살아가는 자유와 쫓기는 시간 없이 항상 여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인데 그런데 이처럼 살아가는 남자는 과연 행복할까?

심리학자인 서은국 연세대 교수는 “행복하려면 가족, 친구와 산책 나가고 수다 떠는 경험을 매일 하라”고 했다.

일찍이 조지훈(趙芝薰, 시인 1939-1968)은 ‘술은 인생이라’는 글에서 “제 돈 써가면서 술 안 먹어준다고 화내는 것이 술뿐이요, 아무리 과장하고 거짓말해도 밉지 않은 것은 술 마시는 자랑뿐이다.”고 일갈했다. 그대들은 어떤가.

<삶과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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