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에 취한 중국인

커피에 취한 중국인

 

임재철 칼럼니스트

 

가을의 길목에서 지난번 ‘커피 한잔’에 이어 커피 수다를 한 번 더 떨어볼까 한다.

필자 생각엔 수다를 떠는 가운데 인류는 문학을, 철학을, 그리고 종교를 갖게 되었다고 본다. 과거 책에서 보면 당대의 유명 작가들이 카페나 주막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던 걸 보면 수다는 애초부터 생산적이었던 거다.

 

격세지감이라 해야 할까. 지난 30년간 수없이 중국을 다녀왔고, 심지어는 주말에 지인들과 술 마시러 동네 마실 가듯 아무런 주저 없이 가던 중국을 가지 못하고, 지금은 중국 방송이나 현지 지인들이 보내주는 소식에 의존하고 있으니 가없는 세상에서 너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 건너 중국의 커피는 어떨까. 누구나 잘 알 듯 중국은 일찍이 차(茶)문화가 발달했고 바이주(白酒) 나라이며, 커피 값은 물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싸 빠른 발전을 이룩하진 못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루이싱과 같은 저렴한 중국 현지 커피업체의 등장과 젊은 연령층의 커피 소비 증폭으로 중국의 커피 시장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지난 7월 제31회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가 열렸던 중국 청두(成都) 유니버시아드 선수촌에는 강력한 인공지능(AI) 시스템을 통해 6~10종의 커피를 만들 수 있는 커피 로봇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른바 90초면 유니버시아드대회 한정 라떼아트를 완성하는 커피머신이 전 세계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렇듯 첨단 과학기술에 이르기까지 중국 커피 시장의 발전 배경에는 주요 소비층에서 만들어진 거대한 수요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중국 커피 시장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중국 관련 기사에서 스타벅스(星巴克咖啡), 루이싱 커피(瑞幸咖啡, luckin coffee), 코스타 등 커피 관련 기업들의 이야기가 연일 쏟아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가령 세계 커피 소비가 매년 2%씩 증가하고 있는 것에 비해 중국은 매년 15%씩 증가하는 것을 봐도 중국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의 크기가 짐작된다.

그러니까 문득 예전 중국 호텔에서 조찬시 최애 식품이었던 유탸오(油条)를 커피에 찍어 먹었던 시절은 이제는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 돼 버린 것 같다. 90년대 중국의 아침 대표적인 길거리 서민음식은 단연 기름에 튀긴 빵과 콩국이었다. 말하자면 커피가 중국에 들어온 지 100여 년이 흐른 현재, 커피는 여전히 변화를 꾀하며 원래 커피를 마시지 않던 중국인들이 자신을 받아들이고 좋아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상하이(上海)·베이징·청두(成都)·난징·항저우(杭州) 등의 큰 도시에도 카페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딜로이트 차이나가 발표한 ‘중국 원두커피 업계 백서’에 따르면 중국 대도시의 커피 침투 율이 67%에 달하며, 커피 소비자는 20~40대의 도시지역의 화이트칼라로 대부분 대졸 이상의 비교적 높은 소득 수준에다, 이 중 60% 이상의 여성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중국 커피 시장에서 인스턴트커피 비중은 압도적이다. 한국, 일본 등 기타 아시아 국가도 인스턴트커피에서 RTD(Ready To Drink)커피, 원두커피 순으로 시장이 발전했으며, 지금의 중국 커피 시장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중국의 커피 체인 시장은 1999년 중국에 진출한 세계 1위의 커피 브랜드인 스타벅스가 장악하고 있다. 그런데 스타벅스는 중국 커피 시장, 특히 원두커피 시장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 중국 전역의 크고 작은 커피 점에서 중국과 세계 문화가 지속적으로 부딪히며 근래에는 ‘중국만의 커피’ 맛이 탄생하고 있다. 스타벅스에 이어 스타벅스에 도전장을 낸 루이싱 커피와 같은 중국 현지 기업이 중국 커피 시장에 뛰어들면서 스타벅스 독재체제가 아닌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예컨대 과일 리치와 장미 커피, 와인이 함유된 커피, ‘간장시럽라떼’와 ‘연두부라떼’, 또 산시(山西)의 묵은 식초와 커피를 결합해 신맛이 강한 산시식초아메리카노, 나한과(羅漢果)아메리카노 등 중약 개념의 커피가 등장했다.

뿐만 아니라 중국 최대 커피 생산지인 윈난을 비롯 하이난, 광둥, 쓰촨(四川), 타이완 등 중국에서 생산되는 커피콩의 재배 시장에도 이목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중국의 커피 소비 시장이 커지면서 ‘좋은 원두’ 생산을 위해 최근 커피를 재배하는 농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높은 고도와 크게 덥지도 춥지도 않은 기후는 커피를 키우는 최적의 날씨로 작용해 중국 커피 생산도 하나의 블루칩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인다.

 

커피 산업이 활기차고 커피 문화에 있어서 상징적인 긴 생명력을 발산하는 상하이(上海)에서 커피 문화는 이제 도시의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올 상반기 기준 상하이의 커피숍 수는 10,000여개를 육박하며 뉴욕, 런던, 도쿄 등을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해 명실상부한 ‘세계 커피 도시’로 만들고 있다. 와이탄(外滩)을 비롯 거리 곳곳의 이색 커피숍은 경제적 소비 만 아니라 상하이라는 도시의 인문학적 매력을 전하는 곳으로 사귐과 비즈니스의 장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아무튼 전 세계에서 하루 30억 잔 팔리는 커피!

이런 막강한 소비력 앞에 중국인들이 현재 향긋한 커피 향기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고, 공원을 산책하며, 카페에 앉아 커피를 즐기는 나라로 변화되어 가는 것을 쉽게 엿볼 수 있다. 우리가 비교적 잘 아는 지린(吉林)성 옌볜(延邊) 차오셴족(朝鮮族,조선족)자치주 옌지(延吉)시에도 최근 커피 열풍이 불어 닥치고 있다고 한다. 결국 중국인의 커피 문화 사랑이 새로운 소비를 통한 내수 확대와 산업 고도화를 주도하는 발전 경로를 모색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산다는 것은 본디 길을 가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 인지 우리의 갈 길이 궁벽하고 살길이 궁핍하다. 필자는 추억이 가득한 중국에서의 한 순간 한 순간이 또렷이 기억에 남는다. 사람이 살아가고 나그네를 반기는 중국 카페에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실컷 수다를 떨라치면 그때의 중국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다시 ‘여기가 중국이지(这里是中国吗?)’ 하는 그날을 그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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