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술병』
아름다운 이 가을, 풍성하고 넉넉한 한가위!
육정균(시인/부동산학박사)
유난히 심했던 폭우와 계속된 폭염만 계속된 여름을 뒤로하고, 싱그런 가을 한가위를 생각하니 기쁜 마음이 앞선다. 가을이 오면, 좋아하는 사과, 배, 대추, 밤, 포도 등 과일부터 들판마다 누렇게 익어가는 벼들, 푸르른 밭마다 흰콩, 서리태콩, 팥, 동부, 참깨, 들깨, 조, 수수 등 곡식들까지 풍성한 한가위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차례 상엔 예쁘게 깎은 사과와 배, 알밤, 대추를 올리고, 흰콩으로 만든 두부에 들기름을 둘러 부친 두부전, 밤·팥·동부·참깨소를 넣은 송편을 온 가족이 모여앉아 오순도순 정성껏 빚어 차례 상에도 올리고, 추석명절 내내 맛있게 즐길 수 있으니 나이를 먹은 지금도 한가위는 급한 걸음으로 다가온다.
그뿐인가? 햇곡식으로 빚은 전통주도 한가위를 넉넉하고 풍요롭게 한다. 우리나라의 명절인 추석에 가장 잘 어울리는 술은 위스키나 와인이 아닌 전통주이다. 우리 전통주의 역사와 유래는 매우 깊다. 삼국시대 이전인 마한시대부터 한 해의 풍성한 수확과 복을 기원하며 맑은 곡주를 빚어 조상께 먼저 바친 다음 술을 마시며 노래와 춤을 즐겼다.
삼국시대의 술은 발효원인 주국(酒麴)과 맥아(麥芽)로 빚어지는 주(酒)와 맥아로만 빚어지는 례(醴·감주)의 두 가지였다. 이 가운데 ‘고려주’와 ‘신라주’는 중국 송나라에 알려져 문인들의 찬사 대상이 되기도 했다.
고려시대에는 송나라와 원나라의 양조법이 도입돼 누룩이나 술의 종류가 다양해졌다. 제조 원료도 멥쌀에서 찹쌀로 바뀌고 발효 기술도 정교해졌다. 이때 명주로 꼽힌 것이 ‘삼해주’, ‘이화주’, ‘부의주’, ‘하향주’, ‘춘주’, ‘국화주’ 등이다. 전통주의 예찬론자들은 “한국의 전통 민속주는 중국술처럼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거나 일본 술처럼 섬세하지는 않지만, 보드카처럼 독하지도 않다. 과실주가 아닌데도 느껴지는 은은한 향, 자연스러운 빛깔, 같은 알코올 도수라도 유난히 부드러운 느낌은 그 어떤 술과도 다르고, 전통주마다 큰 차이는 없지만 자주 마시다 보면 미세한 차이를 알게 되고 많이 마신 후에도 두통이 없다”는 칭찬이다.
이러한 전통주 중 한가위 차례 상에 단골로 올라가는 술을 살펴보면, 서울, 경기에는 ‘문배주’가 있다. 이 술은 “익으면 배꽃이 활짝 피었을 때의 향이 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조와 찰수수로 빚는다. 또한, ‘옥로주’가 있다. 이 술은 조선 순종 때인 1880년경부터 제조되었고 향기가 독특하고 술맛이 부드러운데, 쌀과 율무에 천연암반수로 빚는다.
강원에는 옥선주가 있다. 이 술은 효성이 지극한 선비 이용필의 가주(家酒)로 알코올농도 40%의 증류식 순곡주이며, 여린 연갈색 빛깔과 청량한 향이 특징인데, 옥수수로 빚는다. 충청에는 ‘한산소곡주’ 등이 있다. 이 술은 저온에서 100일간 발효 숙성시켜 제조한 곡주로 염분이 전혀 없고 철분이 약간 함유된 천연수를 사용하는데, 찹쌀, 멥쌀과 들국화로 빚는다. ‘가야곡왕주’는 땅의 기운을 받아 100일 동안 익힌 궁중술로, 새콤달콤한 맛에 은은한 약초냄새가 나는데, 찹쌀, 매실, 참솔 잎으로 빚는다. ‘두견주’는 신경통, 부인냉증, 요통 등에 효능이 많다고 동의보감에 나와 있다. 진달래꽃에서 나오는 아자라성분이 진해작용을 하는데, 찹쌀과 진달래꽃잎으로 빚는다.
호남에는 ‘송죽오곡주’ 등이 있다. ‘송죽오곡주’는 단맛 신맛 쓴맛 매운맛 떫은맛 등 다섯 가지 오묘한 맛을 느낄 수 있는데, 찹쌀, 솔잎과 댓잎으로 빚는다. ‘이강주’는 전통소주에 배와 생강을 넣었다 해서 ‘이강주’라는 이름이 붙은 우리나라 3대 명주의 하나로 미국 일본 등지에도 수출되어 좋은 평을 받았는데, 소맥, 쌀보리, 배 생강으로 빚는다. 이 중 필자는 ‘한산소곡주’를 참 좋아한다. 이 술은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을 중심으로 퍼져 있는 한산 지방의 명주로서 백제 유민들이 나라를 잃고 그 한을 달래기 위하여 빚어 마신 백제 때의 궁중 술이라는 설이 있다. 우리 전통주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한산소곡주’는 백제 1500년 전통이 깃들여 있다. 알맞게 숙성된 소곡주를 맛보기 위해 저온 숙성 창고를 사용한다. 깊은 산속 샘물처럼 맑아 보이는 ‘한산소곡주’는 피를 맑게 해주는 약리 작용도 있고 감칠맛이 뛰어나서 추석 차례 상에서 늘 인기를 차지하고 있다. 그 외 추석에 가족들이나 친지들과 함께하기 좋은 술로 울산시의 ‘복순도가손막걸리’, 홍천 약주인 ‘동몽’, 예산 사과와인인 ‘추사’, 대부도의 한국와인인 그랑꼬또 와이너리의 맑고 푸른 술‘청수’를 권하고 싶다.
요즘 후쿠시마『원전 정화 처리수 방류』와 더불어 굳이『원전 오염수 방류』라며 “우리 바다의 물고기까지 방사능에 오염되어 먹을 수 없다”는 듯 용어를 잘못 쓰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한국, 중국, 미국 등 세계 모든 원전에서는 “원전의 방사능에 오염된 물이라도 정화된 처리수를 방류하지, 방사능에 오염된 물까지 바다로 그냥 버리는 나라는 없다.” 따라서, 올 추석에도 맛있는 우리 해산물과 함께 ‘청수’등 좋은 술을 한가위 내내 맘껏 즐겼으면 좋겠다.
* 육정균 : 충남 당진 出生, 2000년 작가넷 공모시 당선, 2002년 현대시문학 신인상(詩), 2004년 개인시집 「아름다운 귀향」 출간, 2005년 현대인 신인상(小說), 부동산학박사, (전) 국토교통부(39년 근무) 대전지방국토관리청 관리국장(부이사관) 전 개인택시공제조합이사장, 단국대학교 부동산건설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