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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음주역사, 음주패턴, 그리고 음주문제 대책

세계의 음주문화와 알코올 정책 연구①

 

인도의 음주역사, 음주패턴, 그리고 음주문제 대책

 

조성기(아우르연구소 소장/경제학 박사)

 

조성기(趙聖基, Surnggie Cho) PhD. of Economics. MPH.

▴원주한살림, 이사장 ▴살림농산, 대표이사 ▴생명농업, 이사 ▴아우르연구소, 대표연구원

▴한국대학생알코올문제예방협회, 회장 ▴한국할랄산업연구원, 이사

 

 

10년 전인 2013년 인도에 한국의 소주가 수출되었다는 소식이 보도된 바 있었다. 당시 주류업계는 그 큰 시장에 한국 술이 들어간다는 소식에 즐거움 보다는 “인도대륙이 과연 지속적인 공략대상일까?”를 궁금해 하고 있었다. 인도의 음주문화는 단순히 음주문화 자체의 연구를 넘어 한국주류의 새 시장 개척 가능성 여부에 대한 궁금증에서도 연구대상이 된다. 문화를 이해해야 만이 시장공략도 가능하고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일단 그 당시 업계의 질문은 순박했다. “그 더운 나라에서 무슨 술을 마실 수 있을까? 과연 얼마나 그들은 마시고 있을까? 음주량과 음주문화는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 왜 그런가?”라는 질문이었다. 신비의 나라로 알려진 인도의 음주문화에 대해 정리해 본 것은 바로 10년 전이었다. 그때 수집된 정보는 다양한 의미가 있었다. 시간이 흘러 인도 내 음주를 둘러싼 찬반 논쟁은 여전하지만 친시장적 사고방식이나 행동이 최우선이 되고 있고 술 소비량도 급증하고 있다.

시장자료를 먼저 일별하자. 2020년 2조3961억 루피(약 36조6770억원) 규모였던 인도 주류시장은 2025년 2조7012억 루피(약 41조3470억원)규모로 예측되고 있다. 연평균 5.7%의 성장세가 예상되는 것이다. 소비규모를 보더라도 알코올 소비량이 2020년에 약 50억 리터에 달했으며 2024년에는 약 62억 1천만 리터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었다. 인도인들의 가처분 소득 수준 상승, 주류접근에 대한 용이성, 도시 밀집인구의 증가 등이 술 많이 마시기를 앞당기고 있는 요인들이다. 시장정보가 아닌 의학계 연구를 보더라도 지난 30년 동안 알코올 소비가 증가하였다.

 

1990년 이후 알코올소비량은 주 소비층인 40~64세 남성의 소비량이 5.63% 증가하여 가장 높았고, 15~39세 젊은 연령층이 5.24% 증가해 그 뒤를 이었다. 만만치 않은 증가세다. 노인도 2.88%나 증가했다. 인도의 전국 가족건강 조사로는 남성과 여성 모두 도시 지역보다 시골 지역에서 알코올소비가 더 높았다. 이는 사실 검증이 더 필요한 놀라운 조사결과다. 통상 도시가 더 음주량이 많은 데 시골에서 그 같은 조사결과가 나온 것은 추가분석을 요한다. 전반적으로 15세 이상 인도 여성의 약 1%가 음주를 하고, 남성은 19%가 음주를 한다는 조사다. 하지만 북동부 아루나찰 프라데시 주에서는 남성 53%, 여성 24%가 음주를 하고 있어서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지역별 문화적 편차도 큰 나라다.

시대가 급변하면서 K-팝, K-드라마 등 한국 콘텐츠를 접한 인도 소비자들이 늘면서 한국 음식과 술 수요가 증가하고 성장 잠재력이 크다. 통계자료를 보면 한국 주류 수입규모는2018년 17만7000달러(약 2억2580만원), 2019년 13만6000달러(약 1억7370만원), 2020년 19만6000달러(약 2억5030만원)로 정체되고 있지만 상당량이다.

한국기업들은 현지 수입전문상과 협력하면서 국내소주의 원액을 수입해 현지에서 희석, 병입 등의 제품화 과정을 거쳐 판매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유럽 위스키를 수입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인도는 많은 인구, 한류 열풍 등으로 연구·개발, 판로 확대방법 연구 등을 통해 확장성이 큰 시장이다.

모든 국가, 문화는 주류소비를 선호하거나 배타적이거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한다. 소위 신의 나라라고 하는 인도는 어떠할까? 이슬람교도나 금욕적인 기독교도들은 음주를 금지한다. 열린 도시인 아부다비나 두바이를 가도 근본적으로는 금주다. 영어권이나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사람들도 음주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도 있고, 술 취하는 일에 대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이중적이다.

과음은 대부분의 문화에서 비난한다. 유태인들이나 이탈리아 사람들도 과음을 비난한다. 우리나라나 프랑스, 일본 등에 음주에 대해 지나치게 허용 적이고 일부 만취를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사실 인도의 음주문화를 딱 잘라 정의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인도인들도 독립 이후 소득이 늘면서 음주량을 늘렸다.

 

그야말로 인도에는 없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금주론 자와 허용론자가 공존하는 곳이 인도일 수밖에 없다.

1947년 독립 이후 인도는 사회, 정치, 경제적 측면에서 큰 변화를 했다. 음주문화도 따라서 변했다. 독립 후 페이비언 사회주의가 도입되었고 마르크스식 사회주의가 사회를 이끄는 주축이 되었다. 국가개발 5개년의 계획, 산업화와 농업발전이 이루어졌다. 1970년대에는 식량생산량이 3배나 뛰어 자급자족 수준이 되었다. 산업 인프라도 발전하였다. 이와 함께 내부갈등이 커졌다.

그래도 인도사회는 근본적으로 다양한 집단이나 다각적 관점들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사회발전과 함께 하층 카스트의 사람들도 상층 카스트의 규범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카스트 간의 동질화가 서서히 진전되면서 도시거주 불가촉천민들의 현대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서구식 생활양식이 보급되었고, 상품구입과 소비증대가 발생했다.

인도의 문화유산이 본질적으로 변한 것은 아니지만 인도사회의 갈등증폭과 생활상의 변화는 인도인들의 알코올, 마약 등 중독물질의 사용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농업이 발전한 지역에서는 술을 마실 수 있었다. 그 경우 마리화나나 아편의 사용빈도는 적었다. 독립 후 인도의 가정에서는 술을 제조 할수 있었다. 동시에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상업용 주류를 제조하는 대형업체들도 생겼다. 독한 증류주가 생산되면서 새로운 소비자 층을 만들어갔다. 예전에 술을 잘 안 마시던 도시민들이 술에 미혹되고 음주를 시작했다. 예외 없이 소득수준이 증가는 술 소비량의 증가로 나타났다.

1970년대 경제발전 이후 인도인의 음주량이 크게 늘었고, 당시 주류정책은 정치지지도와 연관성을 보였다

 

술은 1940년대 이래 인도사회 변화의 가장 중심인자가 되었다. 음주 증가 현상이은 1970년 이후에 더욱 더 두드러졌다. 1950년대 인도의 전체 알코올 생산량 중에 마시는 술의 비중이 2.1% 정도에 불과했다. 알코올은 마시는 물질이 아니라 산업적 용도의 물질이었던 것이다. 1980년대 말이 되자 마시는 알코올의 비중이 42.1%까지 올라갔다.

 

인도의 국민의회 파는 지지 세력을 잃었을 때 주류정책과의 관련성이 있었다. 인도 국민회의파는 영국 상품을 배척하고, 완전자치를 표방하는 ‘스와라지’ 운동과 인도 국산품을 애용하자는 ‘스와데시’ 운동 등을 주도했다. 국민·민족 교육 등을 주장하면서 민족의 일체감을 높였고, 국내 산업의 발전에 기여를 했다. 독립 이후에는 인도의 가장 지배적인 정당이었고, 1945년부터 1977년 총선 때까지는 인도의 유일한 집권정당이었다.

 

하지만 무리하게 진행된 산아제한 정책과 술소비를 억제하는 알코올 정책 등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거세지며 1977년부터 1980년까지는 야당으로 밀려나야만 했다. 인도의 정치도 술소비량과 관련성을 보인다. 1960년대 중반 인도 연방정부에서 알코올 정책을 검토했고, 인도헌법에 “주정부는 국민의 영양 상태와 생활수준, 공중보건의 향상을 중요시해야 한다. 주정부에서는 의학적인 목적을 예외로 건강을 유해하게 하는 술과 약물들의 소비를 금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라는 문구를 넣었다. 술 소비가 늘어나는 현상에 놀라 그렇게 했지만 정치적 지지도 유지에는 마이너스 효과 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우리나라도 술에 관한 억제 정책을 선거철에는 잘 사용하지 않았던 사실들이 관찰된다.

전통적 인도 종교에서는 금주 전통을 유지하는 일반적 경향성을 보였지만 술에 분명한 역할을 부여했다.

 

인도사 속에서 술에 대한 입장은 힌두이즘, 이슬람, 영국 지배 등을 고루 검토해야 정립할 수 있다. 힌두교는 항상 금주의 입장을 취했다. 불교도 마찬가지다. 그 입장은 종교설화 ‘뿌라나(Puranas)’와 ‘경전(Suturas)’들에 적혀 있다. ‘뿌라나’에는 우주의 창조와 파괴, 신들과 성인들의 계보, 인도인의 시조와 왕조들의 역사 등의 내용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일반인들의 음주에 금주라는 입장을 보였다고 해서 술의 역할에 대해 등한시 했던 것은 아니다.

 

술은 인도신화에서 신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 적혀있다. 인도에서 술과 물은 근원이 같다. 소마(Soma)와 수라(Sura)는 기원전 2000년경의 인도고대사에 등장하는 음료다. 우리는 우리의 ‘술’과 발음이 비슷한 ‘수라’가 인도에서 기인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소마’를 마시면 행복이 오고, 깨어나며, 평온하게 되고, 자극되었다 적혀있다. 소마의 원료는 버섯이었다. 그리고 가격이 매우 비쌌다. ‘수라’는 쌀, 당밀, 꽃 등으로 생산한 강한 발효주였다. 아마 알코올 농도가 약주에 해당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주로 크샤트리아 계급의 전사들이 전투 중 마신 것이 수라다. 인도의전사들도 고대로부터 술을 마시고 취했던 것이다. 술이 특정 집단의 음용물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인도의 대서사시인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에도 음주에 대한 기록이 있다. 라마야나에서 음주는 흑백 또는 선악으로 가르는 기준으로 묘사되고 있다. 나쁜 사람들은 술과 고기를 먹고, 좋은 사람들은 금욕적인 채식 주의자들로 묘사된다. ‘마하바라타’는 북쪽의 땅을 놓고 싸우는 이야기이다. 취중에 일으킨 전쟁으로 왕조가 붕괴된다. 만취하는 음주는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인식이 인도고전에 있는 것이다.

 

베다 이후의 시대에도 전사계급에게는 ‘수라’가 허용되었다. 술은 일반인들에게는 금지되었고 통치자들이나 궁정 속의 신하들의 전유물이었다. 기원전 9세기에서 4세기에 해당하는 수트라(Sutra)시대의 기록을 보면 독한 알코올음료는 특별한 손님을 접대하기 위한 물질이다.

<다음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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