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카의 추억

보드카의 추억

박정근(문학박사, 작가, 시인, 삶과 술 칼럼니스트)

 

 

박정근 교수

필자는 카자흐스탄, 몽골, 러시아 등에 체류하면서 처음으로 보드카를 맛보았다. 무색무취한 순수한 술이었다. 보드카는 세 국가의 주민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적인 식품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겨울의 기후가 우리보다 훨씬 추운 까닭에 추위를 이기기 위해서 열을 내는 보드카를 즐기는 문화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게다가 그들은 각 나라의 일급의 보드카에 대해서 매우 강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다.

 

보드카(vodka)란 명칭은 러시아어의 ‘물(voda)’에서 어원을 가지고 있으며 물처럼 투명하고 깨끗한 술을 의미한다. 보드카는 증류주인 위스키나 코냑이 가진 특유의 색과 향이 없다. 애주가들이 보드카를 사랑하는 이유가 바로 이 술의 순수함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이 술이 다양한 칵테일의 기초 재료로 활용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른 맛과 향을 첨가하지 않고 알코올 성분만 더해주는 것이다. 소위 칵테일 ‘스크루 드라이버’는 보드카에 오렌지 주스를 넣고, ‘블러디 메리’는 토마토 주스를 넣어서 만든다.

 

필자가 보드카에 익숙하지 않아 독한 맛을 희석하려고 보드카 애호가들이 추천하는 대로 스크루 드라이버를 시도한 적이 있다. 쥬스의 달콤한 맛 때문에 보드카가 얼마나 독한지를 잠깐 망각하였다. 하지만 연거푸 칵테일을 마시고 나서 나도 모르게 잠들어버리고 말았다. 동석자는 필자를 깨우다가 여의치 않자 집으로 전화해서 자가용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불상사를 연출하고 말았다.

중앙아시아에서 한국학에 대한 국제학술대회에 여러번 참가한 적이 있다. 교수들은 밤이면 술집을 찾아가 보드카를 즐기며 밤문화를 즐기곤 했다. 물론 각자의 취향에 따라 마시는 방법도 다르겠지만 40도 이상의 독한 술이라 대개 샤슬릭이라고 하는 양고기 구이와 함께 마셔야 했다. 짭짤하게 석쇠에다 구워서 먹는 카작의 양고기 샤슬릭은 보드카 안주로 일품이었다. 소주만 마시다 보드카에 빠진 장 교수라는 분이 보드카를 마시고 취하는 느낌을 재미있게 표현하여 박수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는 보드카의 취기가 몸에서 서서히 퍼지는 느낌을 “취기가 안개가 피어오르듯 퍼져나가네!”라고 표현했다. 보드카를 마시면서 갑자기 취하기보다 서서히 취기가 깊어져 가는 느낌을 의미하리라. 이렇듯 음주행위란 그저 술을 마시고 취하여 객기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취하는 느낌을 천천히 즐길 줄 알아야 술을 제대로 먹는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가 보드카를 한 모금 마실 때마다 취기가 어떻게 변하는지 면밀하게 느끼고 관찰하며 즐겼던가 보다.

 

필자가 일 년간 연구년을 보낸 카작의 크즐오르다는 조그만 도시였지만 구역의 골목마다 샤슬릭을 만드는 식당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저녁이 오면 여기저기서 양고기를 굽느라 연기가 피어오르고 고소한 냄새에 끌리어 술집으로 발걸음을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샤슬릭을 마시면 갈증이 저절로 생겨 무색의 보드카를 목구멍에 털어 넣었다. 사실 한국학과 여교수 이외에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이국의 생활은 무료하기도 하기 짝이 없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술파티였다.

필자는 여교수 두 분과 크리스틴이란 한국계 미국교수와 함께 불금파티를 가끔 열어 축제 분위기를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여기에도 샤슬릭과 보드카, 맥주가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술과 안주였다. 외로움은 이국생활에서 소리 없이 찾아오는 정신적인 독약이었다.

카작인들에 둘러싸여 말이 잘 통하지 않아 소통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영어를 하는 친구를 만나면 의사를 전달할 수 있어 속이 시원했다. 그만큼 소통의 부재는 인간을 황폐하게 만드는 독소라고 볼 수 있다. 이방인으로서 우리에게는 잡담이라도 즐길 수 있는 술자리가 절실했던 것이다.

 

러시아어나 카작어만 쓰는 현지인들은 우리를 답답하게 만들었고 그들에게 영어나 한국어를 가르치는 역할이 매우 힘이 들었다. 교회에서 만나는 고려인 3세들도 거의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해 토막 영어로 겨우 소통을 하는 정도였다. 한국학과 교수들도 답답한 불통의 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서로 모여 술파티를 벌이자고 기획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고기가 풍부한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식으로 불고기를 만들어 향수병을 달래기도 했다. 카작의 크즐오르다는 사막도시로 밤이면 모래바람이 창문을 두드리는 현상이 다반사로 일어났다.

 

잠을 자다가도 모래바람이 세게 불어 창문을 두드리면 잠에서 깨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일단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나면 다시 잠을 이루기가 쉽지 않았다. 창문을 두드리는 모래바람 소리가 스산한 느낌을 주어 다시 잠에 빠져들기 어려웠다. 잠자리에서 뒤척이다가 일어나 냉장고에 들어있는 보드카병을 들고 창문을 바라보며 마치 연극대사를 하듯 소리를 치곤했다.

“잠이여, 오라. 나에게는 보드카가 있다!” 신기하게도 몇 모금 마신 보드카는 나에게 잠을 다시 몰고 왔다. 카작 체류 기간 내내 보드카는 내게 가장 친숙한 수면제였다. 이런 사연이 있는 보드카를 어찌 잊겠는가. 필자는 해외여행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위스키보다 좋은 보드카를 사와 냉장고에 저장하고 조금씩 즐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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