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식으로서의 음주 행태

성인식으로서의 음주 행태

 

박정근(문학박사, 황야문학 발행인, 작가, 시인)

 

 

박정근 교수

언제부터 술을 마셨는가의 물음을 마치 인간의 조숙함을 결정하는 잣대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처럼 할아버지를 위한 술심부름을 하면서 막걸리를 주전자 주둥이에서 한 모금씩 몰래 마시는 경우도 있고 사춘기 청소년들이 모여서 어른들의 흉내를 내며 음주를 시작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좀 더 낭만적인 모습은 남녀가 만나서 서로 사랑을 확인하는 의식으로 와인을 서로 따르며 술을 즐기기도 한다.

 

위에서 언급한 경우는 연령이 단계적으로 높아지면서 음주의 양상이 달라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 글에서 언급하고 싶은 음주의 양태는 성인으로 들어가면서 청소년들이 술꾼으로 도약하기 위한 성인식의 경우이다.

어느 자칭 술꾼이며 여성 작가가 자신의 음주의 첫 단계로서 재미있는 경험을 연작으로 소개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학교에서 막 해방된 시기에 미성년에게 금지된 칵테일 바를 출입하는 과정을 픽션으로 재현하고 있었다.

 

통상적으로 술집의 기도(きど,木戸:문지기)는 법으로 금지된 청소년의 술집 출입을 막으려고 신분증을 요구한다. 술을 팔아서 돈을 벌어야 하는 그들이 무엇을 위해 신분증을 점검하겠는가.

술집 기도는 결코 도덕적인 기준을 지키기 위해 그런 요구를 하지는 않는다. 풍속을 단속하는 행정관청의 제재를 면하려고 형식적으로 단속을 하는 모양새를 취할 뿐이다. 그렇다 보니 단속의 기준이 고무줄이 될 수밖에 없다. 끄나풀인 경찰로부터 연락이 오면 기도는 단속을 강하게 하는 척 청소년의 출입을 막는 모습을 연출한다. 하지만 평소에는 출입문에 선 기도의 기분에 따라서 술을 마실 수 있는 기준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작품 속의 그녀는 생년월일이 늦어서 아직 성년이 되지 못한 상태이다. 그녀는 칵테일 바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인들의 세계에 대해 강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마치 신이 낙원에 금단의 열매를 설정해놓았기 때문에 아담과 이브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곳에 열려있는 금단의 열매를 먹으면 신과 같은 전지전능한 능력을 가질 수 있다는 사탄의 유혹은 엄청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창세기에 금단의 열매를 먹은 아담과 이브는 낙원에서 추방되어 평생 노동을 해야만 먹을 수 있는 저주를 받고 만다.

 

이와 비슷한 유혹에 대한 벌칙은 이카루스의 신화에서 나타난다. 이카루스는 태양 가까이 올라가면 신과 같은 능력을 가질 수 있다는 유혹에 빠져 밀랍으로 날개를 만들어 달고 태양을 향해서 날아간다. 결과는 매우 비극적이다. 태양에 가까울수록 날개를 단 밀랍이 녹아 땅바닥에 떨어져 죽고 마는 것이다. 인간은 금기의 계율을 두려워하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파괴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유혹이다. 청소년들은 술에 대한 금기를 규율로서 의식하여 금주를 하게 되지만 오히려 술이 더 끌리는 유혹의 동기가 될 수 있다.

작가는 출생일이 빨라 겨우 성인이 된 친구를 대동하고 금지의 지역 칵테일 바에 간다. 그녀는 친구의

신분증을 제시하고 자신은 신분증을 깜박 잊고 집에 두고 왔다고 거짓말을 한다. 기도는 그녀가 미성년자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눈감아준다. 그래야 술집의 매상을 올릴 수 있고 미래의 술꾼을 육성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아직은 본격적으로 손님들이 들이닥치는 시간이 아니기에 별도의 매상 실적이 될 수 있다.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 방식이 적용될 수 있다.

 

그녀는 지갑에 충분한 돈이 없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싸구려 칵테일 한 잔을 주문하여 천천히 음미한다. 아직 충분히 영글지 않은 처녀가 지금까지 금지되었던 영역에 숨어 들어가 금지된 술을 맛보는 기분은 짜릿하기만 하다.

그곳에는 노련한 제비들이 웅크리고 그들의 먹이를 찾고 있다. 제비는 첫눈에 먹잇감을 알아본다. 그들의 눈과 코는 무척 예민하여 영계를 낚아채려고 한다. 그는 목적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날쌘 눈초리를 갖추고 있고 젊은 처자의 상큼한 냄새를 쉽게 맡을 수 있다.

그녀가 첫 잔을 거의 마셨다는 것을 파악한 후 그는 웨이터를 통해 칵테일 한잔을 선사한다. 웨이터가 술잔을 배달하며 제비가 있는 방향을 가리킨다. 작가는 멀리서 멋지게 손짓을 하는 제비를 발견하고 무언가 검은 손길이 느껴진다.

 

술집에서 검은 손길의 존재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금지된 사랑을 하는 듯 한 전율과 서스펜스를 절절하게 전해준다. 이런 맛을 보려고 여기에 왔다는 막연한 쾌감을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칵테일 바로의 첫 나들이가 이 정도에서 끝나는 것이 안전하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이번 모험은 앞으로 지속될 술꾼으로서의 술집 순례가 시작되는 성인식일 뿐이다.

 

필자는 여성작가의 성인식으로서의 칵테일 바 출입 사건을 읽으면서 여성 나름의 아기자기한 짜릿함을 느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여성은 남성보다 술에 대한 사회적 금기를 강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지금은 술에 대한 여성의 금기가 다소 완화되었지만 작가가 처음 술집을 체험한 오십년 전에는 그리 쉽지 않았다. 페미니즘의 대두로 여성에 대한 사회적 제약이 대단히 약화되었다.

하지만 사춘기 소녀의 호기심이나 도발은 여전히 교육적 윤리를 넘어 탐미적 소재로 문학적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본다. 사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성인식으로서 술집 탐방이 성인들에게 주는 재미도 감퇴하기 마련이다. 술집 탐방이 반복되면서 사춘기적 호기심은 아쉽게도 매너리즘에 빠져 짜릿한 감흥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나이로 인해 금기에 대한 호기심이 사라져가면서 삶에 대한 즐거움이 줄어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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