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철의 와인교실(16)
오래될수록 좋아지는 와인이란?
김준철 원장 (김준철와인스쿨)
◇ 오래될수록 좋은 와인?

오래될수록 좋은 와인이라는 믿음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 자연과학이 와인에 적용되기 전에는 와인의 양조와 보관은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와인은 수확 다음 해 여름을 넘기지 못하였고, 이런 와인은 오래 될수록 값이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나 몇몇 유명한 샤토에서 나오는 와인은 1년, 2년 더 오래 보관을 해도 맛이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좋아지니까, 이런 와인은 값이 비싼 것은 물론, 명품으로 찬사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즉 와인은 오래될수록 좋은 것이 아니고, 오래 되어도 그 맛이 변하지 않는 와인이 좋다는 것이다. 3년 묵은 간장이라면 변질된 것이 아니고 간장의 특성을 그대로 유지한 채 오히려 깊은 맛과 향을 가진 것이라야 된다.
그래서 옛날에는 특정 포도밭에서 나오는 와인이 아니면, 알코올을 부어서 알코올 농도가 20 % 가까이 되는 강화 와인이 인기가 좋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와인은 장기간 보관이나 운반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오히려 뚜껑을 열어놓고 숙성을 시키면 독특한 향미를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와인의 숙성에 산소가 관여한다는 강력한 믿음이 생긴 것이지만, 일반 와인에서 산소는 와인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가장 큰 요인이 된다.
◇ 알코올 농도와 pH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와인은 첫째 알코올 농도와 산도가 높아야 한다. 즉 포도의 당도와 산도가 높아야 한다. 이 점은 절대적으로 포도가 자라는 환경 즉 테루아르(Terroir)에서 나온다. 햇빛이 잘 비치고, 배수가 잘되며, 수확기에 비가 없어야 하며, 단위면적 당 수확량이 적어야 한다는 등 조건을 갖춘 포도밭에서 나와야 한다.
더운 지방의 포도는 당도가 높고 산도는 낮고, 추운 지방의 포도는 당도가 낮고 산도는 높다. 예를 들어, 프랑스라면 알자스(Alsace), 샹파뉴(Champagne), 루아르(Loire) 등의 포도는 당도가 낮고 산도는 높을 것이고, 론(Rhone)이나 프로방스(Provence) 등의 포도는 당도가 높고 산도가 낮을 것이다. 중간에 있는 보르도(Bordeaux)나 부르고뉴(Brougogne) 와인이 옛날부터 유명한 이유는 당도가 높고 산도도 높은 와인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미기후(Micro climate)에 따라서 예외는 있을 수 있다. 더운 지방이라도 밤의 기온이 시원하다면 산도가 높아질 수 있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산도는 산의 함량이 아니고 산의 해리도 즉 pH를 말한다. 즉 pH가 수치가 낮아야 오래 보관할 수 있다.
◇ 타닌이 많은 와인
둘째는 타닌 함량이 높은 와인이라야 한다. 즉 이런 좋은 조건을 가진 포도를 사용하여 와인을 만들 때 타닌을 많이 추출해야 한다. 타닌은 추출과정(Maceration) 중 껍질과 씨에서 우러나오고, 오크 숙성 중에 더해지기도 한다. 이 타닌은 항산화제로서 작용을 하기 때문에 나무통이나 병에서 오래 숙성시킬 수 있는 레드와인은 영 와인 때 타닌 함량이 많아야 한다. 나무통과 병 숙성 중 타닌은 자기들끼리 또는 색소 분자와 중합체를 형성함으로서 떫은맛이 부드러워지고 붉은 보랏빛에서 벽돌색으로 색깔도 변한다. 오래된 레드와인의 색깔이 옅은 것도 색소분자가 침전을 형성하여 병 밑에 가라앉기 때문이다.
와인 애호가들이 즐기는 병 숙성 중에 형성되는 관능적인 특성은 병에서 생기는 부케로서, 여러 가지 향이 서로 반응하고 오크 숙성에서 생기는 향까지 더해져서 나오는 다양하고 층층이 숨어있는 일련의 향을 말한다. 타닌과 다른 성분이 반응을 하면서 와인에 녹아있는 소량의 산소와 헤드스페이스에 있는 공기에서 산소를 소비하기 때문에 주병 후 한 달이면 병 내부는 공기가 없는 상태가 된다. 이때가 레드와인에 있어서 산소가 배제된 상태에서 화학반응이 일어나는 첫 단계다. pH가 낮을수록 이런 병 숙성이 늦어지고, 이렇게 늦은 반응이 훨씬 더 복합적인 바람직한 최종산물을 낼 수 있다. 병 숙성은 새로운 차원의 복합성을 더할 수 있다.
◇ 보관 조건
셋째는 보관 조건이 적합해야 한다. 와인을 오래 보관하려면 낮은 온도(13-18℃)에서 일정한 온도로 보관해야 하고, 온도가 낮을수록 숙성이 더디며 궁극적인 복합성은 더 커진다. 온도가 높으면 숙성이 빨라지고, 아차하면 전성기를 지나칠 수도 있다. 그리고 온도의 변화가 심하면 와인의 팽창과 수축으로 코르크에 힘을 가해 밀봉력이 약해져서 산소가 병 속으로 유입되어 녹고 와인이 오염될 수도 있다. 또 어두운 곳에서 보관한 와인은 빛이 와인 단백질과 반응하지 않아서 혼탁을 유발하지 않으며, 광산화반응도 촉매하지 않는다. 숙성이 천천히 진행되고, 진동이 없는 곳에서 와인의 전성기를 오래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능한 한 큰 병(Magnum)에 보관하는 것이 더 높은 복합성과 품질을 얻게 된다. 작은 병에 비해 큰 병에 있는 와인은 어떤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큰 병에서 숙성시키는 것이 훨씬 더 복합성을 얻을 수 있다. 375 ㎖와 1,500 ㎖ 병을 비교해 보면, 병목에 있는 공기의 양은 거의 같지만, 와인의 부피는 4배나 차이가 난다. 이것은 작은 병에 있는 와인보다 큰 병에 있는 와인에 산소가 덜 녹아 있다는 말로서, 큰 병에 넣어서 병 숙성시키는 것이 산소와 관련된 반응이 훨씬 적다는 말이다. 대부분 와이너리에서는 레드, 화이트 모두 코르크로 밀봉하기 전에 헤드 스페이스에 질소가스를 주입시켜 매그넘과 하프 사이즈 사이의 녹아있는 산소의 양 차이를 줄이기는 한다. 경매에서 비싸게 팔리는 와인이 대부분 매그넘 사이즈인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그러나 매그넘 사이즈보다 더 큰 병은 코르크도 큰 것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런 효과는 없다.
◇ 언제 마셔야 되나?
그러면 최고급 샤토 와인이나 고급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은 언제 마셔야 되나? 이는 코르크를 따기 전에는 알 수 없다는 말밖에는 할 수 없다. 보관 조건, 품종, 스타일, 빈티지 등에 따라 달라진다. 특정 빈티지 와인의 저장성에 대한 정보는 와이너리에서 작성한 정보, 와인비평가의 비평, 와인 상인이나 여러 가지 정기 간행물의 일반적인 빈티지 차트에서 얻을 수 있다. 병 숙성의 진미를 알려면 많은 돈을 투자해야 한다. 병 숙성으로 개선되는 동일한 빈티지의 와인을 한 케이스나 몇 병을 구입하여 적당한 장소에 두면서 때때로 마셔봐야 한다. 이때는 향이 발전하는지, 떫은맛이 부드러워지는지, 타임차트를 만들어서 그 인상을 기록해 가야 알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고급 와인은 어느 곳이든 온도가 낮고 일정한 곳에서 보관해야 한다. 보통 10℃에서 15℃가 이상적이지만, 7℃에서 21℃ 사이면 무난하다. 이 온도에서는 와인이 서서히 숙성되면서 오래 갈 수 있다. 그리고 와인 병은 눕혀서 보관하여 와인과 코르크가 접촉하여 코르크가 건조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이런 조건을 갖춘 와인이라야 세월이 흐를수록 값이 비싸지는 것이다.
필자:▴김준철와인스쿨(원장)▴한국와인협회(회장)▴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프레즈노캠퍼스 와인양조학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