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파, 적벽을 희롱하다

김상돈의 酒馬看山(8)

 

소동파, 적벽을 희롱하다

 

물과 불의 만남 그 자체도 경이롭지만, ‘불타는 물’이 이뤄내는 천변만화의 조화는 더더욱 신비스럽다. 때론 시심을 자극하기도 하고 때론 예혼(藝魂)을 한껏 부추기기도 한다. 본디 신의 음식이었으나 사람들로 내려와 신명을 돋우게 되는 것이다. 예술의 역사 또한 신의 술(祭酒)에서 인간의 술(飮酒)로 바뀌는 자취를 따르니 예(藝)와 술(酒)이 한 몸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렇듯 오류선생(五柳先生) 도연명(陶淵明)에서 흘러 내려온 물줄기는 당(唐)대의 시인 묵객들의 마음을 적시고 송(宋)으로 이어진다. 주고받을 친구없이 잔 들어 외로운 그림자에게 술 권하는 도연명, 금 술잔 비우고는 달과 마주하지 말라는 이백. 속물이 보기 싫어 술 실컷 마시고 흐릿해진 두보, 그리고 북창의 세 벗을 즐기는 백거이를 이어 가는 이가 바로 소식(蘇軾)이다. 그는 “오직 도연명의 시를 좋아한다”며, 소연명(蘇淵明)을 자처했다.

소식(1037~1101)은 중국 송(宋)나라 사람으로 자는 자첨(子瞻), 호는 동파(東坡)거사로 불리운다. 소동파(蘇東坡)는 음주(飮酒)라는 그의 시에서 술을 조시구(釣詩鉤)라 부르고 또한 소수추(掃愁帚)라 읊었다. 술이야말로 시를 낚는 낚싯바늘이요, 시름을 쓸어내는 빗자루라는 것이다. 당대의 이백, 두보와 같은 음주시인들처럼 술독에 빠져 살지는 않았을 지라도 술을 통해 자연과 합일하는 지혜를 깨달았던 셈이다. 현대중국이 낳은 세계적인 석학 임어당(林語堂)은 그를 기리고 또 기렸다.『소동파평전』을 통해 “뱀의 지혜에 비둘기의 부드러움을 합한 성품을 지니면서, 일체 꾸밈이 없이 지극히 자연스러웠고 늘 성실성을 유지하며, 천성적으로 정치적인 농간을 꾀하거나 이해타산 따위를 할 줄 몰랐던 사람”으로 평한다. 그러면서도 다재다능하고 풍부한 감성과 폭넓은 지식을 맘껏 펼쳤던 인물이라는 것이다.

소동파는 시, 서, 화는 물론이거니와 술에도 상당한 조예를 가진 개성있는 술꾼이었다. 즐겨 마시기도 하였지만 스스로 술 빚기를 자주 했다. 꿀술을 빚는 밀주가(密酒歌), 계주송(桂酒頌)을 비롯, 동파주경(東坡酒經)을 지었고, 술 품평에도 일가를 이뤘다. 특히 술이 천록(天祿, 하늘이 준 복록)이라며 “술이 될 때에 그 맛의 아름답고 사나움으로 주인의 길흉(吉凶)을 안다”는 그의 말은 우리나라 사대부들과 서민들이 가양주에 빠지게 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소동파는 부친 소순(蘇洵) 동생 소철(蘇轍)과 더불어 삼소라 불리며, 당송 팔대가의 으뜸으로 회자된다. 그는 빼어난 문재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역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왕안석의 신법파와 사마광의 구법파 간 분쟁에 휘말리게 되는데, 그는 신법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신법파의 독선은 싫어했고 구법파의 교조적 논리에는 반대 입장을 견지함으로써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다. 그러나 수차례의 좌천과 유배생활, 그리고 투옥되는 아픔이 오히려 그의 문학적 역량과 철학적 사색을 단단히 해 주게 된다. 유배지에서 시서에 몰입하는 한편 불교와 도교를 깊이 연구하고, 시골에 은둔해 소박한 삶을 가꾸는 꿈도 꾸었다. 황주에서는 밭을 일구기도 했는데, 동파라는 아호도 바로 이 유배지의 황량한 둔덕 이름(東坡)에서 따온 것이다.

그는 만고의 명작 적벽부(赤壁賦)에서 “조조도 주유도 일세의 영웅이었지만, 지금은 흔적도 없구나. 인생이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라고 되물으면서도 “강물도 흘러가고 우리도 흘러가고, 모든 것이 흘러가지만, 흘러가는 동안 저 달빛도, 이 바람도, 이 술도 마음껏 즐길 수 있지 않은가”라며 달관의 경지를 훌쩍 뛰어넘는다. 그는 굴곡진 기구한 삶을 살면서도 원망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긍정하며 낙천적으로 살아간다. 입으로 평생 바쁜 사람임을 웃어(自笑平生爲口忙) 넘기던 그가 죽자 백성들도 울고, 유생들은 학업을 폐하고 추모를 했으며, 기생들은 울다가 지쳐 자살까지 하였다고 한다.

그 시절 소동파의 술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천년이 지난 오늘날 대륙의 여러 유적과 관련 문헌에 오롯이 새겨져 전해지면서, 그의 정신도 함께 이어지고 있다. 자연의 위대한 한량, 동파거사의 삶과 술의 자취가 그래서 더 향기를 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글쓴이 김상돈 : 물과 불을 넘나들면서 명정(酩酊) 40년을 살았고, 언론계와 국회 당, 공기업 임원 등을 두루 거친 뒤 지금은 사단법인 4월회 사무총장과 KAIMA 전무이사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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