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중년 노년 그리고 삶

신년, 중년 노년 그리고 삶

 

임재철 칼럼니스트

 

 

임재철

신년, 1월이다. 시간의 흐름은 무심하고 가차 없다. 그것을 부여잡지 못해 아쉬워하는 인간의 마음만 속절없을 따름이다. 지난 해 말에는 술잔을 들이키며 묵은 체증을 흘려보냈고 새 몸 새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했다. 그러면서 새해에는 지킬 앤 하이드처럼 새해의 결심과 목표를 정하고 계획을 짜 보기도 했다. 이는 아마 신년이 주는 힘일 것이다.

 

해가 바뀌어도 삶은 연속된 과정이지 하루 끝에 마감되고 새날에 시작되는 일간지가 아니다. 오늘과 내일이 중함에 차이가 없고 이달과 내 달, 지난해와 올해 또한 다를 게 없다. 그런데도 굳이 하루와 한 달과 한 해로 나누어 놓은 건, 버릴 건 버리고 벼릴 건 벼리자는 의미일 터다. 말하자면 오늘보다는 나은 내일을, 이달보다 나은 내 달을, 올해보다 나은 내년을 맞고자 하는 인간의 바람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무작정 시간을 보낸다고 나아질 리는 만무하다. 어리석은 젊은이가 시간만 흐른다고 지혜로운 노인이 되지는 않는다. 모난 욕심이 세월을 따라 둥근 자비로 다듬어지지 않는다. 스스로 나아지려는 노력 없이는 그저 어리석은 늙은이로 몸과 마음만 낡을 뿐이며, 깨지고 쪼개져 더욱 거친 탐욕이 될 뿐이다.

스스로 나아지려는 노력은 자신을 돌아봄에서 비롯된다. 지난 세월, 그리고 오늘, 또 이달, 내가 어떤 길을 걸었고 걸어왔는지 냉정하게 돌아보고 잘못된 부분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렇게 걷다 보면 그제야 내 주변의 풍정이 눈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필자 역시 주위의 이곳저곳을 보면, 이야기가 각기 다르다. 어떤 이는 은퇴 이후 국내는 물론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있다. 열심히 일했으니 그동안 적립한 연금으로 인생을 즐길 자격이 있다고 본다. 그는 그동안 자신이 다닌 여행의 흔적들을 SNS채널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즉, 열심히 일하고 은퇴 이후의 삶을 오롯이 즐기며 노년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시 아침이 오면 흔들리는 몸으로 신틀메를 고쳐 신고 ‘밥벌이’를 위해 세상 속으로 나가는 사람들도 많다.

 

대개 우리나라 사람들은 청년기에 학업을 마치고, 경제활동을 시작하고, 독립한다. 이후 가족을 꾸리고, 자녀를 키우고, 열심히 살다가 고개를 들어보면 어느새 자녀는 독립하고 주된 일자리로부터의 은퇴를 준비하는 나이에 이른다. 좀 더 젊었을 땐 어려운 취업의 문을 뚫으려 정형화한 스펙을 쌓고, 취업 후엔 다달이 카드 값을 내며 내 집 마련만을 목표로 저축을 하고, 대출을 갚으며, 그러다 보면 노후는 준비되어 있지 않다.

 

어디 그 뿐인가. 일과를 주어진 임무처럼 완수하며 열심히만 살다 보면 흰머리가 나고, 체력이 떨어지고, 주름이 생긴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런데 막상 그 모습이 되면 당황스럽다. 새로운 과업들도 낯설다. 50대를 맞이해도 딱히 성취해 놓은 게 없다. 이룬 것 없이 늙은 모습을 보면 행복 점수가 높아질 리 없다. 열심히 살았지만 나이 듦을 축복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중년 이후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궁리를 해야 한다.

필자 역시 1960년에 태어났으니, 내 나이는 어느덧 육십 하고도 넷. 이른바 베이비부머 세대다. 흔히 말하는 생애 주기로 보면 노년으로 들어가는 문턱에 서있다.

스스로는 중년이라고 우기지만 노년이 끌어당기는 힘에 어쩔 수 없어 하는 처지다. 아직 철없고 젊은데 바라보는 늙은이에 가까워진 거다. 그러니까 생애 주기 구분이 어떠하든 꿈이든 삶이든 지금의 인식을 부정하긴 어렵고, 또 2024년을 살아가야 한다.

 

고작 100년도 못 사는 인간인 한 사람으로서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진지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삶이 우리에게 묻고 있다. 그런데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올라오는 소리는 ‘네 마음 가는 대로 너답게 살아라!’다. 다행히 작가 유시민유시민도 자신의 책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나답게 사는 인생’을 살고 싶음을 피력했다. 그렇다면 나다운 삶, 가령 더 잘 살아야 할 것도 없고, 더 이루어야 하는 것도 없으니 무엇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일 거다.

지극히 평범하게 진부하고 알맹이 없는 답이지만 스스로 성찰하는 마음, 열린 사고, 공부하는 자세를 가지려고 애쓰는 것은 분명 나다운 삶을 살아내고 싶어서 일 것이다. 그래서 육십 무렵에 선택한 일은 앞서 젊은 시절, 혹은 중년의 시절에 선택하는 일과 입장이 좀 달라지는 듯하다. 자칭 중년의 현 삶도 무겁지만, 이제 노년의 길목에서 결국 궁극에 이르는 그 시기까지 자신을 잘 보살피다 가면 되는 시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무얼 이루어야 한다는 것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한 발자국씩 나아갈 수 있으면 된다. 물론 쉽지는 않다. 더 나이가 들면 어떨까. 그 나이가 되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들이니 미래를 속단하지 않고 현재를 충실히 살아야 한다. 인생은 가보지 않은 길이고 내 앞에 어떤 길이 펼쳐질지는 각자의 선택과 마음자세에 달려 있다고 본다. 코끝을 스치는 바람에 상쾌하게 겨울 냄새를 힘껏 들이마셔 보며 신년을, 중년과 노년을, 마음의 부자로 산책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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