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철의 와인교실(18)
와인 전문가가 되려면
김준철 원장 (김준철와인스쿨)
와인 전문가란?
어느 나라든 와인에 대한 지식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다. 그래서 조금만 알아도 아는 척 하기 좋고, 특히 와인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와인에 대해 장황한 설명과 미사여구를 늘어놓기 때문에, 어디서나 미운 털이 박혀 있어서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와인 전문가는 인터넷을 뒤지면서 자기 이름이 나왔는지 살피면서, 저녁 때 좋은 와인과 음식을 공짜로 먹을 곳이 없는지 살피는 사람이다.
▴와인 전문가는 남보다 빨리 라벨을 읽고 간파한 다음에, 와인을 마시고 장황한 설을 풀 수 있는 사람이다.
▴와인 전문가는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할 때는 감기에 걸렸다, 엊저녁에 너무 많이 마셨다는 등 갖은 핑계를 대서 현재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와인 평론가란 아무도 자기 말을 들을 수 없는 숲 속에 홀로 있더라도 오만하게 허풍을 떨 수 있는 사람이다.
◇ 사이비 감정가(Snob/Snobbery)
진정한 감정가를 ‘코니서(Connoisseur)’라고 하지만, 아는 척하는 속물을 ‘스놉(Snob)’ 혹은 ‘스노버리(Snobbery)’라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 주변에서 와인 스놉과 같이 행동하는 전문가나 감식가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와인 스놉이라고 특별히 나쁠 것은 없다. 오히려 재미있게도 교양 있는 사람이란 평을 얻을 수 있다. 음악, 미술, 책 등 다른 분야에서도 이런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만족과 거기서 나오는 즐거움으로 산다. 폭로되는 것보다 먼저 고백하는 것이 낫기 때문에 자신을 와인 스놉이라고 밝혀도 된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진품명품’을 보면 이 두 부류가 확실하게 구분된다.
◇ 와인 스놉이 되려면
자신이 와인 전문가라는 명성을 즐기고 싶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여러 사람 앞에서 와인을 마시면서, 와인 한 잔을 받으면 받침을 잡고(절대 볼을 잡지 말고) 들어올린다. 비스듬히 눕혀서 흰 바탕에 대고 색깔을 살피면서 뭔가 흠을 잡아낸다. 다음에는 테이블에 잔을 놓고 흔든다. 그리고 코를 잔속에 집어넣고 지그시 눈을 감고 냄새를 맡고 전체를 훑어보고 나서, 우리나라에 없는 과일 이름 한두 개를 이야기한다. 예를 들면, “블랙베리, 카시스 향이 지배적이고…”라고 말한다. 다음에는 조심스럽게 마시되, 가글하듯 입 속에서 후루룩 소리를 내면서 오물오물하다가 삼키거나 뱉어내면서 또 다른 향을 이야기하고, 화이트와인이면 단맛과 신맛의 조화가 어쩌고저쩌고, 레드와인이면 타닌이 어쩌고저쩌고 아무 향이나 맛을 중얼중얼 묘사하면 된다. 그리고 와인에 대한 칭찬보다는 무언가 결점을 잡아내면서 상을 찌푸리면, 주변에서 존경스런 눈초리로 바라보게 되어 있다. 이렇게 되면 당신은 저명한 와인 스놉이 된다. 그러나 이 정도의 경지라도 이르려면 상당한 공부가 필요하다.
◇ 전문 감정가(Connoisseur)
진짜 전문 감정가라면 세계 유명와인을 라벨을 보지 않고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하지만, 이런 사람은 없다. 이미 당신은 스테이크, 불고기, 커피, 위스키나 담배까지 감식가가 된 사람이다. 사실 우리는 우리가 즐기는 것, 먹는 것 마시는 것에 감식가가 되어 있다. 우리는 이런 것에 대해 좋아하고 싫어하는데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와인에 대해 좋고 나쁨을 이야기하는 것을 부끄러워할까? 우리의 입맛은 지문만큼 각 각 다르다. 우리 모두는 시각, 후각, 입맛에 의해 차별을 하는 판정가다. 와인을 많이 마셔보고 맛이 좋다 혹은 나쁘다는 것을 알 때 감식가가 되는 것이다.
주요 와인 품종에 대해서 알고 와인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배우고, 여러 가지 와인에 대해 마음을 열고 기억력을 살려서 미각과 후각을 훈련하면 된다. 사실은 정상적인 시각, 후각, 미각을 가지고 있으면 누구나 전문 감정가가 될 수 있다. 전문적인 테이스팅 기술이 아니더라도 자기가 맛본 와인을 기억하고 간단한 몇 가지만 알면 된다. 이런 기술은 배울 만한 가치가 있다. 보통 애호가들이 적용하는 것보다는 좀 더 집중력이 요구되지만, 테이스팅 경험은 우리 자신에 대해서 재미있는 것을 알려준다. 우리들이 동일한 색깔과 냄새, 맛을 가진 것을 다르게 감정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때문에 엉터리 전문가들을 쉽게 만들며, 누구도 거기에 대해서 반론을 재기하지 못한다.
와인이나 예술품의 숙련된 감정가가 되려면 중요한 점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하고 인지한 점을 묘사할 단어를 배워야 한다. 여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연극을 보고, 드라마의 요소를 배우고, 음악을 듣고, 전형적인 구조를 배우고, 와인을 체계적으로 맛을 보고, 정확하게 그것을 묘사하는 것을 배우고, 수많은 내면의 대화가 있어야 한다.
◇ 우리나라 와인 전문가
우리나라에서 와인 전문가라고 해봐야 남들보다 먼저 와인에 대해 관심을 가졌거나, 어학실력이 좋아서 외국 와인 책을 쉽게 소화하거나,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서 외국여행을 많이 하고, 좋다는 와인을 많이 마셔본 것밖에 없다. 게다가 자연과학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여 보졸레 누보는 ‘탄소침용방법’으로 만든다든가, 효모(Yeast)를 써야 할 자리에 효소(Enzyme)를 쓴다든가, 코르크 마개는 숨 쉰다는 등 잘못된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다. 어떤 지식이든 그 이론을 과학적으로 검증해서 그 원리와 이유를 잘 파악하여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 이유도 모른 채 또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제 우리나라 와인전문가도 와인에 대한 상식을 한 차원 높일 때가 되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와인 전문가는 와인에 대해 무지한 풍토에서 남보다 와인지식을 먼저 습득했기 때문에 인정을 받았던 것이지, 지식의 옳고 그름이나 그 깊이 때문에 존경 받았던 것은 아니다. 와인 이름을 몇 개 더 알고, 와인 맛을 표현할 때 미사여구를 동원하는 요령으로 버텨 왔지만, 이제는 외국에 나가서 와인을 제대로 공부한 젊은 세대들이 많아졌다. 어설픈 와인지식은 제대로 공부한 신세대 앞에서 바로 무너지게 된다.
◇ 와인을 배우는 목적
세상에는 최소 100만 개 이상의 와인의 이름이 있고, 우리는 이것을 다 알지 못한다. 누군가 당신에게 와인에 대해 다 안다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그러니까 어떤 것은 좋고 어떤 것은 나쁘다는 낭설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와인을 배우는 목적은 다른 사람의 결정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어떤 와인 전문가가 “생선에는 레드와인을 마시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면, 이에 자신 있게 “나는 그렇지 않다.”라고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와인의 맛을 즐기고 자신의 입맛을 최고라고 생각하면 와인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제대로 가르치는 와인교육기관을 이용하여 경험 있는 전문가의 조언을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배운다면 더욱 빨리 전문가가 될 수 있다.
필자:▴김준철와인스쿨(원장)▴한국와인협회(회장)▴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프레즈노캠퍼스 와인양조학 수료
►마스터 코스:24년 01월 15일(월) 오후 7시 개강, 매주 월요일 오후 7시-오후 10시, 주 1회, 12주, 수강료 200만 원
►와인인문학 코스:24년 01월 25일(목) 오후 7시 개강, 매주 목요일 오후 7시-오후 10시, 주 1회, 15주, 수강료 180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