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짓국을 안주로 술 마시던 추억

선짓국을 안주로 술 마시던 추억

 

박정근(문학박사, 황야문학 주간, 작가, 시인, 칼럼니스트)

 

박정근 교수

1973년 대학에 입학하자 드디어 입시지옥에서 벗어났다. 어떤 상황이라도 하루 종일 시험공부에 매달려야 하는 입시 생활은 심리적 억압이 엄청나다. 서울에 소재한 대학합격은 지방출신 입시생에게 엄청난 해방감을 주고도 남았다.

필자는 대학에 입학을 한 후 공부한다고 밀어놓았던 취미를 조금씩 하고 싶었다. 그래서 캠퍼스 체육관 반지하에 있던 태권도부에 입회하여 고등학교 시절에 배웠던 유도에 이어 두 번째로 무도를 배웠다. 아마도 모범생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터프 가이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학기가 중반으로 달려가고 운동도 제법 물이 올랐다. 부족하지만 축제 때 태권도 시범을 보인답시고 얇은 송판을 깨는 훈련을 하곤 했다. 저녁 시간에 운동을 마치고 배가 출출해지는 시간이 되면 자연스럽게 술을 한잔 마시자는 의견이 모아진다. 교문 건너편에 있는 허름한 선짓국집이 만만했다. 실빗집 주인아주머니가 학생들에게는 자주 선심을 베풀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호주머니를 털어서 술을 한잔하면 저절로 배가 부르던 시절이었다.

 

사실 가난한 지방 출신 대학생들이 대단하게 점심을 먹을 수 있겠는가. 교내 식당에서 대충 때우는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 강의를 마치고 방과 후에 운동을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모였다.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하고 나면 배가 엄청나게 출출했다.

하지만 누구도 함부로 술 한 잔 사겠다고 나설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없었다. 그 당시는 모두 집안 사정이 가난했던 시절이었다. 상당수가 야간이나 주말에 학생들을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다. 결국 알량한 푼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선짓국 집 말고는 갈 수 없던 것이다.

태권도부 학생들이 단골로 가는 실빗집 문을 열면 주방에서 선짓국 냄새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냄새는 우리들의 후각을 자극하여 속에서 술을 당기도록 작용했다. 중년의 주인아주머니는 시골 출신으로 입이 매우 걸걸한 여인이었다. 배고픈 노동자들을 상대하고 있어 말도 거침이 없었다. “배고픈 황소들이구먼. 운동하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능가. 빨리 들어와 앉으라고. 그렇지 않아도 맛있는 선지가 갈 곳을 찾아 헤매고 있당깨. 호호호. 선지는 단백질, 미네랄이 풍부해서 운동꾼들에게는 보약이지. 보약이고말고. 오늘 인심을 팍팍 쓰마. 어서들 먹어봐.” 마치 약장사라도 되는 양 떠들어대는 품이 웬만한 코미디언을 뺨칠 정도였다.

우리가 자리를 차지하는 시간은 좀 일러서 본격적인 술꾼들이 모이기 전이었다. 주인아주머니의 푸짐한 인심에도 불구하고 태권부 부장은 안주를 함부로 먹지 못하게 했다. 안주를 추가할 여력이 없다는 것은 자명했다. “야, 안주만 먹는 친구는 돈을 더 내야 해. 우리가 술을 제대로 마시기 위해서 술 한 잔에 선지 한 조각으로 제한한다, 알았지?” 계산을 책임을 져야 하는 부장은 안주에 대한 계엄령을 발동했다. 주머니 사정이 뻔한 우리들은 그 규정을 어기면 어김없이 술값을 더 내야 한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어쩔 수 없이 부장의 지시를 따라야 했다.

술이 두어 순배씩 돌아가고 얼큰해지면 돌아가며 노래도 하나씩 했다. 부장의 지정곡은 빠지지 않았다. “이수일과 심순애가 남원에서 연애할 때, 삐빠빠 룰라, 이스 마이 베이비….” 그는 걸쭉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고 나머지 부원들은 히죽거리며 식탁을 젓가락으로 두드리며 박자를 맞추곤 했다. 그야말로 빛이 바랜 70년대의 풍속화가 아닐 수 없다.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이런 그림이 오랫동안 정지된 채 추억의 영상에 투사되고 있다.

 

지금 생각하면 막걸리나 소주와 함께 즐기던 선짓국은 조미료만 듬뿍 넣은 음식이지만 우리들의 즐거운 추억을 소환할 수 있기에 값지다. 주인아주머니가 주장하는 대로 선짓국에 정말로 단백질과 미네랄이 풍부한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 술자리에 대한 추억이 우리를 청춘의 시절로 돌아가게 하고 젊음의 피가 다시 박동하게 만들기에 의미가 있다. 막걸리 타입의 부장은 암에 걸려 이 세상을 떠나고 없다. 사실 그를 불러내어 즐기던 선짓국을 함께 먹을 기회는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필자는 우연히 지나던 방학동 기사식당에서 대학 캠퍼스 실빗집과 거의 비슷한 선짓국을 파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너무 반가웠다. 필자는 그 식당에 일부러 가서 상상 속에서 친구를 불러내고 선짓국을 주문한다. 그리고 캠퍼스 실빗집에서 술을 마시던 대로 태권도부의 음주 의식을 재현한다. “친구, 저세상에서 잘 지내고 있는가? 자네와 땀을 흘리며 운동하던 시절이 생각이 나서 이 선짓국 집에 왔네. 그 시절 자네와 술을 마시던 집은 아니지만 우리가 술과 함께 즐기던 선짓국은 똑같지 않은가?” 참 신기하기 짝이 없다. 어떤 비싼 음식도 그를 등장시킬 수 없는데 싸구려 선짓국이 귀중한 우정을 즐기게 하니 말이다.

 

인간이 술을 사랑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물론 술꾼들은 취하기 위해서 술을 마신다고 말한다. 필자는 술을 마시기 위해서 술을 마시는 경우는 거의 없다. 냉장고에 맥주가 아무리 쌓여있고 서랍장에 양주가 있어도 거의 입에 대지 않는다. 하지만 친구를 만나 술을 마시는 시간은 항상 즐겁다. 특히 그와 함께 한 추억이 술잔 속에 떠오를 때는 더더욱 그렇다. 그 추억이 필자를 안내하여 추억의 시간으로 여행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필자에게는 술이 단순한 술이 아니라 추억이 머무르게 하는 신비한 영약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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