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술병』
봄이 오는 길목엔 이 나물에 이 술이 어떨지?
육정균 (시인/부동산학박사)
경칩(驚蟄)은 24절기의 하나로 3월의 절기이다. 날씨가 따뜻하여 갖가지 종류의 초목에서 싹이 트고 뱀, 개구리를 비롯해 땅속에서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깨어나서 꿈틀거리며 알을 낳기 시작하고, 태양 황경이 345도가 될 때이다.
양력으로는 3월 5일 또는 3월 6일이며, 대한민국에서는 이즈음인 3월 2일부터 새 학년을 시작한다. 이 무렵 개구리들이 나와 물이 고여 있는 곳에 알을 낳는다. 또한 경칩 무렵에 흙일을 하면 1년 내내 탈이 없다고 하여 일부러 벽을 바르기도 하였다.
필자도 지난 주초부터 주말까지 단풍나무를 옮겨 심는 흙일을 하였다. 포크레인으로 단풍나무를 뽑아서 다른 밭으로 옮기고, 다시 포클레인으로 새로운 지점에 단풍나무를 심는 작업이었다. 단풍나무를 옮기고, 삽으로 단풍나무의 뿌리를 단단히 덮고 곤죽이 되도록 물을 흠뻑 주는 일을 온종일 하니 육신이 욱신욱신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작업이 끝난 저녁마다 타는 목마름의 갈증을 상큼한 소맥으로 풀고, 시원한 냉이·달래 된장찌개로 속을 풀었다.
‘냉이’는 들판이나 밭에 심지 않아도 자생한다. 냉이는 비교적 저온에서도 잘 자라는, 내한성이 강한 식물로, 동지 이후에 싹이 나오고 음력 2월이나 3월에 줄기가 나온다. 때문에 들이나 밭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매우 널리 분포한다.
가을에 싹이 터서 로제트 상태로 겨울을 나고 겨울 끝자락에서 초봄에 자라는데, 이 무렵에 냉이를 캐러 가는 사람들이 많다. 백이면 백 봄에 재래시장에 가보면 노점상에서 냉이를 잔뜩 판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냉이는 몸을 따뜻하게 하고, 독이 없으며 특히 간에 좋다. 간 기능을 높여 피로 해소와 해독 작용에 효과가 있다. 실제로 냉이 뿌리 부분에는 콜린이라는 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콜린은 간의 활동을 촉진하는 대표적인 물질 중 하나로, 간염과 간경화 예방에 도움이 된다. 냉이는 비타민, 단백질, 칼슘, 철분 등도 다량 함유하고 있으며 항산화 작용이 뛰어나 암 예방에도 효과적이다.
또 봄철 기력을 잃어가는 사람에게 최고의 보양식으로, 생리불순, 코피, 산후 출혈에 좋으며 기력이 없는 노인에게 기력을 불어넣어 준다. 냉이는 해로운 성분이 없으므로 뜨거운 물에 헹구는 정도만 해도 먹는 데 지장이 없다. 그러나 몸이 차고 팔다리에 서늘한 기운을 느끼는 사람은 냉이를 많이 먹으면 몸이 더 차가워질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초봄 냉이만큼 우리 입맛을 돋우는 것은 천연항생제로 불리는 ‘달래’일 것이다. 봄나물의 대명사인 달래는 봄철 잃었던 입맛을 되찾아 주는 대표적인 봄나물이다. 달래는 다섯 가지 맛을 가진 채소로 ‘오신채’라 불리며 혈관을 확장하고 콜레스테롤의 수치를 낮추는 효능이 있다.
세포를 강화하고 혈관을 튼튼하게 할 뿐 아니라 각종 무기질과 비타민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 봄철 활력 증진에 좋다. 달래에는 성질이 따뜻하고 매운맛이 있어서 ‘작은 마늘’이라고도 불린다.
달래 특유의 매운맛을 내는 성분인 ‘알리신’은 염증과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효과가 있어 달래를 ‘천연항생제’라고도 부른다. 알리신 성분은 자양 강장과 기력 회복에 도움이 되고, 식욕 부진과 춘곤증 해소에 효과가 있다. 또한 달래는 체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효능이 있어 기름진 육류에 곁들이면 느끼한 맛도 잡고, 건강도 챙길 수 있다.
그렇다면 봄이 오는 길목에 냉이랑 달래 등 봄나물과 산뜻하게 같이 할 수 있는 초봄 꽃샘추위를 녹이는 상큼한 술은 무엇이 좋을까?
여러 좋은 봄나물과 약주가 있지만 먼저, 냉이튀김과 ‘오메기맑은술’의 조합을 권해본다. 봄의 대표적인 식재료인 냉이는 살짝 튀겨 바삭한 식감과 고소함을 더한다. 오메기맑은술은 오래된 전통 술이다. 쌀이 귀했던 제주에서 차조(좁쌀)로 떡을 쪄서 만든 술로 고소리술 또는 오메기(좁쌀의 제주 방언)술이라고도 부른다. 오메기맑은술은 좁쌀의 거칠고 투박한 맛이 술로 변하면서 입안에 착 감기는 산미를 만들어 내며, 한식과는 골고루 잘 어울리는데, 특히 제주의 특성상 해산물과는 찰떡궁합인데, 초봄엔 냉이와도 잘 어울린다.
그다음엔 진달래 화전과 ‘면천두견주’를 권해본다. 찹쌀을 익반죽해 진달래 꽃잎을 한 장 한 장 올려 부친 화전은 초봄의 여린 햇빛을 담은 가히 꽃의 예술로 눈으로만 먹기에도 아까울 만큼 고운 자태를 뽐낸다. 진달래꽃으로 빚은 술이 두견주(杜鵑酒)다.
예부터 진달래는 만성 기관지염, 혈액순환, 피로 회복에 좋다고 알려져 우리술에 자주 사용됐다. 4월 초순 진달래꽃을 채취해 꽃술을 떼고 말려두었다가 술을 빚을 때 혼합한다. 두견주는 국가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충남 당진시 면천두견주 보존회에서 빚고 있는데, 봄나물이랑 가장 잘 어울리는 쌉싸래한 맛이 일품으로, 은은한 향이 봄날을 한껏 진하게 느끼게 한다. 초봄은 희망만큼 나른한 권태와 졸음을 수반한다. 겨울을 나느라 지친 심신을 냉이랑 달래와 곁들여 우리 몸에 좋은 약주 한잔으로 힘찬 출항(出港)의 시동을 걸어보는 여유와 웃음은 어떨까?
* 육정균 : 충남 당진 出生, 2000년 작가넷 공모시 당선, 2002년 현대시문학 신인상(詩), 2004년 개인시집 「아름다운 귀향」 출간, 2005년 현대인 신인상(小說), 부동산학박사, (전) 국토교통부(39년 근무) 대전지방국토관리청 관리국장(부이사관) 전 개인택시공제조합이사장, 단국대학교 부동산건설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