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타령

술타령

박 정근

(문학박사, 대진대 교수역임, 소설가, 시인, 연출가, 칼럼니스트)

 

 

박정근 교수

술꾼들이 즐기는 노래를 소위 술타령이라고 부른다. 술타령이란 술꾼들이 술에 취해 흥얼거리는 노래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그 내용은 술꾼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희극적이거나 비극적일 수도 있다. 술타령을 듣다보면 술꾼들의 애환을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묻어나온다. 그러므로 술타령은 술꾼들의 힘든 삶의 역정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자료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술타령은 술꾼 간의 소통의 도구가 될 수 있다. 함께 술을 마시고 있지만 직설적으로

껄끄러운 이야기를 꺼낼 수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너무 가슴에 충격적이거나 가슴 아픈 이야기는 마음 편하게 드러내기 어렵다. 말을 꺼낼 기회를 엿보면서 한잔 두잔 술을 나누다보면 취기가 올라온다. 이런 상황에서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말들이 술기운을 타고 자동 기술적으로 흘러나온다. 이것이 바로 술타령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시인 중에서 술꾼으로 손꼽히는 김수영시인이 술타령을 시의 소재로 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김수영은〈만주의 여자〉란 시에서 18년에 다시 만난 평안도 기생을 우연히 선술집에서 만나 소회를 술타령의 형식으로 재현한다. 그 여인은 해방 후 만주에서 이남으로 넘어왔지만 6.25 때 남편을 잃고 큰 아들마저 죽고 만다. 평범한 여자가 견디기 힘든 현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게다가 만주여자는 경제적 문제로 선술집 작부로 전락했으며 시인의 눈에 너무 측은하게 보인다.

 

이런 비극적 상황에서 어찌 시인이 슬픔에 잠기지 않겠는가. 여인은 고생을 했다는 증거를 외모로 보여주고 있다. 사랑스런 기생의 자태는 사라지고 뚱뚱해지고 눈자위마저 푸르스름하게 보인다. 가슴에 안기어 애교를 부리던 그녀의 모습은 사라지고 영 낯이 설다. 그는 연실 술을 따르라고 종용하지만 여인은 술을 따르지 않는다. 어쩌면 여인은 자신의 모습이 시인에게 너무 초라하다는 수치심에 낙망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시인은 술을 따르지 않는 이유가 친구가 사는 술이 외상이기 때문이라고 희극적으로 돌리면서 자조한다.

 

나는 이 우중충한 막걸리 탁상 위에서

경험과 역사를 너한테 배운다

무식한 것이 그것들이니까…

너에게서 취하는 전신의 영양

끊었던 술을 다시 마시면서 사랑의 복습을 하는 셈인가

뚱뚱해진 몸집하고 푸르스름해진 눈자위가 아무리 보아도 설어 보인다

18년 만에 만난 만주의 여자

잊어버렸던 여자기 여기 있구나.

한잔 더 주게 한잔 더 주게

그런데 여자는 술을 안 따른다

건너편 친구가 오줌을 누러 갔으니까

(〈만주의 여자〉부분)

 

이렇게 친구들과 함께 하는 술자리에서 옛날에 알고 지내던 여인을 만났는데 서먹서먹한 분위기가 연출되니 시인의 입장은 매우 곤란했으리라. 친구는 여인이 시인의 애인이라고 예단하고 놀려댄다. 이런 심리적 곤경을 벗어나기 위해 시인은 여인에게 술을 따르라고 종용한다.

그녀가 술을 따르지 않으니 자작으로 술을 목구멍에 털어 넣는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곤혹스러움을 모면하려고 마시는 술은 취하지 않는다. 사실 술집 여인과의 사랑을 진정 사랑이라고 인정하는 사내가 어디 있겠는가. 친구는 시인이 사랑이라고 인정을 하지 않는 고집에 더욱 심술이 난다. 친구는 시인을 더 곤혹스럽게 하려고 여인과 동침을 해야겠다고 주정을 부리며 사랑게임을 시도한다.

 

이런 상황에서 시인은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할까. 아무리 잊었던 여인이었지만 한 때는 기생집에 드나들며 사랑타령을 주고받았지 않았던가. 친구의 주정에 동의하면 여인에게는 모독이 될 수 있다. 심사가 복잡해진다. 이럴 때 가장 좋은 도피책은 술에 취하는 것이다. 시인은 여인에게 자꾸만 술을 청한다. 그런데 좀처럼 술은 취하지 않는다. 억지로 술에 취하려고 하면 더 취하지 않는 것이 술의 속성인지 모른다. 그런데 친구는 여인과 잠자리를 같이 하겠다고 보채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술타령을 할 수밖에 없다. 별 수 없이 시인은 여인에 대해 이런 저런 변명을 늘어놓는 것이다.

 

아냐 아냐 오해야 내가 이 여자의 연인이 아니라네.

나는 이 사람이 만주 술집에서 고생할 때에

연애편지를 대필해 준 일이 있을 뿐이지

허고 더러 싱거운 충고도 한 일이 있는…

충고는 허사였어 그렇지 않어?

18년 후에 이렇게 뻐젓이 서울의 다방 건너 막걸리 집에서 또 만나게 됐으니

하여간 사랑의 뒤치다꺼리인가 보다

평안도사랑의 덤인가 보다

한잔 더 주게 한잔 더 주게

그런데 여자는 술을 안 따른다.

건너편 친구가 벌써 곯아떨어졌으니까

(〈만주의 여자〉 부분)

이 때 여인은 이 상황을 어떻게 수용해야 할까. 18년 전에 기생집에서 만난 시인을 마치 기둥서방이라도 되는 양 처신할 수가 없다. 그러기에는 지금의 막걸리집 작부로 전락한 자신의 모습이 너무 민망하다. 차라리 시인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으리라고 후회막급이다. 하지만 풋풋한 시절에 만났던 멋쟁이 시인이 반갑기도 했으리라. 하지만 여인은 그러한 감정을 드러낼 수 없다. 술주정하는 친구가 눈치도 없이 추근대는 모습이 밉기만 하다. 그저 시인과 친구가 하는 꼴을 바라만 볼 뿐이다. 이제 친구의 취기가 깊어져 잠에 떨어지고 시인과 회포를 풀 수 있는 시간이 왔는데 여인은 여전히 술을 따르지 않고 머뭇거린다.

이 시는 술타령이란 소재로 매우 흥미롭게 구성한 시이다. 게다가 시인의 능청스러움이 짙게 묻어나오고 있다. 시인은 분명 술꾼이고 술의 속성을 해박하게 숙지하고 있다. 필자는 김수영의 술타령을 통해 인간이 내면의 삶을 깊게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술꾼들이여, 술은 그저 취하기 위해 마시는 것이 아닐지니 마음을 전하는 도구로 사랑스럽게 활용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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