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에게 시심이 넘치다

윤봉길 의사 기념관 충의문

 

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에게 시심이 넘치다

 

박정근 (문학박사, 황야문학 주간, 소설가, 드라마작가, 시인)

 

박정근 교수

총선 선거운동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요즘 정치가나 시민들의 입에서 너무 거친 말들이 회자되고 있다. 소위 국가를 경영하려는 정치가들이 상대방을 공격하려고 저급한 말로 국민들의 귀를 더럽히고 있다. 국가와 민족에 대한 사랑을 논하면서 생존을 위해 악다구니를 써야 하는 시장바닥이나 노동판의 언어보다 더 상스럽다. 국가 지도자의 언어가 정화하지 않은 현상은 사회를 바람직하게 이끌기보다 혼란을 부추긴다고 볼 수 있다.

 

정치인들의 비어들이 시민들의 마음을 혼탁하게 하고 삶의 질을 얼마나 비천하게 만드는지 그들은 깨달아야 한다. 조선시대에 선비들은 관직에 들어가기 위해서 사서삼경을 읽어야 하고 과거시험에 시로 자신의 사상을 표현했다. 비록 권력을 잡기 위해 글과 말을 쓰더라도 선현들의 이상적인 글을 인용하고 비유함으로써 사회를 정화시키고 이상사회를 꿈꾸게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인들의 부정적인 언어가 어떻게 사회를 오염시키는 것일까. 야당은 현 정권이 검찰 독재를 저지르고 있으며 대통령의 주변 인물들이 비리의 대상이라고 비판한다. 여당 정치인들의 머릿속에는 반대편의 정치인이 협력자가 아니라 제거의 대상일 뿐이다. 여당의 권력기관인 검찰은 법률가로 상대방이나 시민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인식하고 그들을 어떻게 기소하고 구속시킬 것인가에 골몰한다. 아무리 반대편이지만 사회공동체를 위해서 함께 협력하고 공생해야 하는 존재라고 포용해야 따뜻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 이 사회에서 반대편을 몰아내거나 축출하는 정책은 항상 서로 싸워야 하고 비방하는 살벌한 전투를 통해서 비인간적인 현상을 생산하는 것이다.

 

과연 정치인의 언어는 사회의 건전성을 위한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없는 것일까. 삼월 말에 합창 관계로 매헌 기념관에 갔었다. 연습 후 산책을 하고 싶어 기념관 정원을 잠깐 걸었다. 바쁜 시간에 쫓겨 종종걸음을 하던 필자의 눈에 초봄의 이미지가 환하게 나타났다. 눈꽃을 닮은 하얀 꽃들이 별이 되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자세히 바라보니 이 꽃들은 이른 봄의 전령사인 매화꽃들이었다. 기념관에서 윤봉길 의사의 호가 매헌이기에 매화나무를 위대한 독립운동가의 시적 상관물로 매화나무를 정원에 심었던 모양이다. 덕분에 필자는 봄이 내민 손을 잡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매화꽃만 필자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아니었다. 몇 걸음을 걷다가 보니 윤의사의 시를 적은 작은 시비가 보였다. 선거판에서 들려오는 삭막한 언어에 신물이 난 필자의 마음을 녹여주는 시였다. 시의 제목은〈歲初부의 (연초에 시를 쓰다)〉라고 적혀있다. 윤봉길 의사가 새해를 맞이하면서 느낀 암울한 마음을 재현하고 있다. 한 해가 가고 있는데 나라를 잃어버린 민초들은 마음이 얼마나 무거웠겠는가. 시속의 겨울나무에는 나뭇잎이 모두 떨어져 휑하다. 필자의 마음을 재현하려는 건지 아니면 위로하려는 건지 아름다운 시 한 편이 초봄의 한기를 녹여주고 있다.

윤봉길 의사 기념관 충의문

년 초에 시인 윤봉길은 어두운 국운을 대변하는 듯 한 침울한 자연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그는 들녘의 풍경이 주는 서정성을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일제 치하에서 독립을 꿈꾸는 청년 윤봉길은 결코 자포자기 하거나 비속한 말로 일제를 욕하지 않는다. 쓰러진 국운에 비통한 마음을 가눌 수 없지만 그는 아름다운 시심을 여전히 보여주고 있다. 창 사이로 따뜻한 겨울 햇살이 내려와 그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주고 있다. 인간사회의 현실은 냉혹한데 자연은 여전히 그를 어루만진다. 이 순간 시속의 화자는 술을 생각한다. 그는 옹기 속에 잘 익어가고 있는 술을 담아서 마신다. 아무리 얼음처럼 차가운 현실이 아프더라도 시심과 술이 있으면 잠시라도 치유할 수 있다.

 

세월은 한해의 끝자락에 매달려 마음 무거운데

나뭇잎 떨어진 빈 하늘에 봉우리 드러나 있네

들판에 가로지르는 눈꽃은 황새 나는 듯하고

강을 덮은 언 돌무더기엔 어룡이 한산하네

창 사이로 들어오는 겨울 햇살 사랑스럽고

옹기 속의 잘 익은 진한 술맛도 좋구나

 

윤봉길은 망국의 한에 젖어있고 일제에 철퇴를 가하여 나라를 되찾고 싶은 열망에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그는 비참한 현실에서 잠깐 비켜서서 술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따뜻한 온기를 누리고자 한다. 인간은 항상 현실의 난제와 씨름을 해야 하지만 더 강한 싸움을 하기 위해서는 잠시 쉬어가는 지혜도 필요하다. 그래서 시원한 아침에 농부들은 한여름의 강열한 햇볕 아래에서 일하기보다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오수를 즐기는 여유를 가진다. 그들은 햇볕이 약해지는 저녁에 들판에 나가서 미진한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화자가 난세의 위기를 피해서 한적한 곳에서 술을 마시고 싶은 것도 엄혹한 현실을 해결하기 위한 지혜의 전략으로 볼 수 있다. 하늘에 뜬 달은 어쩌면 잃어버린 조국이

 

난세에도 오히려 한가한 곳은 있으니

술 취하면 비친 척 달을 따서 담아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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