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양조장 李在承 상무이사
100년 역사 근대문화유산 ‘진천덕산양조장’이 젊어졌다
전국 전통양조장 경영자 가운데 최연소 경영자 등장
MZ 세대와 소통하려면 양조장 경영자가 MZ 세대가 돼야
하루 종일 봄비가 내렸다. 박정근 시인은 봄비는 슬프고도 기쁜 눈물이라고 했다. 봄 햇살에 죽음들이 추한 껍질을 벗고 온힘을 다해 새살을 내밀 때 봄비는 새것들의 승리를 축하하는 기쁨의 눈물이라고 시인은 노래한다.
충북 진천군 덕산 읍에 둥지를 틀고 있는 ‘덕산양조장(대표이사 李芳熙)’을 방문한 날도 하루 종일 보슬비가 내렸다. 봄비가 내리면 새싹들은 하루가 다르게 생기가 돈다. 인간세계에도 봄비 같은 젊음의 비가 내리면 얼마나 좋을까. 고목에서 새싹이 돋듯이 말이다.
보통사람들은 ‘진천’하면 떠오르는 말이 ‘생거진천 사후용인(生居鎭川 死後龍仁)’이란 말이 아닐까. 살아생전에는 진천에서 살고 죽은 후에는 용인에 묻히는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되고 있는데 막상 진천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 뜻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었다.
어쨌거나 진천과 용인은 풍수지리 적으로 주목을 받아 왔던 것이 사실이다. 전해오는 풍수설화에 의하면 진천과 용인은 생기가 모이는 요건을 구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천의 주산은 만뢰산(611.7m)으로 회룡고조형(回龍顧祖形)으로 분류되고 있다. 삼국을 통일한 김유신 장군이 태어난 생가지도 진천 만뢰산 아래에 있다.
만뢰산을 주산으로 넓은 들이 펼쳐지는데 진천은 사방이 산들로 둘러싸인 분지형 지세로 넓은 평지가 펼쳐져서 물이 풍부하고 바람이 잘 갈무리되어 농사가 잘되어 사람살기에 좋은 땅으로 알려졌다. 동부여지승람에 따르면 단위면적당 쌀의 수확량이 다른 지역보다 1.24배가 많아 농업시대인 조선조에는 최고의 길지로 꼽혔던 땅이 진천이다,
곡식과 좋은 물이 풍부했으니 술빚기엔 이만 한 호조건도 없었을 것이다. 이런 곳에 10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양조장이 있다니 그 술맛은 어떨까. ‘진천덕산양조장’을 찾아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화전 부쳐놓고 한 잔 하기 딱 좋은 ‘덕산약주’
기자가 한창 젊시절에 즐겨 마시던 술이 ‘덕산약주’였다. 어디서 생산하는 줄도 모르고 집근처 마트에서 팔고 있으니까 구입해 마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덕산약주의 고유한 맛이 너무 좋았고 또한 가성비도 좋아서 이었던 것 같다. 일반 막걸리 병(750㎖) 보다 덕산약주는 주병이 크고(900㎖) 도수도 11%로 높아 혼 술을 하기엔 닦이었다. 게다가 맛은 어머니의 옛맛이 좋아서 자주 마셨다.
술을 마심에 있어 풍류가 곁들인다면 술 맛은 배가 된다. 최근 출시되고 있는 덕산약주 주병 라벨에 이런 글귀가 있다. “약주치성, 천감지응, 청향만가, 일미동춘(藥酒致誠, 天感地應, 淸香滿家, 一味動春) 즉, 약주 빚기에 정성을 들이면 하늘이 감동하고, 땅이 응한다. 맑은술 향기가 집안에 가득하면 그 좋은 맛이 봄을 일깨운다.” 시절풍류에 이만한 글귀가 어디에 있을까.
시절은 봄이라 햇살 좋은 날 친한 벗 불러내 화전 부쳐놓고 풀 향기 맡으며 덕산약주 한잔 하면 그 무엇이 부러울까. 세상이 다 내 것 같은데 말이다.
지난해 10월 충북 청주에서 처음 열린 ‘대한민국 막걸리 축제’ 덕산약주 부스에서 만난 이가 덕산양조장의 이재승 상무였다.
양조장을 찾은 날 양조장 역사만큼이나 해 묵은 장인(匠人)이 있지 않나 하는 기대감이 있었는데 기대와는 딴판으로 이 상무가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다소 의야 해 했다.
2014년 덕산양조장 인수한 이방희 대표가 4대째 사장
이 상무는 현재 28세라고 했다. 모르긴 해도 전국 양조장 운영자 가운데 가장 젊은 나이가 아닐까 생각된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캐나다에서 공부를 했고, 고등학교와 대학은 미국에서 공부를 했다. 대학에서는 심리학을 전공했는데 분야는 의과 심리라고 했다. 그래서 졸업 후 병원에서 근무를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부모님이 하고 계신 양조장의 전통을 이어감의 사명과 발효학에 깊은 관심이 있어 귀국했다고 한다.
양조 인으로 입문한지는 한 1년 남짓이라고 했다.
100여년의 양조장 역사를 생각해온 기자의 선입견과는 퍼즐이 맞지 않던 차에 李芳熙(63) 대표가 설명을 해 준다.
덕산양조장 창업자는 일제치하에 현 양조장이 위치해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덕산읍 한천교 건너편의 구말장터에서 양조장을 운영해 왔는데 1929년 대홍수가 나서 모두 쓸려 내려갔다고 한다.
대홍수가 나자 1929년 지대가 높은 현재의 위치에 양조장 건물을 짓고 막걸리를 빚었다. 초창기엔 사업이 잘됐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차례 경영위기를 맞기도 했다.
모든 기업이 굴곡이 있듯이 덕산양조장도 3대째 경영의 어려움이 원인이 되어 경영이 어려워졌다. 이방희 대표는 35년간 양조기계설비회사인 ‘한영ENG’를 운영하면서 얻은 노하우로 본인이 양조장 운영을 직접 해보고 싶던 차에 덕산 소식을 듣고 지난 2014년에 덕산양조장을 인수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방희 대표는 창업자의 직계는 아니더라도 덕산양조장의 4대째 대표가 되었고 이재승 상무가 5대째다. 현재 덕산양조장은 연매출이 25억 원에 이를 정도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막걸리 업계에서 매출로선 7-8위를 하고 있는데 현 양조장 시설로는 캐퍼시티가 부족해 이웃에 제 2공장을 건립중이라고 한다.
식객에도 등장하고,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촬영지로 유명
덕산양조장이 생산하고 있는 덕산막걸리가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이방희 대표가 양조설비를 전문으로 취급해온 관록이 뒷받침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이 대표는 양조설비업에 35년간 몸담으며 술 생산에 관한 지식을 쌓은 것을 바탕으로 우리 고유의 술맛을 구현하기 위하여 양조장을 인수 한 후 1년 가까운 세월 동안 거의 밤을 새며 연구를 했다고 한다.
“처음 빚은 막걸리를 들고 이웃 경로당을 찾아가서 어른신들게 권했더니 ‘이게 술이냐’며 퇴짜를 놓더라고요, 그렇게 하기를 십 수 차례 하는 과정에서 술 맛은 점점 좋아지고 어른 신들로부터 ‘그만하면 됐다’는 말을 듣고 나서 출하를 하기 시작했다”고 이 대표는 술회한다.
이 대표는 “양조장이 잘되는 길은 술맛이 좌우한다.”는 교훈을 뼈저리게 느끼고 막걸리를 빚는다고 했다.
덕산의 막걸리는 밀가루가 쌀 보다 조금 더 많이 들어간다.
보통 양조장 들이 “우리는 100% 쌀로만 막걸리를 빚는다”고 자랑하지만 덕산양조장은 떳떳하게 밀가루를 섞는다고 밝히고 있다.
왜일까?
이에 대해 이 대표는 “쌀로만 빚은 막걸리는 시원하고 깔끔한 맛은 느끼지만 두 번 째 잔이 댕겨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밀가루가 들어간 막걸리는 마시고 나면 바로 잔이 채워지길 기다려질 만큼 술이 당겨진다.”고 했다.
덕산막걸리, 덕산약주의 술맛이 좋다는 소문은 전국으로 퍼져나간다. 방송을 하는 사람들 글을 쓰는 사람들 귀에도 소문이 전달될 수밖에 없지 않았겠는가.
그리하여 덕산양조장은 KBS1 농촌드라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의 촬영지로 드라마 속에 등장했으며, 만화가 허영만의 만화『식객』에도 덕산양조장이 등장한다.
백두산의 삼나무를 가져다가 지은 덕산양조장 전면에는 측백나무가 도열해 서서 이방인을 맞는 느낌을 준다.
덕산양조장은 지난 2003년 국내 양조장 중 가장 먼저 문화재청 지정 등록문화재 제58호로 ‘근대문화유산’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정성과 혼을 담아 빚은 ‘덕산생막걸리’ 잘 팔려요
인터뷰를 하는 과장에 이 대표는 이상무(이 대표의 둘째 아들)에게 깍듯하게 존댓말을 사용한다. 처음엔 농담이거니 했다. 그런데 끝까지 이 상무에게 존댓말을 사용해서 궁금했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회사를 이끌고 있는 사람에게 또 부자간이라도 상대방을 신뢰하는 길은 상대방을 존중해주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들 부자는 집에서도 그렇다고 이 상무는 귀띔 해준다.
이방희 대표는 4대 가업의 장인정신으로 언제나 고객의 위치에 서서 바라보며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
양조장 안으로 들어서면 오랜 역사의 향기랄까. 해 묵은 양조장 건축물에서 묻어나오는 달콤한 술향이 코끝을 자극한다. 그동안 수집해 놓은 각종 골동품이 빼곡한 공간이 전시실이다.
현재 덕산양조장에서 생산 중인 덕산생막걸리는 하루 600박스(9,000병)인데 거의 매진된다.
현재 덕산양조장에서는▴생덕산막걸리 6%▴덕산약주 11% 약주를 비롯해서 ▴차례주 11%와 다섯 가지 약재를 넣은 ▴천년오자주 13%와 ▴롯데 슈퍼, 마트 전용인 6%의 막걸리 등을 생산하고 있다.
이밖에 장미추출액을 넣은 ‘로즈앙’ 등 여러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 가운데 롯데 슈퍼, 마트를 전용으로 들어가는 큰통 막걸리는 이 상무가 입사 후 처음으로 개발한 막걸리인데 인공감미료인 아스파탐 대신 효소처리스테비아를 함유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제품들은 비단 진천뿐만 아니라 서울 및 수도권, 부산 등 전국 주요 도시의 대형마트에 유통되며 고객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덕산양조장은 쌀로 유명한 진천 지역 쌀을 사용하며, 수작업 위주의 전통 제조법으로 발효균의 섬세한 차이까지 신경 쓰며 제품을 만들고 있다.
이 큰통 막걸리는 알코올 6%에 1,200㎖ 용량으로 막걸리 한 통으로는 약간 부족하고 두 통은 버거운 소비자들에게 안성맞춤, 가격도 1,890원으로 부담되지 않는다.
MZ 세대가 MZ의 마음을 읽을 줄 안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님을 입증한다고 나 할까.
덕산양조장이 계획하고 있는 술은 증류주다. 출시 일정을 확정짓지는 않았지만 개발 중인 증류주(70%)를 마셔봤다.
와! 끝내준다.
70%라서 겁이 났지만 입안에서 회오리치던 것이 어느 순간 구렁이 담넘어가듯 목을 타고 넘어간다. 술이란 자고로 맛과 향, 목넘김을 따지는 것이 아닌가.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고 했는데 덕산양조장의 역사가 빛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글․사진 김원하 기자 tinew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