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대로(顺其自然), 그리고

흘러가는 대로(顺其自然), 그리고

 

임재철 칼럼니스트

 

중국 귀주성 안순시 용궁풍경구 입구에서 필자

세월은 쉬지 않는다. 5월이다. 오늘 또 책을 읽는다. 하루는 자칫 작은 것이라 여겨 소홀히 넘길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잘 알 듯 ‘하루가 쌓여서 열흘이 되고, 한 달이 되고, 한 계절이 되고, 한 해가 된다.’ 그러니까 하늘은 스스로 한가롭지 않아서 항상 운행하는데, 사람은 어찌 한가로움만 찾는지 모르겠다.

하루는 누구에게나 24시간이다. 이를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진 선물이라고 한다. 양적인 크로노스와 질적인 카이로스의 시간을 따져 보기 전에, 하루를 어떻게 지내느냐는 각자에게 달렸다.

하루 당일 하는 바는 사람마다 똑같지 않다. 좋은 사람은 좋은 일을, 나쁜 사람은 나쁜 일을 한다. 그래서 날(日)에 좋고 나쁨은 없고, 오로지 쓰는 사람에게 달렸을 따름인 거다.

길을 가는 필자 역시 나그네지만 바람과 그늘에만 몸을 맡길 수 없다. 길을 헤매는 느낌일 때면 잠시 멈춰 서서 묻곤 한다. 내가 가려는 곳은 어딘지, 그 길은 어떻게 가는지, 그런데 그냥 왔던 길 되돌아보면 눈부시다. 적어도 좋은 생각과 상상으로는 그렇다. 허나 시간은 시위를 떠난 화살의 속도처럼 빠르다. 시간의 본질은 재빨리 지나간다는 거다.

 

그래서다. 부연하면 흐르는 세월을 그저 그렇게 보내지 말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 생의 경구로 박혀 있다. 그러나 필자를 비롯 보통의 사람들은 엄정한 그 사실을 이전에도, 아직도, 아니 앞으로도 온전히 깨닫지 못하고 살다 가기 십상이라 여겨진다. 안타깝지만 그 허물을 부정할 수 없다.

필자가 지난달 오랜만에 격하게 사랑하는 중국 여행을 다녀왔는바 깊은 봄기운에 진정 가슴으로 중국이 들어올 줄 알았다. 하지만 여행 내내 답답한 마음으로 질식돼 버린 심신이었다.

 

지난 30여 년간 수없이 중국을 다녀온 필자로서는 무엇보다 중국이 그 어느 나라보다 여행하기 편한 나라이고 그저 생각만으로도 정겹고 마음을 흔드는 곳이다. 그런데 무엇인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온 몸을 짓눌렀다.

말하자면 미묘한 상심과 번뇌가 한 켠에 자리 잡고 있었고, 큰 감흥도 없었으며, 난감하고 혼란스러웠다. 본디 여행은 일상에서 딱딱하게 굳은 사람의 마음을 옆으로 확장하고 정체성을 다시 일깨워 주는 거지만, 그것 보다는 존재 이유나 삶의 목적 등 근본적인 본연의 굴레나 생각이 망상이 되어 끌어 올랐던 것이다. 너무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으나 헛되이 지낸 세월의 더께며 세상과 삶이 내포한 진실을 외면하고 고독을 찾고 본질을 관조하지 않은 사람으로 살았다는 회한이었다.

무언가 막막한 심경과 방랑 속에서 뭘 해야 할 것인지 알지 못해 일단 책을 읽으며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 쉬지 않고 생각해 봤다.

비평가인 리베카 솔닛은 그의 저서『어둠 속의 희망』에서 “희망은 행동을 요구하고, 행동은 희망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희망의 원리』의 저자인 독일의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는 “희망은 인간을 살리는 명약이요 힘”이라고 했다. 미래를 지향하는 모든 이상주의에서 블로흐는 ‘지금’(now)보다 항상 한 단계 앞으로 나가야 할 역동적인 ‘아직’(yet)을 강조했다.

 

요모조모 따져서 생각해 보고 마음을 바쁘게 움직여 보았지만 획기적으로 해결할 실질적인 추론이나 대책은 명료한 게 없었다. 그런 가운데 훌륭한 세계를 찾으려고 밖을 향한 시선의 창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상 공간을 다시 돌아봄으로써 소박하게 도달한 결론 하나,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顺其自然)’ 지금에 충실하며 살아내자는 자각을 하게 됐다.

 

이 좋은 오월 앞에서 머릿속으로 ‘오랜 방랑’을 탐닉하며, 생각들을 따라가니 가장 어려운 문제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였다. 예컨대 ‘삶과 술’이 궤를 같이 하듯 절대 택일 문제도 아니고 논리가 아닌 가슴으로 사는 건데 어렵다. 몸도 생각도 다 ‘지금 여기’에 있고, ‘생각만큼 길을 갈 수 있다’고들 하는데 이에 부응하며 살기는 실로 더더욱 어렵다. 그래도 가끔은 자신을 진지하게 돌아보고 조금은 덜 쓸쓸하고 덜 헤매는 나그네 길을 가는 것이리라.

Oesterreich, 1. Tag, Krems und Umgebung

하루하루. 필자가 있는 컴퓨터 앞에서 글을 쓰고, 책을 보며 정신의 혼탁함을 걷어내고, 심신을 바로 인지하며 사는 거다. 그런 다음 어제 있었던 일도 생각하고,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하며, 액션을 취해야 하는 것은 취하고, 당면한 문제를 대하며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열심히 사는 거다. 헌데 필자처럼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살나 라고 하면, 이것 또한 망상이고 방랑으로 보여 질 수 있겠다. 그래서 삶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마음을 다 잡고 좋은 상상과 생각을 분주하게 하며 인생길을 걸어갔으면 좋겠다는 이해이다.

그렇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기록하는 것이 일상생활인지라 사람이 인생의 진실을 스스로 깨닫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필자처럼 65년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는 걸 알았기에 말이다. 그렇다면 얼마나 더 오래 살아야 깨달음이 올까.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필부(匹夫)는 아무 것도 없는 지금이다. 그래도 살아간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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