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조선종합주류 金忠吉 회장․河明熙 이사
막걸리 프랜차이즈 ‘만원의 행복’ 시작합니다
만원 한 장으로 막걸리 2병에 안주 하나 제공
“막걸리는 술이지 밥은 아니다. 하나 천상병(1930~93) 시인에게는 막걸리가 밥이었다. 그는 밥 대신 막걸리를 마시는 일이 많았다. 크게 취할 정도로 마시지는 않았다. 술을 마셨는지 안 마셨는지 분간하기가 힘들 정도로 언제고 살짝 취기가 든 듯한 모습이었다.”
어느 신문에 실린 천상병 시인을 소개 한 기사다. 천상병 시인처럼 막걸리를 예찬한 시인도 별로 없을 것이다. 막걸리 한 병이면 하루 종일 행복하고, 먹으면 배가 부르니 술이 아니라 밥이라 말하고, 한 잔으로 천 가지 근심도 사라진다고 천상병은 막걸리를 찬미했다. 그래서 막걸리 한 병에 1천원쯤 하던 시절, 사람들은 막걸리를 ‘천원의 행복’으로 빗대 말했다.
이제 ‘막걸리 빚기’는 국가무형문화재가 되었다. 지난 2021년 6월 15일 국가무형문화재 제144호로 지정될정도로 국가에서도 막걸리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막걸리 업계에서는 한 발 더 나가 한국의 전통주 ‘막걸리 빚기’를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막걸리는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국민주(國民酒)다.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막걸리를 더 싸게 마실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대폿집에서 친구와 각 1병의 막걸리를 마셔도 안주를 포함해서 2~3만원의 비용은 든다.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들에게는 결코 적은 돈이랄 수 없다.
그런데 진짜로 주머니가 가벼운 주당들에게 헐값이나 진배없는 가격으로 막걸리를 마실 수 있는 막걸리프렌차이즈 사업을 한창 준비 중인 양조장이 있어 화재다.
막걸리 2병과 안주를 포함해서 단돈 1만원으로 막걸리를 마실 수 있는 ‘만원의 행복’사업이다. 이 정도면 공짜나 매 한가지가 아닐까.
막걸리 2병과 안주 하나가 단돈 1만원
세상천지가 온통 신록으로 물들었고, 붉은 장미가 만발하고 뽕나무에서 떨어진 오디로 길을 얼룩지게 만들고 있는 초여름, 충북 음성군 대소면에 자리 잡고 있는 (주)조선종합주류(회장 金忠吉, 76)를 찾았다. 바로 이 양조장의 김 회장이 ‘만원의 행복’ 막걸리프랜차이즈 사업을 준비 중에 있기 때문이다.
막걸리프랜차이즈 사업의 개요부터 들어 봤다. 김 회장은 “막걸리가 흔해도 막상 마시려면 비용이 들기 마련입니다. 물론 마트에서 막걸리를 구입해서 집에서 혼자 마시는 것은 비용을 걱정 안 해도 되겠지만 식당에서 마시려면 둘이서 마셔도 몇 만원은 들지 않습니까. 이 가격을 절반이하로 줄이는 방법을 찾던 중 막걸리프랜차이즈 사업을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김 회장은 구상했던 사업을 부산 지역에서 시험사업을 해 본 결과 반응이 좋았다고 했다.
막걸리프랜차이즈 사업이란 어떤 사업일까.
첫째로 식당 운영자금이 거의 들지 않는 요식업이다. 실제로 프랜차이즈로 식당을 운영하려면 보증금을 내야하고, 각종 설비를 비롯한 인태리어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런데 김 회장이 구상하는 프랜차이즈에는 이런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이는 요리를 해야 하는 주방이 필요 없고, 인태리어도 필요 없다. 그저 술을 마실 수 있는 테이블과 주전자와 잔만 있으면 된다.
인태리어는 해 묵은 신문만 있으면 된다. 벽지 대신 신문으로 벽을 바른다. 벽을 바르는 기술도 필요 없다. 그저 생긴 대로 신문지로 벽을 바른다. 손님들은 벽지로 사용한 신문에서 몇 십 년전 기사를 보면서 당시를 회상할 수도 있을 것이고, 벽에다가 낙서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래된 신문을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해 김 회장은 수소문 끝에 어느 신문사 창고에 수십 년 된 신문이 쌓여 있는 것을 찾아내 상당량의 물량을 확보 했다고 한다. 꼭 신문이 아니더라도 오래된 벽지도 괜찮을 것이라고 했다. “약간 고풍스러우면(?) 되지 않겠어요”
벽지가 귀하던 시절, 흙벽에 이런 저런 종이를 붙여서 흙벽을 가리던 시절을 소환하겠다는 김 회장의 역발상이 재밌다.
양조장에서 막걸리병 대신 벌크 형태로 업소까지 공급
둘째로 상차림은 간단하다. 막걸리 2병은 양조장에서 공급하고 안주는 지역 도시락 업체와 연결하여 밥과 국을 뺀 반찬만 3천원에 공급받는다. 원가가 5천 원 정도다. 프랜차이즈 점주는 만원을 받으면 약 5천원의 이익이 발생한다. 큰 이익이 발생하는 사업이 아니라 그야말로 영세업자들이 큰 자본 없이 사업을 할 수 있다고 김 회장은 설명했다.
이 사업의 특징은 앞으로 막걸리 공급도 현재와 같은 플라스틱 막걸리 병이 아니고 통막걸리 형태로 공급한다. 양조장에서 작은 탱크로리로 업소까지 공급하고 업소(식당)에서는 항아리 등에 막걸리를 받아서 손님에게는 주전자로 제공한다.
이렇게 되면 막걸리병 생산비가 절약되고 마시고 난 빈병처리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친환경적이 될 수 있다. 이미 관계 당국으로부터 이 같은 공급 방법에 대해 허가를 받아놨다고 했다.
이 같은 막걸리 공급 방식은 60~70년대 막걸리 유통 방식이다. 당시에 일부 유통 업자가 운반 과정에 물을 너무 타서 막걸리가 싱거워졌다는 불만들이 많았지만 그럴 리는 없을 것이라고 김 회장은 말한다.
또 업소에서 제공하는 안주가 부실하다고 여기면 안주를 별도로 가지고 갈수도 있다. 단 주류는 안 된다.
초대 막걸리수출협의회장을 역임한 하명희 씨
(주)조선종합주류는 탁주, 약주, 청주를 생산하는 양조장이다. 2010년 4월 8일 설립했으니까 14년이 된 양조장이지만 뿌리는 195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 하명희(河明熙, 76)이사의 부친이 이동주조를 설립한 고 하유천 회장이다. 하유천 회장이 1957년 이동주조를 세우고 이동막걸리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그 비결을 하명희 이사가 이어 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으니 조선종합주류의 역사는 67년에 이른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이동막걸리’는 막걸리업계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다. 전방에서 군대생활을 한 청․장년이라면 이동막걸리라는 말만 들어도 아련하게 떠오르는 향수를 느낄 수 있는 막걸리다.
고 하유천 회장은 황해도 출신으로 6․25사변 전 월남하여 건국대(당시는 정치대)를 나와 주류 관련 사업을 했다고 한다. 서울 마포 공덕동 부근에서 주정공장도 운영하고 당시로는 큰 건물(6층)을 지어 경제적으로 걱정 없이 지냈으나 어느 날 화재로 전 재산을 잃게되자 전국으로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그러다가 포천군 이동을 지나면서 물 한 모금을 마셨는데 물맛이 너무 좋아 이곳에 양조장을 짓고 막걸리 사업을 시작했다. 마침 양조장 인근에는 군부대들이 많아 젊은 병사들이 막걸리를 즐겨 마시고 이들이 제대 후에도 이동막걸리 맛을 그리워 하며 즐겨 찾아오곤 했다. 이 덕분에 이동막걸리는 전국적으로 소문이 나는 바람에 매출은 순풍에 돛을 단 듯 했다고 한다. 연간 매출이 80억 원에 달했다니 대단한 매출이 아닌가.
특히 하유천 회장은 지난 1993년〈포천 이동막걸리〉의 첫 일본 수출을 이끌어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일본을 시작으로 미국·중국·태국·멕시코 등 막걸리 해외시장을 개척, 막걸리업계에선 수출의 선구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2002년 하유천 회장의 사망으로 하 회장의 둘째 딸인 하명희 씨가 양조장을 물려받아 운영하게 된다.
하명희 씨는 머리가 명석하여 이와여대 약대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재원이었지만 아버지 사업에 참여하다보니 약과는 거리가 멀어졌다고 했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고 했던가. 이동 산골짜기에서 막걸리 빚어 팔고 있는 하명희 대표의 명성은 전국막걸리업계에도 알려져 2010년 6월 막걸리수출협의회 초대회장에 추대된다.
당시 하명희 회장은 한 인터뷰에서 “우리 쌀로 빚은 막걸리가 세계적인 명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하겠습니다.”고 말했다.
팔방미인 김충길 회장 “전 국민들을 주태백이로 만들겠다”
김충길 회장은 홍성에서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산정호수 부근에서 사업을 시작한 바람에 이쪽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 여기서 초․중고등학교를 나와 포천이 제2의 고향이 되어 버렸다.
김충길 회장과 몇 시간 대화를 나누다 보니 수준 높은 팔방미인(八方美人)이란 생각이 들었다.
현재 김 회장이 상주하고 있는 사무실은 화실이며 박물관이다. 김 회장의 화풍을 보니 수채화로 풍경화를 주로 그리는 것 같다. 그래서 화가다. 약 2만여 점의 고가구를 비롯한 각종 유물들이 즐비하다. 한 때 제주에서 중문민속박물관장을 지냈다고 했다. 그리고 IMF직전까지 제주 중문단지에서 전통호텔도 운영했다.
호텔을 운영하고 있을 때 고 김수환 추기경님이 호텔에서 묵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 때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김 추기경님이 “네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시기에 “전 국민을 주태백이로 만들고 싶다”고 하자 그날 김 추기경님이 호텔내 바에서 술을 마시던 손님들에게 “골든 벨을 울리셨다”고 전했다. 추기경님하고 대화를 나눌 정도로 김 회장은 모태신앙이고 카톨릭과 연관된 단체를 이끌기도 했다.
수질검사원도 놀란 물맛, 막걸리 맛은 물맛이 좌우하는 이유
왜 이동에 터 잡고 있던 양조장을 버리고 음성으로 옮긴 이유가 궁금했다.
이에 대해 김 회장은 “한창 이동막걸리가 잘 팔릴 때입니다. 그런데 시장 조사를 해 보니 생산량보다 팔리는 량이 배나 되는 겁니다. 바로 가짜 이동막걸리를 바로 이곳(현재 터)에서 만들어 팔고 있던 것입니다. 바로 법적 조치를 해서 더 이상 가짜를 생산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하자 가짜를 만들던 사람들이 손들고 폐업을 했습니다.”
때맞춤 이동주조가 경영권 분쟁으로 시끌어지자 가짜 이동막걸리를 생산하던 이 공장을 2010년에 인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했다.
김 회장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물맛 때문이라고 했다. 공장 부지는 거의 마사토로 되어 있는데 100여 m 지하에서 퍼 올린 지하수를 검사했더니 수질 검사소에서 “세상에 이런 좋은 물이 어디서 나왔냐?”고 감탄 하더라는 것.
술 맛은 물맛이 좌우 한다고 하지 않던가. 이동의 물맛보다 몇 배 좋은 물로 막걸리를 생산하다 보니 (주)조선종합주류가 생산하고 있는 생 막걸리 ‘팔도강산’이 고객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조선종합주류에서 생산하고 있는 주품은 ▴생막걸리▴흑생막걸리▴프리미엄 막걸리▴아리랑 막걸리▴정통 일본 사케 초화(初花) 등이다. 모든 막걸리에 아스파담을 첨가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하 이사는 팔도강산이 고객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것은 “1957년 이동주조 전신인 한일양조장에서 빚어낸 막걸리의 ‘맛’을 그대로 계승하여 살아 있는 곰팡이 균과 땀구슬이 함께 어우러져 탄생한누룩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양조장 한켠에 처진 그늘 막에서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킨다. 컬컬했던 목이 확 뚫리는 기분이다. 그래서 막걸리를 국민주라고 했던가.
글․사진 김원하 기자 tinews@na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