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왕기 전통막걸리명인이 빚는 수제막걸리…청량감 넘쳐

강왕기 대표와 권인숙 전무는 틈만 나면 발효탱크를 관찰한다. 그리고 막걸리로 태어나는 어린 막걸리에 애정을 쏟는다.

춘천양조장 姜旺基 대표權仁淑 전무

강왕기 전통막걸리명인이 빚는 수제막걸리청량감 넘쳐

막걸리 발효실에는 태교음악처럼 클래식 음악이 흐른다

 

 

자연이 주는 계절의 변화에서 봄만큼 살가운 계절도 없을 듯싶다. 물 맑고 산 좋은 춘천(春川)은 지명 자체가 봄을 연상케 한다. 그래서인가 유안진(柳岸津, 1941.10,1⁓)시인은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라고 노래하지 않았던가.

“…春川이 그렇지/ 까닭도 연고도 없이 가고 싶지/ 얼음 풀리는 냇가에/ 새파란 움미나리 발돋움 할 거라/ 녹다 만 눈응달 발치에 두고…”

춘천양조장 姜旺基 대표․權仁淑 전무

꽃피는 봄이 지나고 여름이 시작되는 하지(夏至)도 넘겼다. 아직은 초여름 이랄 수 있지만 기후변화의 탓 때문인가 한 여름처럼 덥다. 이런 날 생각나는 것이 시원한 막걸리 한 잔이다.

냉장고에 넣어 두어서 차가워진 막걸리가 아니라 막걸리 자체가 텁텁하지 않고 깔끔하고 시원한 막걸리 말이다. 그런 막걸리가 어디 있느냐고 할 수 있으나 춘천에 있다.

기자가 연전 한국막걸리협회에 들렀다가 마셔본 춘천 수제막걸리가 그랬다. 전국에 수많은 막걸리 가운데 어째서 춘천 수제막걸리가 떠올랐을까. 아마도 그 때 마셔본 춘천 수제막걸리의 그 시원한 맛이 각인 되었던 모양이다.

전 국민이 알고 있듯이 막걸리는 쌀(조, 보리, 수수 등 기타 곡물), 누룩, 물만 있으면 빚을 수 있는 술이다. 그런데 막걸리는 묘하게도 같은 재료를 가지고 같은 장소에서 같은 레시피대로 술을 담가도 열사람이건 백 사람이건 술빚는 사람마다 맛이 다 다르다. 왜일까?

이 물음에 답을 얻고자 전국의 양조장을 찾아 나선지도 2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번 양조장 취재를 위해 춘천으로 달려가면서도 그 때 마셔봤던 수제막걸리의 맛이 떠올라 취기가 도는 느낌이 든다.

전통막걸리명인 강왕기 대표. 좋은 술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성과 혼이 들어가야 한다고 한다.

춘천양조장과 강 대표는 연이 닿아 있었던 모양

시원한 수제 막걸리를 빚는 양조장이 춘천양조장(대표 姜旺基 65, 전무 權仁淑 64)이다. 춘천양조장은 춘천시 공지로(석사동)에 자리 잡고 있다. 양조장 주변은 아파트촌이라 아파트가 양조장 울타리 같다는 느낌이 든다. 고즈넉한 양조장이다.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는 강 대표는 체구는 크지 않지만 다부지게 생겼다. 무엇이든 해 낼 것 같은 인상이다. 첫 인상으로만 봐선 막걸리를 빚는 양조장 대표 같지 않다. 와이너리 대표나 일반 기업을 운영하는 그런 타입이다.

그런데 얘기를 나누다 보니 막걸리 양조장 대표가 맞다. 필자 역시 전국의 내로라하는 양조장을 답사하고 많은 양조인들과 이야기를 나눠봤지만 강 대표처럼 막걸리 문제를 놓고 학자 이상으로 파고들어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사람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강 대표는 경남 함양에서 나고 자랐다고 한다. 함양에서 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와서 기계설비업도 하고 유통업도 했다고 한다. 유통은 우유대리점을 했었는데 전국대리점 판매 부분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이를 시기하고 질투하여 모략 질을 하는 동업자들 때문에 우울증에 걸려 시달렸다고 했다. 그래서 유통업을 접고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부가 전국의 산천경개 구경에 나섰다고 했다.

“한 1년 쯤 그렇게 세월을 보내던 중 우연찮게 춘천에 들르게 되었을 때 춘천양조장 이야기를 들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양조장을 인수하고 운영하게 된 모든 것이 운명이려니 생각합니다.” 강 대표가 풀어내는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모든 것은 연이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왕기 대표와 권인숙 전무는 틈만 나면 발효탱크를 관찰한다. 그리고 막걸리로 태어나는 어린 막걸리에 애정을 쏟는다.

50여년의 역사 지닌 춘천양조장

춘천양조장은 1968년 춘천 지역 주조장 9곳의 합병으로 설립된 50여년의 역사를 지닌 양조장으로 한 때 강원도에서는 잘 나가는 막걸리를 생산했다.

9곳의 양조장을 합병하여 운영해 오다가 경영부실로 폐업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을 지금의 강왕기 대표가 12년 전에 인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양조장이다.

양조장 운영이 부실해지면 술맛도 부실해지기 마련. 강 대표가 양조장을 인수할 때는 술맛이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였다고 강 대표는 말했다.

그래서 강 대표는 어머니를 떠올리고 어머니처럼 술을 빚기로 마음 먹었다고 한다. 어머니 정병연 여사는 하동 정씨의 종가 출신으로 하동 정씨의 제주(祭酒) 제조법을 전수한 인물로 알려지고 있다.

강 대표가 어릴 적 어머니는 집에서 술을 빚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오전에 쌀을 씻고 해가 저물 때쯤 고두밥을 퍼 평상에 널어놨다가 밤 열한 시, 열두 시쯤 하얀 소복(素服)을 입으시고 깨끗한 마음으로 막걸리를 담그셨다”며 “동네 주민들이 우리 집 술이 최고라며 좋아하셨다”고 말했다.

막걸리의 생명은 누룩이다. 춘천양조장은 전통누룩 대신 입국(쌀누룩)으로 막걸리를 빚는다. 생산된 입국을 살펴보는 강왕기 대표.

어렸을 적 일이라 잘 몰랐지만 강 대표가 양조장을 인수하고 막상 술을 담가보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어머니를 떠올렸다. 다른 집들도 똑같은 재료를 가지고 술을 담그는데 왜 어머니가 빚는 술이 더 맛있다고 하는 것일까?

정답은 순수한 정성이었다. 이는 과학적으로도 풀 수 없는 것. 그 때부터 강 대표는 술이 익어가는 과정의 미생물을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양조시설. 올 가을에 대대적인 설비를 새로 들여와 현대화 시킬 예정이라고 한다.

발효실에는 클래식 음악이 흐른다태교음악이다

어느 날 양조장에서 강 대표가 잠을 자고 있는데 탕탕 하는 굉음이 공장에서 들려 왔다고 한다. 무슨 일인가 싶어 불을 키고 공장안을 샅샅이 뒤져 봤으나 원인을 찾아 낼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막걸리 발효 탱크 옆에서 자면서 살펴보기로 했다.

그런데 새벽 2~4가 되자 발효탱크에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굉장히 큰 소리였다고 한다. 한 30여분 지나자 조용해지더라는 것. 이런 광경을 목격하기 위해 추운 겨울인데도 한 달여 기간 발효탱크 옆에서 잠을 자며 관찰했다.

이는 미생물들이 어떤 시간, 어떤 환경에서 활동하는지 관찰하기 위해서 였는데 결론은 “미생물과 우리는 친구 관계라는 것을 깨달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전통 술을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되며, 친구와 대화를 한다는 마음으로 미생물과 대화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강 대표는 실제로 발효탱크 2개를 놓고 실험을 했다고 한다. 한 발효탱크에 대해서는 좋은 말만 하고 칭찬도 해주고 다른 발효탱크에 대해서는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해주고 관심도 갖지 않았다고 했다. 결과는 술맛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보고 알게 되었다.

기자가 양조장 발효실에 들어갔을 때 조용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양조장에 “웬 글래식 음악?”하며 강 대표에게 물으니 “그렇게 하면 술맛이 부드럽고 좋아진다”고 했다.

임산부들이 태교음악을 듣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나 할까.

이 같은 실험은 실제로 식물학자들이 많이 하는 것으로 칭찬해준 화분에서 예쁜 꽃이 핀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

 

강왕기 대표 한국무형문화유산 전통막걸리 명인

춘천양조장의 수제 막걸리가 달고 시원한 것은 바로 이런 정성과 혼(spirit)이 깃들여진 술이기 때문인 것은 아닌가.

강 대표는 “막걸리는 우리의 혼과 같습니다. 이를테면 고사를 지낼 때를 보세요. 소주나 맥주로 고사를 지냅니까. 막걸리로 지내는 것은 막걸리에는 우리의 혼이 서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막걸리를 빚는 일은 진실 되고 정성을 쏟아 부어야 맛있는 막걸리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강 대표는 “사람끼리 어울려 살다보면 다투기도 하고 싸움도할 수 있는데 막걸리 한 잔씩 나누다 보면 쉽게 화해가 됩니다. 친구끼리 다툼이 있을 때 화해술을 마셔야 할 때는 꼭 막걸리로 하세요” 그러면 화해가 잘 된다고 했다. 진실일까.

양조장을 아파트촌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어 고즈넉하다.

춘천양조장을 일컬어 명인이 빚는 막걸리라고 한다. 이는 강왕기 대표가 문화체육관광부에

서 선정하는 한국무형문화유산(제KICAA2020-0704호) 전통막걸리명인으로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춘천양조장 주병에는 신라의 미소 옆에 ‘명인’ 두 글자가 눈에 띤다. 한 분야에서 명인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고 자부심을 느낄만한 일이다.

주병에는 명인 두 글자 말고 로고로 ‘춘천 수제 막걸리’라는 글씨와 두 컷의 그림이 있다. ‘수제’는 강대표가 직접 쓴 것이고 그림은 사위가 그렸다고 한다. 그림만 봐도 수제라는 인상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현재 춘천양조장이 출하하고 있는 주품은 ▴춘천생동동주로 1700㎖주병에 알코올 6%짜리인데 쌀과 밀의 혼합형이다. 밀의 묵직함과 쌀의 산뜻함이 결합되어 상큼함을 느낄 수 있다.

춘천양조장이 생산하고 있는 주품들

▴춘천생막걸리는 1700㎖와 1200㎖ 두 종류다. 6%의 도수지만 밀로 빚어 맛이 묵직하다. 단맛을 최소화 하여 옛 향수를 좋아하는 마니아층이 형성된 막걸리다.

▴춘천수제막걸리는 750㎖ 주병에 5%의 알코올 도수다.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탄산으로 청량감이 일품이다. 전통막걸리명인이 직접 쌀누룩을 만들어 맛이 풍부하고 부드럽다. 알코올도수가 낮아 젊은 세대들이 많이 찾는 막걸리다.

▴춘천왕수생막걸리 750㎖ 주병에 6% 짜리 막걸리다. 발효가 서서히 진행되면서 더욱 깊은 맛을 내어 대중적으로 다양한 연령층에서 선호하는 프리미엄 막걸리다.

춘천양조장이 생산하는 막걸리는 살균 막걸리가 없다. 모두가 생막걸리다.

취재길에 동행한 본지 박영덕 편집위원에게 양조장 전반에 걸쳐 설명하고 있는 강왕기 대표.

고객을 진심으로 왕으로 모십니다

“막걸리로 돈을 벌겠다고 생각했으면 살균 막걸리도 생산했게죠. 그저 좋은 술 만들면 마셔본 분들이 찾아올 것을 확신하고 좋은 술 만드는 데만 열중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저렇게 마셔본 분들이 찾아와서 술을 사가더란다. 최근에는 유명 마트에서 엄청난 양의 막걸리를 납품 해 줄 수 있느냐고 문의가 왔었다고 했다. 박절하게 거절은 안 했지만 소규모 생산업체들은 이런 제안에 혹해서 생산설비를 늘리다가 망하는 것을 많이 본 강 대표는 천천히 생각해 보자고 했단다. 그리고 일부 매점에서 팔아 보고 결과를 놓고 거래를 하자고 했단다.

춘천양조장이 출하 하는 주병에는 ‘왕수’라는 말이 들어 있다. 강 대표는 이에 대해 “그거요 고객들을 왕으로 모시겠다는 나의 의지”라고 했다.

지난 5월 서울 양재 at 센터에서 개최된 ‘2024 막걸리 엑스포’서 참관객들이 ‘춘천 왕수 생막걸리’를 지목하고 시음을 즐겼던 것은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술은 뭐니 뭐니 해도 맛이 좋아야 한다”는 기본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강왕기 대표는 현재 한국막걸리협회 감사직을 맡고 있다. 그러나 양조장 일이 바쁘다 보니 강 대표의 부인인 권인숙 전무가 대신 업무를 처리한다. 권 전무는 또 춘천향토기업발전협의회 회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춘천 지역 전통주협의회를 만들어 15개 업체의 대표이기도 하다. 1년에 한 번씩 춘천지역 주류 박람회도 개최하고 있다.

춘천양조장에서는 춘천생동동주, 춘천생막걸리, 춘천수제막걸리 춘천왕수막걸리를 생산한다.

권 전무는 춘천은 타 도시와의 식품산업 경쟁에서 맑은 물과 깨끗한 자연환경, 수도권과의 인접성 등의 강점이 많아 앞으로 전통주 도시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고 했다.

강 대표와 권 전무는 향후 목표를 묻자 “춘천이라는 브랜드를 갖고 세상에서 제일 좋은 술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춘천이라는 지역과, 춘천 막걸리와, 내 이름 석 자를 세상에 알리고 싶다”고 했다. 전통 수제 막걸리 명인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랄뿐이다.

글․ 사진 김원하 기자 ti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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