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 밤의 꿈- Summer Wine

김준철의 와인교실(24)

 

한 여름 밤의 꿈– Summer Wine

 

김준철 원장 (김준철와인스쿨)

 

 

여름에는 화이트와인

 

김준철와인스쿨(원장)

우리나라 사람들의 와인 취향이 언제부턴가 레드와인 위주로 바뀌었다. 1980년대 우리나라에서 만든 와인이 유행할 때는 거의 화이트와인이었다. 그러다가 수입개방 이후 레드와인이 몸에 좋다는 소문 때문에 요즈음은 화이트와인을 마시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화이트와인은 몸에 좋다는 폴리페놀이 레드와인에 비해서 적게 들어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나름대로 다른 효과를 가지고 있다. 식욕촉진 효과, 이뇨작용 등은 레드와인보다 훨씬 좋고, 두통을 일으키는 성분도 레드와인보다는 적다. 그러나 건강 문제를 떠나서, 더운 여름에는 묵직한 레드와인보다 가볍고 산뜻한 화이트와인을 차게 마시면 더 시원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더운 식품과 찬 식품

 

한 때 중동 건설 붐이 일어났을 때, 열사병에 걸린 근로자에게 누군가 보리밥을 먹여야 한다고 해서 그렇게 했더니 과연 활기를 되찾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여기에 대한 해설은 다음과 같다.

쌀은 봄에 씨를 뿌려 여름의 ‘더운 기운(溫氣)’을 먹고 자란 작물이기 때문에 더운 기를 머금고 있어서 겨울에 먹으면 몸을 따뜻하게 하는데 좋고, 보리는 가을에 씨를 뿌려서 겨울의 ‘추운 기운(寒氣)’을 먹고 자란 작물이라 여름에 먹으면 몸을 시원하게 한다는 상당히 타당성 있는 이론에 바탕을 두고, 처방을 한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더위에 지쳤을 때 맥주가 제 가치를 발휘하는지도 모른다.

이 이론에 바탕을 두고,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는 와인을 찾는다면, 포도는 다년생 식물이기 때문에 차고, 덥고 구분하기 애매하지만, 강렬한 햇볕을 듬뿍 받고 자란 붉은 포도로 만든 레드와인보다는 약간은 서늘한 곳에서 신맛이 적절히 배합된 청포도로 만든 화이트와인이 좋다고 할 수 있다.

이 화이트와인도 3년이 채 안된, 비싸지 않은 것으로 신선하고 발랄한 맛이 있으면 생기를 줄 수 있다. 화이트와인이라면 ‘샤르도네(Chardonnay)’로 만든 것을 가장 알아주지만, 너무 맛이 묵직할 수 있으니까 여름철에는 맛과 향이 톡 톡 튀는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이 적격이다.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

 

소비뇽 블랑은 개성이 뚜렷한 품종으로 초보자라도 그 산뜻한 향미에 반하게 되어있다. 비교적 서늘한 곳에서 자란 것이라야 그 고유의 향미를 발산한다. 이도 그늘에서 재배하면 풋내와 같은 채소류 냄새가 너무 많아지지만, 일조량이 많은 곳에서는 향긋한 풀 냄새에 과일 향이 많이 나온다. 언뜻 샤르도네에 비해서 색깔도 옅고 기품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마실수록 그 맛에 빠져드는 사람이 많다. 샤르도네가 우아한 맛이라면 소비뇽 블랑은 독특한 향이 노골적이다. 그래서 샤르도네를 여왕에 비유하면, 소비뇽 블랑은 ‘옷 벗은 여자’에 비유하기도 한다.

 

보르도에서는 세미용과 블렌딩하여 묵직한 화이트와인을 만들지만, 보다 북쪽인 서늘한 루아르 지방에서 나오는 ‘푸이 퓌메(Pouilly Fume)’와 ‘성세르(Sancerre)’는 소비뇽 블랑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한데, 다소 신선하고 가벼운 성세르의 것이 여름용 와인으로 더 좋다.

캘리포니아에서는 퓌메 블랑(Fumé Blanc)이라고도 하는데, 나파와 소노마 남쪽에 있으면서 가장 서늘한 곳으로 알려진 캐너로스(Carneros)의 것은 과일 향보다는 허브의 독특한 향을 느낄 수 있다.

 

요즈음 소비뇽 블랑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은 바로 뉴질랜드의 것으로, 1980년대부터 정책적으로 육성하여 상당히 고급 품질을 생산하고 있으며, 역시 남극의 찬 기운을 간직한 전형적인 여름날의 와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남 섬에 있는 ‘말보로(Marlborough)’ 지방은 뉴질랜드에서 가장 넓고 유명한 와인산지로 산맥이 서풍을 막아 포도의 생육기간이 길고 건조하며, 토양은 척박하고 자갈이 많아 배수가 잘되어, 각종 과일 냄새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작업용 와인, 로제(Rosé)

로제는 레드와 화이트의 중간상태로 매혹적인 색깔이 매력의 포인트이다. 신선한 맛과 분위기 있는 색깔로 식사 중 어느 때나 마실 수 있다지만, 보통은 야외 파티나 남녀 간에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 많이 사용되는 로맨틱한 와인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면, 트랩 대령이 빈에서 백작부인을 데리고 와서 테라스에서 마시는 와인이 바로 이 로제다. 요즈음 유행하는 말로 ‘작업용 와인’에 가장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로제는 냉장고에서 꺼내어 언제, 어느 곳이든 부담 없이 사용될 수 있다. 차게 해서 따서 글라스에 부으면 된다. 와인 맛을 잘 모르는 사람도 매혹적인 색깔 때문에 반하게 되어 있다.

 

로제는 프랑스 루아르 지방에 있는 유명한 ‘앙주(Anjou)’가 가장 무난하다. 포도 자체의 향이 살아있고, 적절한 신맛에 알코올 농도도 그렇게 높지 않다. 이 로제는 맛이나 향보다는 아름다운 색깔이 생명이라서 핑크빛이어야 하며 오렌지나 보랏빛을 띠어서는 안 된다. 즉, 시각적인 아름다움이 가장 잘 나타나야 한다.

또 다른 것으로는 프랑수아 1세가 애용했다는 역사가 오래된 로제는 론 지방의 타벨(Tavel)을 들 수 있는데, 이곳의 로제는 바디가 강한 편이라서 눈 감고 마시면 레드와인으로 착각할 정도다. 그 외 캘리포니아의 ‘화이트 진펀델(White Zinfandel)’ 등도 무난하다.

 

스파클링 와인(Sparkling wine)

 

약속시간이 되기 전에 오는 순서대로 여러 명이 와인을 즐길 경우는 가벼운 스파클링 와인이 좋다. 스파클링 와인이라면 보통 샴페인을 떠올리지만, 여름에는 스페인의 ‘카바(Cava)’와 같은 가벼운 스파클링 와인이 좋다. 야외 파티의 경우에는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는 레드 스파클링 와인을 준비하는 것도 참신한 인상을 줄 수 있다.

딸기 향이 그윽한 ‘스파클링 메를로(Sparkling Merlot)’에 간단한 카나페를 준비하면, 이 와인 하나로 그 날의 화제가 될 수 있다. 시원한 얼음물에 넣어 두고, 플루트 모양의 길고 세련된 글라스를 사용하면 야외 파티의 우아한 분위기가 한결 빛을 낼 수 있다.

 

여름날의 와인(Summer wine)

여름에 마시는 와인은 매혹적인 색깔에 갖가지 꽃향기를 머금은 와인이 야외나 테라스의 식사에 어울리며, 여름에는 레드, 화이트 모두 차게 마셔야 제 맛이 난다. 로제나 가벼운 화이트와인이라면 잔에 얼음을 넣어서 시원하게 마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오래 전, 프랭크 시나트라의 딸, 낸시 시나트라가 부른 ‘써머 와인(Summer wine)’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Strawberries cherries and an angel’s kiss in Spring. My summer wine is really made from all these things…” “봄날의 딸기, 체리 그리고 천사의 키스까지 내 여름날 와인은 이 모든 것이 다 넣어 만든 것…” 시원한 음료라고 해서 더위를 물리치지는 못한다. 이렇게 시적인 마음으로 천천히 와인을 음미하는 여유가 더위를 잊게 만든다.

 

필자:▴김준철와인스쿨(원장)▴한국와인협회(회장)▴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프레즈노캠퍼스 와인양조학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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