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52)

Venus, Cupid and a satyr(1532)/ Correggio Cupid inciting a Satyr(1720)/ Giuseppe Bartolomeo Chiari,

南台祐 교수의 특별기고

 

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52)

 

 

남태우

아테네인들은 아폴론적 지혜를 추구하면서도 근심을 덜고 환희를 느끼게 만들어주는 주신(酒神) 디오니소스를 통해 팍팍한 삶의 긴장과 고통을 잊고 새로운 힘을 충전할 수 있었다. 에우리피데스(Euripides)가 쓴 비극 <박코스의 여신도들(Bakchai)>에서 코로스의 합창은 디오니소스가 그리스인들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잘 말해준다.

 

“우리의 신이신, 제우스의 아드님께서는

주연을 좋아하시며, 뿐만 아니라

축복을 가져다주시고 젊은이들을

양육하는 평화의 여신을 사랑하신다네.

그분은 부자에게도 가난한 이에게도

근심을 잊게 해주는 포도주의 환희를

똑같이 나눠 주신다네. 그러나 그분은

낮과 행복한 밤에 축복받은

인생을 살아가려 하지 않고,

지혜롭게도 초인(超人)들로부터

생각과 마음을 멀리하려 하지 않는 자는

미워하신다네. 평범한 다수(多數)가

자신들의 규칙과 관습으로

삼는 것을 나도 받아들인다네”

디오니소스 신을 숭배하는 광란적인 의식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작품 <바코스의 여신도들(Bakchai)>에서 테베의 왕 카드모스의 어머니 아가우에(Agaue)가 바코스적 황홀과 광기에 빠져 자신의 아들을 사자인 줄 알고 갈기갈기 찢어 죽이는 상황이 연상되는 작품이다. ‘바코스의 여신도들’은 디오니소스가 신적인 권능으로 자신의 종교에 저항하는 펜테우스를 잔인한 방식으로 희생시키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펜테우스가 희생제물이 되는 과정을 보면 앞에서 언급한 디오니소스 제의의 두 가지 요소인 ‘희생제물을 갈기갈기 찢는 것’과 ‘날고기를 먹는 것’이 잘 나타나 있다.

 

한편 사티에르(Satry) 또는 사티로스(Saturos)는 디오니소스 축제의 남자 시종을 일컫는다. 사티로스 아버지는 헤르메스이고 어머니는 그리스 선주미족인 펠라스고스 족의 드리옵스왕의 딸 드리오페라고 전해진다. 그가 태어날 때 너무 신기한 모습을 한 그를 보고 올림포스 신들은 놀라면서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판(pan)’, 그리스어로 ‘모든 것’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철학자들은 이를 ‘우주’를 뜻하는 단어와 착각해서 ‘판’을 우주신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얼굴은 사람모습이지만 나귀 귀에 이마에는 뿔이 솟아 있으며, 하반신은 염소의 모습을 하고 있는 반인반수이다. 코는 납작하고 머리칼은 뻣뻣하며 뿔이 있고, 염소의 귀와 꼬리가 달렸으며 발굽이 있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남자 시종으로 디오니소스를 숭배하는 지팡이나 술잔을 든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고대 이집트 신 베스가 원형이라는 견해도 있으며, 로마 신화에 나오는 파우누스(Faunus)와 동일시된다. 실레노스 및 마이나데스와 함께 디오니소스 주연에 참가하였다. 예쁜 요정을 쫒아 다니고 Aphrodite가 목욕하는 모습을 훔쳐보는 못된 장난이 심하고 주색을 밝히는 무리들로서 영어에서 ‘호색한 또한 남자성욕 항진증 환자’를 뜻하는 ‘세트릭 Satyric’은 사티로스에서 파생된 낱말이다. 이런 연유에서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사티로스는 색욕과 악으로 의인화 되었으며, 그 뿔과 발굽은 르네상스의 악마적 임무와 기독교에서 사탄의 상징으로 이용된다. 이들의 저급하고 익살스러운 성격을 본 따서 ‘사티로스극(Satyr play)’이 발전하였다.

Venus, Cupid and a satyr(1532)/ Correggio
Cupid inciting a Satyr(1720)/ Giuseppe Bartolomeo Chiari,

얼굴은 사람의 형상인데 하반신은 염소의 모습을 한 사티로스 무리가 이 술의 신을 쫓아다닌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감성과 관능의 화신이었던 자신들의 본능을 발산하는 데 있어 디오니소스 만큼 강력한 지도자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주인을 따라 세상 곳곳을 휘젓고 다니며 온갖 포악한 행동을 일삼아 사람들을 공포와 광기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들이 디오니소스를 쫓아다닌 또 하나의 이유는 포도주를 마음껏 얻어 마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몽사몽의 나른한 상태야말로 사티로스가 꿈꾸는 삶의 이상이었는데 포도주는 그런 상태를 지속시키는 강력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그들은 못 말리는 관능의 화신이기도 했다. 포도주의 알딸딸한 취기는 평소 그들이 연모하던 요정들을 향한 정염을 더욱 불타오르게 만들었고, 그런 포도주의 힘을 빌려 가냘픈 여인들을 괴롭혔다. 한번은 괴성을 지르며 시링크스(Syrinx)라는 요정을 집요하게 쫓은 적이 있는데 강에 다다라 궁지에 처한 이 요정을 강의 요정이 불쌍히 여겨 갈대로 둔갑시켰다. 판은 갈대를 꺾어갖고 불며 놀다 이것으로 팬플루트(시링크스)라는 관악기를 발명했는데 여러 개의 플루트를 마치 빨래판처럼 잇대어 놓은 모양이었다.

이들이 이성을 잃고 소리 지르고 발광하는 모습은 올림포스를 침범한 타이탄이 기겁해서 달아날 만큼 광적인 것이었다. 오늘날 극단적 공포를 의미하는 ‘패닉(panic)’이란 용어는 바로 이 사티로스, 즉 판(pan)의 광란적 행동이 초래한 공포심에서 유래한 것이다. 사티로스는 그렇게 무늬만 목동의 신이었을 뿐 언제나 정욕과 나태함 속에서 살았다.

이렇게 목적 없이 쾌락에만 탐닉하고 감성에 자신을 맡기는 룸펜 같은 사티로스의 독특한 캐릭터는 인간의 내면, 무의식의 영역 등 현실 너머 세계를 시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19세기 말 상징주의자들에게 매력적인 캐릭터로 다가왔다. ‘화요회’ 모임을 통해 그런 움직임을 주도했던 프랑스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Stephane Mallarmé, 1842~1898)는 이 신화적 존재를 ‘목신의 오후’를 통해 상징적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사티로스가 주목의 대상이 된 것은 그보다 훨씬 이른 르네상스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스 고전 문화가 재발견되면서 이성과 함께 감성의 영역도 조명받게 된 것이다. 베네치아 화파의 거장 티치아노는 물론 바로크 화가 카라바조 등 수많은 화가들이 숲의 요정들을 괴롭히는 사티로스를 즐겨 그렸다. 사티로스와 요정의 결합은 자손의 번성과 풍요를 의미했기 때문에 당대 미술 후원자들에게 인기 있는 주제 중 하나였다.

폴 브릴(Paul Bril, 1554~1626)이라는 플랑드르(Flandre, 오늘의 네덜란드와 벨기에) 화가도 사티로스를 자신의 화폭에 담았다. 형 마티스를 따라 이탈리아에 온 그는 형이 일찍 죽자 형이 주문받아 놓은 작품들을 뒷수습하다 아예 눌러앉았다. 브릴은 로마에 거주하면서 주로 귀족 저택의 프레스코 벽화를 그렸는데 정작 그에게 명성을 안겨준 것은 캔버스에 그린 풍경화였다.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플랑드르 풍경화를 바탕으로 여기에 이탈리아의 신화적 이상세계를 결합한 그의 이국적 풍경화는 로마인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끌었다.

<님프와 사티로스가 있는 풍경>(1623)은 그런 절충적 화법을 잘 보여주는 만년의 대표작이다. 우선 고요한 대자연의 풍경을 보여주는 3단 구도는 화가가 북구의 고향에서 배워온 것이다. 당시 플랑드르에서는 상상력을 동원, 자연의 웅혼한 기상을 신비롭게 묘사했는데 이 그림에서도 그런 특징은 뚜렷이 드러난다. 화면 좌우에 자리 잡은 구불구불한 형상의 고목과 그 뒤 키 큰 나무들은 마치 자연에 깃든 신성을 드러내는 듯하다. 특히 전경을 갈색, 중경을 녹색, 원경을 회청색으로 묘사하는 색 원근법은 플랑드르 고유의 투시법이며 꼼꼼한 세부묘사 역시 고향의 전통을 빌린 것이다. 원경의 구릉이 마치 하늘에 녹아드는 듯한 표현은 르네상스 풍경화의 대가 요아킴 파티니르에게서 배운 것이다.

물론 화가는 이탈리아 미술의 전통을 덧붙이는 센스도 잊지 않았다. 그 점을 우리는 그림 오른쪽 하단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사티로스와 님프(곧 요정)가 어우러진 그리스의 신화적 요소다. 늘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을 벌이던 두 정령이 모처럼 사이좋게 둘러앉아 어린아이의 재롱을 즐기는 모습으로 보아 이 작품은 사티로스가 결혼으로 안정을 얻은 후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추측된다.

일찍이 프리드리히 니체는 말했다. 이성과 질서를 중시하는 ‘아폴론적인 것’뿐 아니라 방종한 ‘디오니소스적인 것’도 인간 존재의 완성을 이루는 근간이라고. 브릴이 구현한 사티로스의 세계는 바로 요정과의 결합을 통해 내면의 평정을 얻은 균형과 조화의 이상적 경지인 것이다. 그것은 패닉이 사라진 판의 세계다. 나사 풀린 감성에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는 목신(牧神) 사티로스의 나른한 심리상태를 음악으로 표현한다면 어떨까. 클로드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를 위한 전주곡’은 우리에게 그 답을 절묘하게 제시해준다.

오수에서 막 깨어난 사티로스가 님프와의 관능적 사랑을 몽상한다는 내용을 마치 꿈꾸는 듯한 분위기로 묘사한 이 곡은 난해하기로 유명한 상징주의 시인 말라르메의 시 ‘목신의 오후’를 바탕으로 작곡한 것이다. 그러나 드뷔시는 이 곡을 작곡할 때 자세한 시의 분석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인상만을 표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사티로스의 미묘한 심리상태를 묘사하기 위해 멜로디와 리듬, 하모니에 의존하는 전통적 작곡 기법에서 벗어나 5음계를 비롯한 혁신적인 작곡 방식을 도입,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러나 주변의 우려와 달리 1894년 12월의 초연은 대성공을 거뒀고 드뷔시의 명성을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됐다. 플루트로 시작되는 10여 분간의 매혹적이고 나른한 선율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사티로스가 된 자신을 발견하리라. 지친 심신을 달래는 데 이보다 큰 음악적 묘약은 없다.

 

디오니소스를 쫓아다닌 다는 점에 착안하여 프리드리히 니체는 그의 후기 작품 Ecce Homo에서 ‘나는 철학자 디오니소스의 제자이다, 나는 성인이 되느니 차라리 사티로스이고 싶다’고 서술한 바 있다. 대개 사티로스는 남자지만 여성도 있으며, 여성의 경우 사티레스(Satyress)라 불린다. 다만 이는 후대의 예술가들에 의해 재창작된 경우가 많고, 고대 미술품에서는 그 모습이 드물어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장난을 좋아하고 색을 밝힌다. 남자 사티로스의 경우는 항상 성기가 발기되어 있다고 한다. 그건 사티로스를 표현한 조각이나 그림 등 미술품들에서 잘 표현되어 있다.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을 상징하는 캐릭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포세이돈의 사랑을 받은 아미모네(Amymone)와 온몸에 수많은 눈을 가진 거인 아르고스와 관련된 신화에서 악행을 저지르는 존재로 묘사된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못생긴 외모 탓에 사티로스와 닮았다고 조롱을 받곤 하였다.

Neptune et Amymone/ François Boucher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 “나의 세 번째 준칙은 운명을 이기느니 차라리 나 자신을 자제하고, 세계의 질서를 바꾸느니 차라리 나의 욕망을 바꾸려고 항상 애쓰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는 더 나아가 <정념론>에서 “의지로써 매우 쉽게 정념을 물리치고 그 정념에 동반되는 육체의 운동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사람은 확실히 가장 강한 영혼을 가졌기 때문이다”라고 단언한다.

그런 점에서 디오니소스 신화는 국가권력과 이성에 대한 도전, 인간 사이의 지배와 피지배가 존재하지 않았던 기존 공동체 사회를 향한 지향을 통해 현실의 억압에 대한 도전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디오니소스 의식에 여성과 노예가 주로 참여했다는 점은 이를 시사해주는 것이다. 또한 집을 떠나 숲에 머물며 축제를 벌이는 행위라든가 날짐승을 잡아먹는 행위는 과거 평등했던 수렵과 채취사회에 대한 향수와 지향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대표적인 문화인류학자인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라든가 말리노프스키의 <미개사회의 성과 억압>을 보면 원시부족들이 밤이 되면 자주 축제를 벌이곤 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수렵과 채취를 중심으로 하는 이들에게 재산을 축적한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그날의 수확물을 놓고 벌이는 축제를 통해 만족을 추구하는 삶이 곧 일상의 삶이자 행복이었을 것이다. 디오니소스 의식은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제우스로 대표되는 힘과 권위 그리고 수직적인 위계구조, 아폴론으로 대표되는 균형, 조화, 절제, 질서, 이성, 지식 등이 당시 그리스 고대국가 지배세력의 사유이자 이데올로기였다면 디오니소스는 해방을 열망하는 피지배 계급의 사유방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디오니소스가 도취, 극단성, 무질서, 본능, 광란, 환상, 열광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지게 된 것은 이성을 강조했던 지배세력에 의해 악의적으로 형성된 이미지라고 볼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가 최고의 신이고 아폴론이 그의 뒤를 잇는 신이었음에 비해 디오니소스는 신의 대접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던 사정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남태우 교수

▴문학박사/중앙대학교 명예교수▴전남대 교수▴중앙대학교 도서관장▴중앙대학교 교무처장▴중앙대학교 문과대학장▴한국정보관리학회장▴한국도서관협회장▴대통령소속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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