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하의 취중진담
왕과 신하 그리고 술자리
잘되는 회사는 회식이 잦고, 안 되는 회사는 회의만 잦다는 우스갯말이 있다. 직장인들의 푸념이겠지만 따지고 보면 틀린 말만은 아니다.
회식자리란 것이 대개는 술자리인데 술의 순기능만 이루어질 수 있다면 그 만한 소통의 매개체도 없다. 업무상 불협화음이 있어도 술 몇 잔 돌리다 보면 오해가 풀리고 화해를 할 수 있다. 업무 효율을 배가 시킬 수 있는 있는 것이 술이 가지고 있는 순기능이다.
처음 만난 사람과 어쩌다 술자리를 같이 하다보면 몇 순배 안가서 형님 동생할 수 있는 것도 술이 가지고 있는 순기능이다. 그렇기에 술은 우리 인류역사와 함께 해 오면서 발전하면 발전했지 사라지거나 근절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막걸리하면 떠오르는 인물 가운데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빼 놓을 수 없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농번기가 되면 논두렁에 앉아서 촌부들과 막걸리 잔을 비우는 모습을 보며 자란 지금의 기성세대들은 그 때 그 모습이 참으로 정겹고 즐거웠다는 생각을 지을 수 없다.
또 박정희 대통령은 가끔 성곡 김성곤 의원을 불러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같이 양말 벗고 대야에 발 담근 채 술을 마시곤 했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라면 무슨 이야긴들 못했겠는가. 바로 이런 것이 소통일 것이다.
지금의 박 대통령은 여성이라 아버지처럼은 못하더라도 여·야 정치가들을 불러서 빈대떡이라도 붙여 놓고 막걸리 잔이라도 부딪치는 모습이 화면에 나온다면 국민들은 흐뭇해하지 않을까.
일부 언론에서는 지금의 박 대통령을 ‘군림하는 王’ 같다고 표현하고 있지만 길어야 5년 임기다. 이미 절반은 지나버렸으니 나머지 임기라도 不通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는 소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야 정치인들은 물론 국민과 잦은 회식자리라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옛 날의 왕들도 때론 신하들과 술자리를 함께했다는 기록은 수도 없이 많다. 때론 술에 취한 신하가 왕에게 실은 소리도 해 대고 주사도 부렸다지만 이런 신하를 엄히 다스리기보다는 신하의 쓴 소리를 귀담아 듣기도 하고 정사에 반영도 했다. 성군의 모습이 이랬을 것이다.
물론 君臣 간 술자리에서는 신하가 큰 실수를 저질러 죽음을 당한 사례도 없진 않지만 ‘취중진담’ 이라는 말처럼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다면 필요한 것이 술자리다.
세조실록에 의하면 조선의 왕 중 술자리를 가장 많이 가진 왕은 세조였다. 세조는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준 공신들에게 자주 술자리를 베풀어주면서 만남의 장을 가졌다고 한다. 세조는 한명회, 신숙주, 정인지 등 공신들과 함께 술자리를 즐겼다는 기록이 자주 보인다. 대화는 물론이고 흥이 나면 함께 춤을 추거나 즉석에서 게임을 하는 등 술자리에선 신하들과 격의 없이 소통했다. 인간사회에서 술은 윤활유다. 윤활유가 떨어진 기계는 멈추듯이 인간사회에서도 가끔은 소통을 위해 친화력을 높이기 위해 술자리가 필요하다.
왕과 신하뿐 아니라 정치가끼리도 때론 술자리를 자주 갖다보면 소통이 잘 된다.
그런데 최근에는 여·야 대표끼리 또는 의원끼리 소주잔이라도 맞대보는 장면을 볼 수 없다. 국회에 금주령이라도 내렸는가. 물론 지나친 음주는 아니 마심만 못할 때도 많다. 그래서 술을 기피하는 분위기라면 삭막해진 분위기를 어떻게 풀것인가.
벌건 대낮부터 폭탄주 돌리며 원샷을 외쳐대는 것은 꼴 볼견이지만 소시민들처럼 해질 무렵 포장마차에서 대폿잔이라도 기울이는 장면이 연출된다면 이 또한 보기 좋은 그림이 될 것이다.
며칠 전 대통령과 여당 수뇌부가 모처럼 만난 것이 대서특필되었는데 아쉬운 점은 밥이라도 함께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나만의 생각이었을까.
(본지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