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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57)

(우) 마드리드 국립 스페인 도서관미겔 데 세르반테스 동상

南台祐 교수의 특별기고

 

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57)

 

 

남태우

히포크라테스가 쓴 고대 헬라어 ‘테크네(techne)’가 라틴어 ‘아르스(ars)’로 바뀌고, 영어 ‘아트(Art)’로 옮겨지면서 ‘예술’로 변형된 개념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테크네’는 ‘기술, 기법’ 등을 의미했다. 의사이자 철학자인 히포크라테스는 의료기술을 ‘테크네’로 표현한 것이다.

지금의 ‘예술’을 의미하는 ‘art(아트)’라는 말은 영어 단어이지만, 어원적으로는 라틴어 ‘ars(아르스)’에서 나왔으며, ‘ars’는 그리스어 ‘techne(테크네)’에서 유래한 말이다. 흔히 우리가 ‘기술’ 또는 ‘기능’이나 ‘공예’라는 뜻으로 번역하는‘ technique(테크닉)’은 ‘techne’에서 유래된 또 다른 단어이다. 즉, ‘art(예술)’ 그리고 ‘technique(기술)’, 두 단어는 동일한 어원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은 딱히 오늘날의 예술을 가리키는 데 있어 ‘techne’란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techne’는 그들에게 어떤 의미로 쓰였을까? ‘techne’는 일반적인 ‘규칙(rule)’에 관한 지식에 따라 일정한 ‘기술(skill)’에 입각한 인간의 제작활동 일체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쉽게 말하면, 인간이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production 및 manufacture’ 활동 전부를 ‘techne’라고 부른 것이다. ‘techne’라는 활동을 위해서는 솜씨뿐 아니라 기술도 필요했다. 그리하여 생산 및 제작의 기술이나 규칙에 정통하는 지식도 역시 ‘techne’의 범주 안에 속했다. 그리고 ‘techne’ 활동들은 정의 속에 규칙이란 개념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어서 모두 합리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현재 예술을 가리키는 ‘art’의 어원이 ‘techne’이지만, 두 용어는 서로 다른 종류와 유형의 활동들을 포함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의 ‘art’에 속하는 활동들이면서 당시 ‘techne’라고도 불렸던 것들은 회화와 조각, 건축 등이었다. 또한 의술이나 용병술 혹은 항해술, 웅변술, 기하학 등의 기술적 활동이나 지식은 지금 ‘art’의 영역에 속해 있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지만, 당시에는 ‘techne’라고 불렸다. 반면에 지금의 ‘art’에 해당하는 시와 음악, 무용 또는 춤, 연극 등은 당시 ‘techne’에 속하지 않았다.

고대의 초창기 ‘art’ 개념인 ‘techne’란 용어가 어떤 영역의 활동은 포함하고 어떤 것은 포함하지 않는지 살펴보면, 당연히 지금과 차이점이 있다. 그러나 고대 이후 중세를 거쳐 시간이 흘러갈 때까지 ‘techne’의 의미는 ‘art’라는 말에도 계속 이어졌으며, 예술 즉 ‘art(아트)’에 대한 이해 방식은 르네상스 시기까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요즘의 우리가 생각하는 예술 개념은 18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성립된 것이다.

 

이제 시, 음악, 무용 또는 춤, 연극 등과 같이 지금의 ‘art’에는 속하지만 당시에는 ‘techne’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았던 활동들을 그리스인들은 어떻게 생각했는지 살펴보자.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러한 활동들을 가리켜 ‘musike(뮤지케)’라고 불렀다. 즉, 뮤즈 여신들이 촉발시킨 영감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했던 표현이다.

여기서 영감은 ‘enthousiasmos(엔토우지아스모스)’, 즉 영어 단어 ‘enthusiasm(열중, 열정)’의 어원으로서 ‘신들린 열광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었고, 본래 종교적인 용어이기도 했다. 다시 말하면, ‘musike’란 단지 영감이나 상상력만으로 무언가를 하는 행위였고, 신에 홀린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비합리적인 활동이었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이러한 ‘musike’가 ‘techne’와는 구별되는 활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가 ‘art’로 여기는 것들을 ‘techne’의 범주에 넣지 않고 ‘뮤즈’의 영감이라는 개념으로만 파악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테크네’가 지나친 상태를 그는 ‘뇌전증’으로 본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래서 ‘천재병’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이다.

이제는 4체액설에 기대어 인간의 성격유형을 분석해 보고자 한다. 인간의 성격유형을 ‘햄릿형과 돈키호테형’, ‘외향형과 내향형’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쓰는 이분법도 있다. ‘돈키호테형’이란 말하자면 양성적(陽性的)이고, 다혈질적인 인간, 그리고 행동적이고 낭만적인 성격의 인간을 가리킨다. 이에 반해 ‘햄릿형’의 인간은 음성적 우울질이면서 회의적(懷疑的)이고, 현실적인 성격이나 행동이 뒤따르지 못한다.

“돈키호테형 인간은 이상에 대해 확고한 믿음을 지니고 있고, 이상을 이룩하기 위한 희생과 헌신의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반면에 ‘햄릿형 인간’은 자신의 사고로 이상을 분석한다. 생각이 깊고 행동이 신중해 한 박자씩 늦는 사람을 일컫기도 한다. 심지어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을 때 살이 찌는 형인지 마르는 형인지로 개성을 가늠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이분법적 인간성격의 기반이 된 두 작가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성격유형의 분류로 ‘아폴론=돈키호테, 디오니소스=햄릿’ 패러다임으로 구성해 볼 수 있다는 생각에서 기인한다.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 4월 23일)와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 Saavedra, 1547~1616, 4월 23일)는 역사적으로 아주 저명한 작가들이다. 셰익스피어는 흔히 <햄릿Hamlet>으로 알려진 <덴마크 왕자 햄릿의 비극(The Tragedy of Hamlet, Prince of Denmark)>(1599-1601)의 저자이고,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Don Quijote>로 알려진 <라 만차의 비범한 이달고 돈키호테(El ingenioso hidalgo Don Quixote de la Mancha)[doŋkiˈxoteð̞elaˈmantʃa]>(1605)의 저자이다. 이 작품들은 그들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것들이며 출판시차는 4년 차이다.

HamletQ1 title page, 1603. La Galatea(1585)표지, Miguel de Cervantes가 처음으로 출판한 작품.

햄릿형 인간을 창조한 <햄릿>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Othello>, <King Lear>, <Macbeth>) 가운데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인간의 음모와 모순성을 토로하는 한편, 순결한 영혼을 가진 인물이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 부닥쳐 정신적 고통을 겪으며 무너져 가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도 세계 각국에서 널리 공연될 정도로 높은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 작품은 엘리자베스 1세 시대(1580년경∼1642년)의 비극의 한 형태로서 유행했던 복수극의 극작가 토머스 키드(Thomas Kyd, 1558∼1594)의 <스페인의 비극(The Spanish Tragedy)>(1585년 상연, 1594년경 출판)을 소재로 하여 쓴 희곡이다. 셰익스피어가 어떤 원형을 소재로 해서 썼다고 해도 문제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단순히 복수극의 범주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의 높고 깊은 의식에 충격을 주고, 그것과 사상적 반응을 일으키게끔 해 준 독창성에 있다.

 

셰익스피어가 판에 박은 듯 한 복수극의 형태로 쓰지 않았던 이유는 그의 높은 예술적 감각이 찬란한 언어와 성격 창조의 상상력을 통하여 인간의 근원적 양상을 탐구하였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인간 구명(究明)의 과정이 그의 작품 속에서 뚜렷하게 부각되어 있기 때문에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만인의 셰익스피어로 우리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비극의 가치는 관객을 높은 도덕적 세계로 끌어올리는 데 있는데, 이를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현세의 것은 모두 파멸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햄릿의 파멸과 죽음은 새로운 도덕적 가치 체계의 수립을 위한 희생의 의미로 해석된다. 우리는 햄릿의 파멸에서 인간의 비극적 조건에 대해 연민을 느끼고, 이를 통해 카타르시스에 도달한다.

 

이 작품에 나와 있는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 that is the question)”라는 햄릿의 독백은 우유부단한 성격의 햄릿형 인간을 창조하여, 중요한 문제에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을 말할 때 인용된다. 햄릿의 갈등은 근본적으로 선악과 생사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데서 나오는 것이며, 그의 죽음은 인간이 지켜야 할 최고의 가치는 선(善) 임을 말해 준다.

본문의 내용은 햄릿이 현재의 왕인 숙부가 자기 부왕(父王)을 죽이고, 어머니를 가로챈 원수임을 전해 듣고는 고민에 싸여 실성한 사람과 같이 행동하는 부분을 옮긴 것이다. 햄릿은 인간에 대한 환멸과 원수에 대한 증오심에 불타면서도, 복수를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고통을 겪는다. 이 때문에 햄릿은 우유부단한 인물의 전형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햄릿은 극단의 모순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순결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청년이었던 것이다.

반면에 1605년에 발행된 <라만차의 비범한 이달고 돈키호테(El ingenioso hidalgo Don Quixote de la Mancha)>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고, 발표되자마자 큰 인기를 얻어 당시 스페인 국왕 펠리페 3세(Felipe III, 1578~1621)는 길가에서 책을 들고 울고 웃는 사람을 보고 “저 자는 미친 게 아니라면, 돈키호테를 읽고 있는 게 틀림없다.”라고 말한 일화가 전해질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던 문학작품이었다.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속편은 1615년 <라만차의 비범한 기사 돈 키호테(Segunda parte del ingenioso caballero don Quixote de la Mancha)>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다. 스페인 황금기의 대표적인 문학일 뿐 아니라 문학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으로 꼽힌다. 전편(1605), 후편(1615)으로 발행된 세계 최초의 근대소설로 성서 다음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다양한 언어로 번역된 책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주인공 알론소 키하노(Alonso Quijano)는 시골에 있는 50살이 넘은 신사(Hidalgo, 스페인의 하급 귀족)이다. 그는 기사에 대한 소설을 너무 많이 읽어 점차 상상 속에 빠져들게 되며, 그가 편력 기사임을 깨닫게 된다. 그는 스스로를 ‘돈키호테 데 라 만차(Don Quijote de La Mancha)’라 칭하며, 그의 하인(원래는 농부) 산초 판차(Sancho Panza)와 함께 모험을 떠나게 된다. 기사로서 마땅히 기사도를 발휘해야 할 연인은 둘시네아 델 토보소(Dulcinea del Toboso)인데, 사실은 이웃에 있는 농부의 딸로 이름은 ‘알돈사 로렌소(Aldonza Lorenzo)’이다.

이후 그는 스페인을 돌아다니며 많은 모험을 만난다. 특히 전편에서는 마을의 신부, 이발사, 여러 귀인들과 청년, 처녀들과 함께 머무는 주막에서 유명한 모험을 펼치며, 후편에서는 바로셀로나까지 갔다가 기사로 분장한 마을의 학사에게 패하여 돌아와 사망할 때까지 전편보다 많으면서도 지루하지 않은 모험을 펼친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알론소 키하노(Alonso Quijano)로 돌아오는 이야기이다.

몰락한 시골 귀족 알론소 키하노는 딱히 하는 일이 없어 책을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이 취미다. 특히 기사를 다룬 소설을 좋아해서 집안일을 제쳐두고 물건을 팔아서 잔뜩 사들이고 읽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오십 줄에 접어든 그 시골 귀족은 기사소설에 대한 호기심과 광기가 지나치다 못해 급기야는 광활한 논밭을 팔기에 이르렀다. 덕분에 집안 가득 기사소설을 빼곡히 들여놓을 수 있었다. 그는 책을 읽는 데 너무나 열중한 나머지 결국은 이성을 잃어버리기에 이르렀다.” 독서가로서 그는 ‘남독가(濫讀家)’라고 하겠다.

소설 속기사들처럼 자신도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적들의 목을 베고 사랑을 쟁취하는 도전적인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다. 대대로 내려오던 낡은 무기들을 꺼내고 방금 모험길에서 돌아온 것처럼 깡마른 말을 한 마리 사서 ‘로시난테(Rocinante)’라 이름 붙인다. 스페인어로 ‘로신(rocin)’은 바싹 여위었다는 뜻이다.

기사에게는 그럴듯한 작명도 필요했다. 자신의 성 ‘키하노(Quijano)’에 멋을 부려서 ‘키호테(Quixote)’라 고치고, 존칭을 뜻하는 ‘돈(Don)’을 앞에 붙였다. 유랑 기사처럼 고향을 성 뒤에 붙여서 ‘돈키호테 데 라만차(Don Quijote de la Mancha)’라 불렀다.

기사에게는 지고지순의 사랑을 바칠 여인도 필요하다. 농사일을 하는 아리따운 동네 처녀 알돈사 로렌소(Aldonza Lorenzo)가 생각났다. 귀족은 감미롭다, 순수하다는 뜻을 가진 ‘둘시네아(Dulcinea)’라는 이름을 마음대로 정하고, 동네 이름을 붙여서 ‘둘시네아 델 토보소(Dulcinea del Toboso)’라 부르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고향을 떠나 모험의 길에 나서게 된 귀족은 정신이상에 가까운 착각, 타협을 모르는 고집, 사랑과 명예에 대한 갈망 때문에 별 것 아닌 일에도 과도하게 반응하며 사건을 만들어냈다. 이것이 최초의 근대 소설이라 불리는 ‘재치 있는 귀족 돈키호테 데 라만차(El Ingenioso Hidalgo Don Quijote de la Mancha)’다.

돈키호테는 중세 시대가 저물면서 낭만주의가 함께 사라져가는 시대적 배경을 그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상과 현실의 갈등 속에서 고민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것도 인기의 비결이다. 다른 작가의 책을 번역한 것이라는 작가의 고백을 소설 중간에 집어넣거나 등장인물들이 소설에 대해 논하는 장면이 들어가는 등 파격적인 형식도 당시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우) 마드리드 국립 스페인 도서관미겔 데 세르반테스 동상

그런데 이 두 사람의 인물성과 작품성은 서로 전혀 상대적이다. 두 사람이 창조한 문학 속의 주인공들은 정반대의 성격을 가졌고, 그 내용 또한 너무나 다르다. 이것을 두고서 <첫사랑>으로 익히 알려진 러시아의 대문호(大文豪) 이반 투르게네프(Ivan Sergeyevich Turgenev, 1818~1883)는 ‘햄릿형인간’과 ‘돈키호테형 인간’이라는 두 가지 유형으로 인간의 특성을 분류하였다.

인간의 성격유형을 ‘햄릿형’과 ‘돈키호테형’으로 구분한 러시아 소설가 투르게네프가 <햄릿과 돈키호테>라는 에세이를 통해 ‘사색형 인간 햄릿형’과 ‘행동형 인간 돈키호테’로 나눈 것에서 유래한다. 이반 투르게네프는 그의 책에서 ‘햄릿을 사랑하기는 힘들지만, 돈키호테는 사랑하지 않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투루게네프는 햄릿형 인간을 자기중심적 이기주의로 보고, 돈키호테형은 신념에 가득 찬 자기희생적 인물로 묘사했다.

인류공영의 입장에서 보면 햄릿은 백해무익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키호테는 역사를 만들어 간다는 시각이다. ‘To be, or not to be : that is the question’를 고민하는 우유부단한 햄릿과, 현실 감각은 없지만 자신의 이상을 향해 무모하게 돌진하는 돈키호테는 각각 사변과 활동, 양 극단의 상징이다. 시대를 공유하다가 비슷한 시기에 사망한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는 모든 면에서 대조적인 두 인물을 문학사의 전범(典範)으로 창조해낸 셈이다.

투르게네프가 생각하기에는 ‘햄릿형’의 인간은 뛰어난 지각력과 깊은 통찰력을 지니지만, 실천력 결여로 인해 세상과 민중에 기여하는 바가 없다. 반면 미쳤다고도 할 수 있는 ‘돈키호테형’ 인간은 하나의 목표만을 추구하며, 그 목표 이외의 것은 알려고 하지 않는다. 때로는 그들이 추구하고 있는 목표가 실재하지 않는 경우조차 있다. 하지만 투르게네프는 이러한 유형의 인물들이야말로 역사 발전에 기여하고 사회를 이끌어간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투르게네프처럼 돈키호테의 발랄함과 행동력을 아낀 사람이 많았던지 돈키호테(Don Quixote)의 이름을 딴 ‘키호티즘(quixotism)’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키호티즘’은 돈키호테의 이러한 무모한 성격이나 생활태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키호티즘’은 무모함이나 어리석음의 범주를 훨씬 뛰어넘는다. 비록 돈키호테가 현실과 동떨어진 고매한 이상주의자로서 부딪치는 일마다 패배를 맛보기는 하지만, 그의 용기와 고귀한 정신은 꺾이지 않는다.

작가 세르반테스는 이 작품에서 당시 현실의 모순을 타파할 목적으로 돈키호테라는 가상의 인물을 등장시켜 비통한 패배를 맛보게 하면서도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현실과 맞서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인물 유형을 만들어 냈는데, ‘키호티즘’은 돈키호테의 굽힐 줄 모르는 고매한 정신을 가리킨다.

곧 실패를 할지라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끝까지 밀고 나가는 성격이나 생활태도를 뜻한다. 따라서 아무리 현실의 벽이 높다 하더라도 결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비록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지라도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바를 끝까지 추구하는 용기와 의지를 가진 사람들, 이러한 사람들의 생활태도가 ‘키호티즘’이다.

 

이루지 못할 꿈을 꾸고

쳐부수지 못할 적과 싸우고

견디지 못할 슬픔을 견디고

용감한 사람도 가기 두려워하는 곳에 가고

순수하고 정결한 것을 사랑하고

잡을 수 없는 저 별을 잡으려고 손을 뻗는 것

이것이 나의 여정이다.

 

아무리 희망이 없어 보여도

아무리 길이 멀어도

정의를 위해 싸우고 천상의 목표를 위해서는

지옥에 가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이 영광의 여정에 충실해야 나 죽을 때 평화로우리.

 

그리고 이것 때문에 세상은 더 좋아지리.

아무리 조롱받고 상처 입어도 한 사람이라도 끝까지 노력하면….

잡을 수 없는 저 별을 잡기위해…

 

‘잡을 수 없는 별을 잡기 위해’ 전진한 돈키호테, 끝없는 실패 속에서도 끊임없이 앞으로 돌진하는 무모한 인간형이기는 하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이기도 하다.

<다음호 계속>

 

남태우 교수

▴문학박사/중앙대학교 명예교수▴전남대 교수▴중앙대학교 도서관장▴중앙대학교 교무처장▴중앙대학교 문과대학장▴한국정보관리학회장▴한국도서관협회장▴대통령소속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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