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류주, 발효주 제조는 복합 양조장치 하나면 끝

자칭 빠박이라고 말하는 권혁주 대표는 술을 예술의 장르로 끌어올리는 술아트리스트다.

전통술에 예술을 입히는 술아트리스트 주용 권혁주 대표

 

증류주, 발효주 제조는 복합 양조장치 하나면 끝

복합기기에 쌀과 물만 부으면 증류식 소주가 콸콸

 

자칭 빠박이라고 말하는 권혁주 대표는 술을 예술의 장르로 끌어올리는 술아트리스트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이 법문은 1981년 정월 성철 노사께서 조계 종정으로 추대되면서 대중에게 내린 법어다. 그 후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는 말은 모든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는 유행어가 되었다.

이 법문에 빗대어 주당들은 술상 앞에서 “술은 술이요, 안주는 안주로다”를 읊조리며 술잔을 높이 들고 건배를 외친다.

맹물이나 음료수를 마시며 건배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소주든 맥주든, 막걸리든 술을 마실 때 아무 의식(?) 없이 홀짝 마시면 어딘가 맨숭맨숭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게 바로 술이 가지고 있는 힘이 아닐까. 왜냐하면 술은 아주 오랜 전에는 신들만 마시던 것이었으니까. 이런 술을 예술의 장르로 끌어 올리고 있는 이가 원주에서 술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주용(酒湧)주식회사’의 권혁주(權赫柱, 57) 대표다.

어린이들은 산타할아버지를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는 크리스마스 이븟날 권혁주 대표를 만나러 원주로 달려갔다.

서울엔 며칠 전 내렸던 눈의 잔설마저 녹아 버렸는데 원주 산야에는 아직도 내린 눈이 그대로다. 그래서 겨울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전통술에 예술을 입히는 술아트리스트 주용 권혁주 대표

酒湧(주용)’은 술이 샘솟는다는 뜻

권 대표를 만나 보통 사람들처럼 명함을 교환했다. 권 대표가 건넨 명함이 남다르다. ‘권혁주입니다’라는 글이 인쇄된 앞면에는 큼지막한 민머리 얼굴만 그려져 있다. 명함을 뒤집어 보니 ‘물처럼 길게 산처럼 높게’라는 글귀가 있고 여느 명함처럼 주소와 연락처가 적혀 있다.

다시 한 번 권 대표를 쳐다보니 진짜로 민머리다. 이에 대해 권 대표는 30대 때 사업을 하다가 부도를 맞는 바람에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다. 그 때 머리가 빠지더라는 것. 권 대표의 민머리가 트레이드마크가 된 이유다.

“사실 한 두 번 만나고 나서 통화라도 하면 기억이 잘 안 나는 경우가 많은데요, 저는 빠박 권혁주입니다”그러면 거의 기억을 해서 비즈니스에 큰 도움(?)이 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권 대표가 운영하고 있는 ‘주용’은 거창한 양조장은 아니다. 그 저 작은 술공장이다. 그런데 이 작은 공장에서 어딜 내 놓아도 뒤지지 않는 술이 생산된다. 그리고 술을 예술로 승화 시키는 작업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권 대표는 ‘술은 문화’라고 했다.

권 대표가 술을 개발하고 술병을 디자인하며 손님을 맞는 공간이 있다. 공간은 작지만 여기 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술병들이 쌓여 있다.

사진 속 장면들은 주용에서 볼 수 있는 장면들.

권 대표가 유리 공예를 한 탓에 큼직하고 각진 술병들이 있고, 이 술병엔 아름다운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그림을 그린 화가들은 주로 원주에 살면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 다양한 그림들이 재밌다. 이 술병에 술을 담가서 판매하면 세상에서 나 하나만이 갖고 있는 술이 되는 것이다. 가격은 꽤 비싸다. 진품그림을 소장하는 뿌듯함의 대가이고, 화가들을 위한 작은 노력이라고 하지만 술이 하나의 예술품으로 승화하는 순간이다. 그래서 권 대표를 ‘술 아트리스트’라고 부르는 동기 부여가 되고 있다.

-상호를 주용(酒湧)이라고 지은 뜻은?

“술을 빚는 공장이니까 酒(술 주) 湧(샘솟을 용)이라고 하는데요, 이는 술이 샘솟는 곳 그래서 ‘주용’이라 지었습니다.”

원주와 이웃한 영월 땅에는 술이 샘솟는 다는 주천강(酒泉江)이 있다. 주당들의 유토피아라고 할 수 있는 주천강 술샘은 어느 가짜 양반 때문에 사라졌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주천강에 술이 나오는 샘이 있었는데 갓 쓴 양반이 뜨면 약주가 나오고 상민이 뜨면 막걸리가 나왔다고 한다. 어느 상민이 돈을 주고 양반자리를 샀다. 그리고 멋들어지게 갓을 쓰고 술 샘에서 술 한바가지를 뜨자 약주가 아닌 막걸리가 나왔다는 것. 가짜 양반이 들통이 나자 화가 난 그 가짜 양반이 술 샘터를 망가뜨려 버렸다. 그 후엔 술이 나오지 않았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주천강이란 이름만 들어도 얼큰해지지 아니한가.

주용이 생산하는 주품들

권 대표는 주천 강에서 힌트를 얻어 주천, 술샘 등의 상호를 생각했으나 이미 그런 상호를 사용하는 업체들이 많아서 역시 술이 샘솟는다는 뜻을 지닌 ‘酒湧’이라고 했다고 한다.

 

유리공예로 술병 만들다가 술 공부 시작

권혁주 대표는 바로 이 자리(양조장)에서 태어나 원주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고, 대학에서는 산업공학을 전공했다. 권 대표는 유리공예에 관심을 갖고 술병 같은 유리공예를 시작했다.

예쁜 술병을 만들어 빈병을 선물하자니 허전했다. 여기에 술을 담아 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시중에서 파는 술을 사서 넣긴 싫었다. 그래서 한국전통주연구소(소장 박록담)에서 술을 배우게 된다. 연구소에서 술을 배운 동문들의 모임인 ‘술방사람들’ 회원이기도 하다.

권혁주 대표가 박영덕 위원에게 술병을 예술품으로 만든 것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술빚는 일이 그렇게 재미있는지 몰랐습니다. 쌀과 누룩, 물만 있으면 술을 빚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명 받았죠” 결국 이일을 계기로 평생 술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술을 조금 더 공부하기 위해 늦은 나이에 대학원에서 주류경영학도 공부하고 술과 관련된 다른 꿈을 꾼다. 술과 전혀 관련 없는 사업을 하다가 IMF를 맞으면서 부도를 맞았다. 그 후의 삶은 삶이 아니었다고 했다. 별별 고생을 다하면서 지금까지 견디어 왔는데 2000년 술공부를 시작하여 여러 과정을 거쳐 2017년에 회사를 차리고 지금의 술공장을 운영하게 되었다.

권혁주 대표가 특허 받은 ‘증류주를 제조하기 위한 복합 양조장치’다.

하나의 증류기로 상감압식 증류 가능한 증류기로 특허 받아

권혁주 대표를 찾아간 것은 술도 술이려니와 새로운 술제조장비를 개발하여 2023년 7월 특허를 받은 것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특허를 받은 제품은 ‘증류주를 제조하기 위한 복합 양조장치’다.

일반적인 양조장의 시설은 고두밥을 짓기 위한 큰 가마솥이 있어야 하고, 고두밥이 다 되면 이를 꺼내서 식히는 공간, 그리고 고두밥과 누룩을 버무려 물을 넣고 발효를 해야 하는 발효 탱크가 있어야 한다. 발효가 된 술을 상압식이든 감압식이든 증류기에 넣고 증류를 해야 소주를 생산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모든 과정을 한 번에 처리한다면 어떨까. 설치비의 절약은 물론 생산과정도 굉장히 단축될 것이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권 대표는 자기가 태어난 오래된 건물에 양조장을 설치하는 바람에 비좁다. 그래서 권 대표는 양조설비 개선에 몰두하여 ‘증류주를 제조하기 위한 복합 양조장치’ 개발에 성공하여 특허까지 받게 되었다고 한다.

좁은 공간을 넓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권혁주 대표가 특허 받은 복합양조장치를 설치하는 것.

특허를 받은 기기에 쌀과 물을 넣고 어느 정도 가동이 된 후에는 누룩과 효모를 넣은 후 1주일 정도 지나서 증류기로 가동하면 소주를 생산할 수 있다.

특허 받은 기계로 술을 빚으면 같은 공간에서 생산량은 4배 이상 그리고 술이 만들어지기까지 인건비는 16분의 1 정도가 절감된다고 권 대표는 말한다.

자세한 내용은 논문 “양조용 자동복합기를 이용한 소규모 양조장 경영 개선 연구”나 www.jooyong.co.kr 를 참조 하면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다.

이 복합양조장치를 사용하면 인건비를 적게 들고도 많은 양의 술을 생산하게 돼 원가가 떨어지고 원가가 떨어지면 외부에 나갔을 때 경쟁력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 권 대표의 주장이다.

또 상압식으로 증류하던 것을 감압식으로 증류하는 것도 간단한 조작으로 가능하다.

특히 양조장에서는 탱크를 청소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권혁주 사장은 “5번 청소와 1번 청소의 인건비 차이는 크다” 라고 말한다.

지난 해 2월에는 ‘다단식 상압 증류주를 통한 소주 제조방법’도 특허를 받아 두었다고 한다. 이 다단식 상압 증류를 통한 소주 제조방법은 술덧 저장부, 제1보관탱크, 제2보관탱크, 증류주 보관탱크, 제어부 및 물공급부를 포함하는 다단 상압 증류 소주 제조기를 이용하여 소주를 제조하는 방법이다.

권혁주 대표가 태어난 집. 이 건물이 양조장이다.

ODM 사업이 꿈인 권혁주 대표가 생산하는 주품

권혁주 대표의 꿈은 ODM(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er)방식으로 술공장을 운영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다. 당장 공장운영을 위해서는 술을 생산하고 판매를 해야 한다. 현재 주용이 생산하는 증류식 소주는 ▴주용의 주력상품은 ‘원주술인 19’이다. 19% 소주로 술병이 작은 맥주병 같다. 재료는 원주쌀 토토미와 꽃이 들어간다. 이 술로 소맥으로 만들어 마신다면 끝내준다.(5,000원) ▴‘메타스피릿 27’도 작은 맥주병에 27%의 소주가 들어 있다. ​이 술은 원주술인19 보다 도수가 살짝 높지만. 도수가 낮은 편은 아니기에 민감한 사람들은 조금 부담스럽다고 느낄 수 있는 술이다. 따라서 취향에 따라 하이볼이나 주스류와 함께 마면 부담이 덜하고 쉽게 즐길 수 있다. 마찬가지로 주재료는 쌀과 꽃으로, 향긋하고 산뜻하게 즐길 수 있는 술이다.(10,000원) ▴‘온 628 (리큐르 25%)’ 온 628은 다래가 들어간 리큐르로 다래향을 느낄 수 있는 술이다. 온 시리즈는 고유의 향을 살려 마시는 것이 가장 좋다.(15,000원) ▴‘온 806’ 일반증류주 40%로 가격은 200㎖ 기준 15,000원이다. 온 806은 628과 달리 과실향이 거의 나지 않는다.

권혁주 대표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술이다. 1차로 1천병을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1병에 30만원.

그리고 특별한 술 52도짜리 ‘권혁주 입니다’가 있다. 네모진 술병(900㎖)에는 라벨 대신 특별한 그림도 붙어 있는데 가격은 30만원이라고 했다. 그림 없는 250ml 가격은 9만원이며 주용의 시그니처 증류주다.

이 술병에 이런 글이 적혀 있다. “주용의 시그니처 증류주 권혁주입니다. 한국 술을 꿈꾼 지 20년이 넘었네요. 이 세상 소풍 끝내기 전, 제 이름으로 두개의 술을 남기는 게 꿈입니다. 두 번째는 기약 없지만 첫 번째를 세상에 선 보입니다. 증류되어 나오는 술 중 가장 맛있는 10%만 사용하는 술입니다. 천병을 생산하기 위해선 만병의 술이 필요한 술입니다. 한국 술 천년을 꿈꾸며….

보이는 항아리에는 소주가 가득 담겨 있다.

우리 술은 80점으로 만듭니다

권 대표에게 진짜로 꾸는 꿈이 뭐냐고 물었다. 서슴없이 “노천탕이 딸린 술공장”이라고 했다.

헐! 돈키호테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권 대표는 “제가 목욕탕 가는 것을 엄청 좋아합니다”

이해가 간다. 그러니까 술 빚다가 심심하거나 힘들면 탕으로 들어가 쉬겠다는 거겠지….

동행한 박영덕 편집위원이 귀띔한다. “저런 엉뚱한 생각을 해도 술 하나는 잘 빚습니다.”

답이 없는 엉뚱한 생각도 창의성 발현에 중요하다. 돈키호테 같은 발상, 창의적인 생각을 해보면 새로운 길이 보인다. 틀에 박힌 일상, 조직에서 벗어난 창의적인 생각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다.

주용의 주력상품인 ‘원주술인 19’이다.
주용의 ‘온’ 시리즈

권 대표는 “우리 술이 최고”라고 하지 않고, 술을 1부터 100점으로 따지면 80점 수준에 맞춰서 술을 만든다고 했다.” 20%의 여유를 남기는 이유는 항상 100%의 술을 만들 수 없지만 항상 80%의술은 만들 수 있다 즉 품질의 균등화를 위한 방법이라고 했다.

권 대표에게서 술을 빼면 아무것도 없다. 하기야 현재까지 처자식 없이 독신으로 살아온 그에게 술을 빼면 무엇이 남겠는가. 그래서 권 대표는 “술은 나의 상전, 나는 술의 머슴”이라고 했다. 이는 바꿔 말하면 자기 술에 대단한 긍지를 갖고 있다는 것일 꺼다.

글․사진 김원하 기자 ti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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