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에서 만든 솔 순주에 대한 추억
박정근(문학박사, 황야문학 주간, 작가, 시인)
필자는 8년 전 일본 오사카 히라카타시에 소재한 간사이외대에서 교환교수로서 인문학을 가르친 적이 있다. 간사이외대에서 지낸 일 년은 참으로 멋진 시절이었다. 인생의 폭과 깊이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재미있는 스토리를 만들면서 생기는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이 대학에서 한국어나 일본어가 아닌 영어로 일본 학생들에게 인문학을 강의하면서 매시간 흥미로움과 호기심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영문학 교수가 영어로 강의하는 것은 특별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영문학을 영어로 강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여하튼 간사이외대에서 영어강의는 학생들과 반응을 주고받는 생생한 경험이고 학생과의 교감이 한 걸음 진일보하는 기회가 되었다.
간사이외대는 정책적으로 영어강의를 대폭 정착시킴으로써 서구권의 학생들이 일본에서 동양학이나 일본학을 공부할 수 있는 시스템을 확립하고 있었다. 이런 서구적 열린 프로그램을 통해서 서구학생을 유입하고 그들과의 소통을 원하는 동양학생들을 유입하는 일거양득의 교육전략을 구사하고 있었다.
또한 일본 학생들을 우물 안의 개구리에서 세계로 뻗어나가는 개척적 마인드를 가지도록 자극하고 있었다. 즉 외국 학생을 끌어들여 일본문화를 비롯한 동양문화를 접하게 하고 일본 학생들이 필수적으로 해외에 나가 공부하게 하는 교환학점 프로그램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서구적이고 개방적인 교육정책에 끌린 것은 한국학생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간사이외대에서 미국이나 영국이 아니어도 서구 출신 교수를 접촉하고 영어로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시스템을 선호하는 것이다. 간사이 외대에는 한국학생들도 교환학생으로 수십 명씩 유학을 오고 있었다. 필자가 재직했던 대진대학교도 간사이외대와 자매결연이 되어있어서 학생교류가 활발했다. 따라서 그곳에서 교수로서 그들을 자연스럽게 보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필자는 한국학생들을 가끔 교수아파트로 불러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식당으로 초대해 밥 한 끼 사면 되지만 그런 형식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 한국 학생들과 정을 나눌 수 있는 식단을 만들기로 했다. 한국인의 식단에 김치가 빠지면 허전하다. 그래서 필자는 매번 김치를 직접 담아서 대접하기로 했다. 마트에서 배추와 무를 사서 자전거로 실어왔다. 고춧가루와 젓갈은 일본에 올 때 김치를 담그라고 아내가 마련해준 것이라 냉장고에 잘 보관되어있었다.
아내가 가르쳐준 재료를 준비하고 순서대로 김치 레시피를 만든다. 김치에는 젓갈이 없으면 맛이 없다. 밥을 불려서 풀을 만들고 레시피와 함께 섞어 독특한 맛을 만들어 본다. 비장의 김치 레시피가 완성되면 깨끗하게 씻은 배추와 버무려서 밤늦도록 김치를 만들었던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다.
학생들은 싱거운 일본 반찬을 먹다가 싱싱하고 매콤한 김치를 먹으며 감탄을 한다. “정말 교수님이 직접 김치를 만들었어요.” “그럼 누가 만들었겠나.” 서로 건배를 하면서 외로움을 달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학생들을 초대한 자리이니 그래도 파티의 흉내는 내야 할 것 아닌가. 파티에는 역시 술이 빠지면 안 된다. 물론 마트에 가면 일본 사케를 비롯해서 일본 소주가 즐비하게 있었다.
또한 일본 맥주는 아사히맥주를 비롯하여 모두 술맛이 제법 좋았다. 학생들은 빈손으로 오기 멋쩍다고 일본 맥주를 사들고 왔다. 필자는 학생들에게 안주로 소고기 불고기 요리로 향수병을 달래주고 싶었다. 한국 음식에 일본 술을 마셔도 되지만 한국 술이 곁들여야 좋을 것 같았다. 삼개월전 처음 도착했을 때 히라카타시에 있는 ‘백제신사’ 주위에 있는 소나무들을 발견했다.
필자는 봄부터 소나무에서 싱싱한 솔 순을 따기로 했다. 어린 솔순이나 솔방울을 따는 행위가 법에 저촉되는지 걱정이 되어 새벽 운동을 하러 나가는 길에 비닐봉지에 조금씩 따오기로 했다. 솔순과 솔방울을 소금물에 담갔다가 송진을 제거하고 깨끗하게 씻어 그늘에서 말렸다.
그리고 솔 순과 설탕을 같은 비율로 차례로 큼지막한 유리병에 넣어 세달 정도 두었더니 솔 순주가 완성이 되었다. 물론 속성으로 담그는 방법도 있었다. 일본 증류소주에 솔 순을 담가서 두어 달 두었더니 솔순주가 제법 맛이 나기도 했다. 교수 아파트에서 솔 순에 맛을 들인 외국인교수들과 한국 학생들이 간혹 찾아오는 경우가 있어서 그걸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 경우에 가끔 증류 소주에 담근 솔순주를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사실 솔 순은 혈액순환에 효과가 있다고 평가가 되고 있다. 필자는 솔 순주를 내놓으면서 뇌기능을 활성화한다거나 심장을 튼튼하게 하는 효능이 있다는 사실을 설명해주면 모두 귀가 솔깃해진다. 술맛이 좋은데 몸에 좋다니 마다할 이유가 있겠는가. 특히 솔 순주는 마실 때 독특한 향이 진하게 퍼지는 것을 후각으로 느낄 수 있다. 이 향은 공부하는 학자들이나 학생들에게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효과도 있다. 그래서 밤늦게 책을 읽다가 싫증이 나면 솔 순주를 한잔 마시는 습관이 생겼다. 솔순주의 연한 맛은 목구멍에 넘어갈 때 전혀 역하다거나 거부감이 없다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담근 솔순주는 간사이외대 교수아파트에서 한동안 인기를 누렸으며 귀국 후에도 이멜로 솔 순주가 그립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필자는 이른 봄 히라카타시에 있는 백제신사 공원에서 솔 순을 조심스럽게 따서 솔순주를 담가 학생들과 교수들에게 대접했던 시간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외국에서 향수병에 고통을 겪던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었기를 기대한다. 특히 한국의 음식과 술을 대접해서 한국에 대한 사랑을 가지도록 했다면 필자가 기대한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다고 믿는다.
솔 순주를 담그며
솔아 솔아 푸른 솔아
봄이 왔다고
푸른 잎을 내밀고도
아직도 찬바람에 떠는
푸른 솔아
이른 봄 추위에도
소나무에서 내미는 솔순을 보며
봄의 손길을 느끼고
푸른 손을 솟구쳐
창공으로 날아가려나
하지만 아직도 찬바람에
파르르 흔들리는 그대여
솔아 솔아 푸른 솔아
항상 푸른 너를 닮기 위해
그대 푸른 솔순 살짝 따서
투명한 유리병에 고히 눕힌다
(시인 박정근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