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生如梦
임재철 칼럼니스트
보통의 일상이, 이토록 소중하게 느껴지는 시절이다.
세상이 무섭고 소름이 끼친다. 역사의 불칼을 받아야 할 사악한 범죄 집단의 패악 질에 이가 갈린다. 하지만 하늘은 킬링필드가 일어날 뻔했던 파국의 대한민국을, 백척간두의 한민족을, 버리지 않았음을 믿는다. 꿈인지 생시인지 빛의 광장에서 망연자실하는 사이 새해가 밝았다. 세상이 아프지만 또 삶이 어떤지 길을 묻는다. 어쨌든 새로운 일 년을 시작한다.
젊은 시절 광주의 아픈 역사에 눈물을 가리며 어느새 새하얀 머리가 된 필자다. 이 순간, 정신없이 지나간 시간들을 잠시 복기한다. 계엄과 무차별 살상을 직접 경험한 공포와 트라우마를 가진 필자는 여태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미 필자는 지난해 10월 졸고인 ‘주여, 때가 왔습니다’를 통해 민주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행동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성토한 바 있다. 바야흐로 세상이 고요하지 않지만 위대한 민주 시민 모든 벗들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이처럼 엄중하고 험난한 세상 속에서 간단한 자신이 되고, 삶의 압박이 일상의 즐거움을 밀어내지 않도록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자신의 역할에 따라 또 길을 가야 한다.
중국 고사에 “거거거중지 행행행리각(去去去中知 行行行裡覺)”처럼 말이다. 이는 ‘가고 가고 가다 보면 알게 되고, 행하고 행하고 행하다 보면 깨닫는다.’라는 것이다. 즉 삶에서 자신이 가고자 하는 올바른 방향을 잡고 너무 과하지도 태만하지도 않게 매 순간 쉼 없이 가고 가고, 행하고 행할 때 알게 되고, 깨닫게 되고, 열리게 될 거라는 거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해마다 신년의 화두 또한 엇비슷했지만, 특별히 올 새해 키워드는 아직 정리가 되지 않고 있다. 쿠데타 블랙홀과 팍팍한 민생 경제에 휘말려서 망가진 국민살이 참담하고, 절망과 고통으로 이어진 고달픈 연시에다 나라가 황당하고 제정신이 아닌 하 수상(殊常)한 미친 시절이어서이다. 말하자면 정상인과 망상증 환자들의 대결 시대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것인가 그른 것인가, 분간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세상의 풍파는 나이 들어도 그치지 않는다”는 백거이의 시 구절이 차갑게 떠오른다. 아직 상식과 비상식 간의 혼란한 내전 상황이고 때가 때인지라 광장의 염원을 담아 남은 생의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모든 현재를 살고 싶다. 그렇다고 세상의 반란을 측은지심으로 덮자는 게 아니고, 외롭고 괴로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보통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거다. 그리고 잃어버린 3년을 빨리 돌이켜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비극의 세월을 멈추고 현재 경험할 수 있는 아름다움과 미래를 위해 꿈을 갖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나와 내 가족을 지킬 수 없는 참담한 현실의 세상에서 일하기는 매우 피곤하고, 돈 벌기도 힘들고, 어쩔 수 없이 늙고 할 수 없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 누구나 가물가물하던 중 생(生)의 시간들이 지나가고, 또 일 년을 시작하고, 총총히 흐르는 세월은 모든 것을 가져 갈 것이다. 바로 인생여몽(人生如梦)이다.
누구나 새해에는 지킬 앤 하이드처럼 새해의 결심과 목표를 정하고 계획을 짜게 된다. 이는 신년이 주는 힘이기도 하지만 인생은 꿈을 먹고 살아야 한다. 더불어 그 꿈은 항상 깨어 있어야 하고, 목표를 위해서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더욱 가치 있는 삶을 마주해야 한다.
조금 더 들어가 보면 현재를 살아가는 것은 시종 얽혀 있는 일이지만, 평정심을 가지고 삶의 기복과 변화에 직면하며, 삶의 득실과 성패에 당당하게 맞서야 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의 민주주의, 정치, 경제, 사회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사계절은 일월 분초를 헤아리며 지나간다. 다시는 돌아오지도 않고 인간 세상의 고통이 전제된다. 그런 측면에서 인생은 꿈과 같고 세월은 강과 같다. 필자는 언제든지 누구든지 꿈과 희망, 그리고 노력은 삶의 태도의 하나라 여겨진다. 그런 가운데 가족, 우정, 애국, 평화를 소중히 여기고 마음속의 행복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마음가짐이고, 또 꿋꿋하게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발걸음이 꿈이고 희망일 거란 사유다.
새로운 출발과 한 가지 만이라도 실천이 중요하다는 진리를 되새기는 연초인데 깊은 꿈속에서 헤매고 집착한 필자임을 곱씹는다. 人生如梦이고 세상은 단지 꿈일 뿐이라지만, 그 꿈이 있는 삶을 걸어보는 것이다. 정의와 평화, 상식과 양심이 강물처럼 펼쳐지는 열방에서 모든 사람들이 꿈을 꾸고 그 속에서 즐겁게 자신을 만들고, 새해의 결단과 지혜와 명철로 모두가 평온하게 잘 살아가는 나날이면 좋겠다. 필자 또한 매 순간을 붙잡고 매양 세월이 줄 수 있는 아름다움을 갈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