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도에서 술을 마시다
박정근
(문학박사, 황야문학 주간, 시인, 작가, 칼럼니스트)
서해의 낙조는 동해의 일출만큼이나 아름답다. 동해의 일출이 화려하고 장엄하다면 서해의 낙조는 평화롭고 비극적이다. 늙어가는 친구들과 서해에서 술을 마시면서 과거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니 인생의 덧없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장자도에서 바라보는 낙조가 바다 속으로 사라져버리면 마치 우리들의 청춘이 끝나버린 느낌이 슬며시 파고든다. 우리들은 낙조처럼 인생의 마지막 단계를 내려가고 있다는 생각에 우수에 젖는다.
이번 술자리 미팅의 발단은 대학원 동문들이 필자의 귀농의 집에 방문하겠다는 제안이었다. 지난 팔월 말에 부안 동진면으로 귀촌하여 텃밭을 얻어 채소농사를 지어보았다. 시골집과 텃밭 사진을 대학원 친구들에게 보냈더니 놀러오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학원에서 강의와 리포트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신촌 청미 생맥주집에서 함께 술을 마시곤 했다. 담당교수 신부님이 엄격하게 가르치는 코스로 아주 힘든 과정이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서로 위로하고 다독이며 술을 마시지 않으면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술을 마시면서 서로 아이디어를 공유함으로써 대학원 시절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동고동락한 경험을 바탕으로 졸업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만나는 관계가 되었다.
필자는 친구들에게 장자도에서 멋진 낙조를 바라보면서 술을 마시면 좋은 추억거리가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연초에 아내와 함께 여기서 낙조의 장관을 감상했던 기억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장자도는 선유도에서 연육교로 건너가면 들어갈 수 있다. 입구 오른편에 유명한 호떡집 타운이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호떡 맛을 보려고 들어갔다. 주말에 오면 호떡을 사려는 시민들로 장사진을 이루어 바닷가로 진입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별미라는 호떡을 즐기면서 창문으로 보이는 바다의 정취를 즐기며 한담을 나눈다. 연인들은 호떡의 단맛을 즐기며 사랑의 달콤함을 키운다.
장자도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포인트를 찾아본다. 그곳은 바로 장자도 바다 오른쪽에 솟아있는 대장 봉이다. 적어도 여기를 올라가야 술을 마실 명분을 쌓을 수 있다. 술을 마시는 사내들이 땀을 좀 빼야 술맛이 나는 법이다. 계단으로 된 길은 시간이야 절약이 되겠지만 재미가 덜하다.
우회하여 올라갈 수 있는 길을 찾으니 산 뒤쪽으로 뚫려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컨디션이 좋지 않은 세 명의 멤버가 등산을 포기한다. 이제 나이가 칠십이 넘거나 가까우니 무리하면 사고가 생긴다. 네 명의 노장들은 정상을 기필코 오르자고 고집한다. 오르는 동안 길이 막힐 듯 하지만 갑자기 소롯길이 나타나 가까스로 정상에 도달한다. 드디어 장자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조만간 낙조가 수평선을 붉게 물들이면 만물이 붉어지리라.
이제는 장자도 여행의 절정인 낙조를 보며 술을 마시는 시간이 다가온다. 술집을 찾으니 왼편 언덕에 횟집이 보인다. 술이야 어느 곳에서 마시더라도 취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리라. 하지만 우리는 술을 얼마나 마시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어떻게 마시는 것에 의미를 둔다. 함께 술을 마시는 사람들의 수준은 필수적이다. 꼭 잘난 사람과 마시라는 것은 아니다. 술자리 참석자와 나누는 대화의 내용이 술맛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들과 술을 마시며 시와 노래를 즐기면 금상첨화일 수 있다.
우리는 만나면 옛날로 돌아간다. 연구과정에서 우리를 어렵게 만들었던 키스터 신부님 이야기가 단골 메뉴이다. 그리고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의 근황도 빠지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는 술자리에서 워밍업을 해주는 대화의 쏘시개로 언제나 우리를 즐겁게 해준다.
필자가 장자도에서 술자리를 가지려는 취지는 바닷물을 붉게 물들이는 낙조를 바라보며 술을 마시자는 것이다. 붉은 태양이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의 장엄한 모습은 소아적 욕망을 추구하는 인간의 개별성의 막을 허물어버릴 것이다. 우리가 이기적인 속물성으로 자기만의 성을 쌓고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친구들이나 이웃과 분열을 일으켰던 어리석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우리에게 생명을 허락하는 거대한 힘의 원천인 태양이 바다와 접합하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위대한 화가라 한들 태양과 바다가 만드는 낙조의 장엄한 경관을 창조할 수 있겠는가.
식당에 들어서니 우리 팀과 또 다른 팀밖에 없다. 창밖으로 장자도 앞바다가 펼쳐져 있다. 한 시간 정도 지나면 낙조가 시작될 것이다. 옛날에는 배를 타고 들어와야 볼 수 있는 장자도의 경치를 변산에서 자동차로 사십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으니 얼마나 편리한가. 필자는 섬의 앞바다를 바라보며 전번 여행에서 보았던 석양의 장관을 상상하며〈장자도 앞바다의 석양을 바라보며〉라는 시를 한편 짓는다.
석양을 어둠 속으로 떠나보내며
이별을 서러워하는 바다여
물속으로 떠나는 임을 붙잡고
일렁이는 파도에 얼굴을 붉히며
짤싹짤싹 슬픈 노래를 하라
사랑은 영원하다고 누가 말했는가!
우리의 사랑은 뜨거울수록
이별의 시간이 가까워지는 운명이라
저 뜨거운 가슴을 안으면
내 몸조차 불처럼 타올라 재가 되리라
어둠이 짙어지면
떠나야할 운명을 타고난 그대여
몸이 타올라 없어질지언정
온 힘을 다해 뜨겁게 사랑하다가
뜨거운 열정으로 임을 안고 잠들라
새벽이 올 때까지 임의 꿈을 꾸어라
식당 여주인이 맛있는 회를 내놓자 배가 고팠던 친구들은 소주를 따르고 허겁지겁 술을 들이킨다. 석양이 앞바다에 있는 섬 뒤편에서 머물러 있다며 삼십분 뒤에 낙조가 될 것이라고 계산한다. 술꾼들은 술에 눈이 팔려 있고 대화를 중인 친구들은 이야기에 열중한다. 얼큰해진 친구들은 잠깐 시간의 흐름에 무심해진다. 필자는 바다를 바라보는 친구에게 아직도 낙조가 안 온 거냐고 묻는다. 그는 창 쪽으로 가더니 바다를 내다보며 폭소를 터뜨린다. 아차, 내가 수평선이 붉은 것만 보고 낙조가 시작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섬 너머로 져버렸네. 하하, 서쪽 하늘의 붉은 빛은 낙조의 여명이었어!
우리는 낙조를 앞두고 술은 마셨지만 정작 낙조를 보지 못한 꼴이다. 그럼 장자도의 낙조는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지 뭐. 그래도 낙조 맞이 술은 실컷 마셨잖아. 낙조냐, 술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우리는 낙조대신 술을 선택했느니 술꾼으로서 임무는 다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