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특별한 물질, 그 정책의 현황평가와 과제(中)
조성기(아우르연구소 소장/경제학박사)
자유주의와 관리통제정책의 와해
시장과 정책의 변화는 자유주의가 시장을 장악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전 업종으로 번지고 있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화의 물결이다. 이와 함께 전통적인 정부의 통제정책도 함께 와해되고 있다. 시장이 뭐든 해결해 줄 것이라는 시각이 유럽과 북미지역을 위주로 먼저 탄생했고, 서구가 글로벌 시장을 지배해온 시공간의 역사 속에서 확장되어 갔다. 쉽게 보면 ‘돈 놓고 돈 먹기’의 세상이 주류산업도 접수하고 있다.
이는 바람직한 현상일까? 과거 정부 규제가 강하던 시절에는 규제를 완화해야 시장이 성장가능하다고 크게 외쳤다. 특히 우리나라는 전통주 부문까지도 제조규제가 강했었기 때문에 그 부문의 규제완화에 기여한 연구자가 관계부처 장관에 기용되는 일도 생겼다. 반드시 그 때문인지는 알기 어렵지만 규제완화와 산업진흥이 연관성이 크다는 성과를 본다면 그의 노력을 높게 샀을 수 있다.
잘 따져보면 규제에 정답은 없다. 주류관련 규제는 풀어야할 규제와 유지해야할 규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금의 상황은 모든 규제는 악이라는 상황으로 전개되는 분위기다. 규제정책 때문에 산업이 죽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규제가 산업을 죽인다는 일방적인 논리가 주류산업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까? 규제는 대기업에게 특권을 줄때 문제가 있지만 중소기업들의 보호막이 될 때는 시대적 필요성이 인정되기도 한다.
현대에 오면 어디서나 두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자유경쟁정책과 관리통제정책의 격론이다. 주류산업에서도 그 논쟁은 필수적이고 정답을 찾을 땐 상세한 정책분석이 필수적이다. 과연 그 논의를 주관하고 중론을 모을 정책당국자가 우리에게 있는지 궁금하다. 술과 관련된 부처는 어디 어디일까? 현 체제 하에서는 국세청, 농식품부, 식약처, 공정거래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동반성장위원회, 문체부, 규제개혁위원회,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노동부, 기획예산처, 환경부, 청와대 등이다. 너무 많다. 술이 우리사회에 주는 의미를 반증한다.
국세청은 주세와 주세법을 관장한다. 농식품부는 전통주의 진흥을, 식약처는 술의 위생관리를 담당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부당거래를, 국민권익위원회는 각 단계의 불만을 듣는다. 동반성장위원회는 대부분 중소기업인 주류업체들의 애로를, 문체부는 전통주의 전통유지에 관심을 갖는다. 규제개혁위원회는 주세법과 공정거래법상의 규제문제를, 보건복지부는 국민건강에 책임을 가진다. 여성부는 여성음주와 청소년음주문제를, 노동부는 직장인들의 음주문제에, 환경부는 공병관리에 주력한다. 기획예산처는 주세의 처리나 통상관련 문제, 각 부처 간의 권한배부문제들을, 청와대는 국민의 전반적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그 부처들이 한목소리를 내고 있을까?
그래서도 문제가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술정책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 정부의 국가정책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입장이 상이하다. 주류정책이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정부부처 내 상호 협의시스템을 갖추어야 하는 정책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과거에 국무총리실 산하에 가칭 주류위원회를 두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어쨌거나 목표가 정해지고 정책설계가 되어야 할 텐데 과연 어떤 상황일까?
최근의 대세는 다른 규제처럼 주류관련 규제는 완화하는 게 선이라는 주장이 대세다. 일반인들이 듣기에 규제완화가 필요하다는 정책기조는 동의를 구하기 쉽다. 워낙이 강력한 정부시스템하에서 살아왔고 소위 민주적 의사결정이나 시스템변화를 가져온 지 오래지 않았기 때문이다. 쌀로 술만드는 것도 정부가 막았고, 높은 주세로 전통주 사업자들도 고생을 많이 했다.
병마개까지 주세관리를 이유로 산업을 독과점적으로 운영을 해왔다. 거기서 발생하는 초과이윤은 과연 누가 가져갔을까? 그 회사들의 경영진에 정부고위관료 출신인사들이 자리를 잡기도 하고, 심지어 주류회사의 소유권까지 넘어갔던 경우도 있었다. 다 지난 일이지만 규제에도 의미가 있다는 주장에 국민적 동의를 구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규제 자체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싹텄기 때문에 규제는 반드시 퇴치해야할 악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규제완화와 자유경쟁정책은 정서상 국민적 동의를 구하기 쉽다. 게다가 전 세계적인 자유화 물결이 또 힘을 발휘했다. 김영삼 정부 이후는 소위 세계화의 시대였다. 해외부채를 갚지 못해 고생하던 시대 이후 글로벌 자본들이 국내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던 일도 잊기 어려운 일이었다. 글로벌 시장은 더하다. 글로벌 대자본은 해외국가들 뿐 아니라 국제기구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맥주시장은 한 업체가 전 세계시장의 30%가 넘는 시장점유율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글로벌 자본들은 전 세계의 시장을 쉽게 드나들어야 하므로 일단 교역자유화를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될 수밖에 없는 정황이다. 이런 저런 사유로 시장교역자유화의 흐름을 통해 각국 정부와 사회는 규제완화에 배타적이기 어렵게 된다.
주류정책을 획장하자면 정책목표를 명확히 선정하는 일이 무엇보다 우선적인 과업이 된다. 유전조작 다량생산 농산물을 가급적 덜 사용하게 하는 것, 제조품질을 유지하도록 필요불가결한 설비와 위생관리노하우를 갖추도록 하는 것, 유통단계에서 품질과 위생관리가 가능하도록 저장 및 물류체계를 갖추는 것, 제조 유통과정에서 탈세와 부당거래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과다한 음주나 부적절한 음주를 막는 것 등이 그것이다.
회수단계에서 공병을 튼튼하고 위생적으로 다시 모으는 것, 그 모든 단계에서 가급적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는 것, 제조와 도매와 소매단계에서 불협화음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 기업가정신이 충만한 사업자들이 시장에 진입해서 좋은 술을 만들고 유통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건강한 주류제조유통소비 생태계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 등 쉬우면서도 손이 많이 가는 정책적 현장을 유지 관리하는 일이 필수적 과제가 된다.
그 시장을 자유 경쟁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아름다울까? 아니면 일정한 규제항목을 설정하고 정부와 사회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그것이 술정책에서 깊이 고찰해야할 꺼리들이 될 것이다.
쿠오바디스(Quo Vadis), 주류정책
누구나 갈 길을 찾고 헤맬 때 그게 신이든 자신이든 절대자에게 갈구한다. 주류정책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특히 술에 친화적인 음주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 문화적 맥락은 정책의 현장에서도 그대로 반영된다. 예를 들어 보건복지부의 관료가 국민건강을 위해 정책을 펴지만 막상 본인이 친지와 만나는 술자리에서는 적당한 음주에서 그치기 어렵다. 정책적 배신을 하게 되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것이 문화와 관습의 거대한 힘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정책의 힘이 제대로 작동하기 쉽지 않다. 주류정책을 두고 깊이 사고하다가도 친척 친지와 만나는 사회적 자리에서 한잔 술에 침몰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이러한 문화와 관습의 힘이 일관성 있는 정책을 막는 장애가 될 수도 있다.
규제와 자유경쟁을 선택하는 기로에 크게 두 가지 흐름이 존립한다. 최근 국세당국이나 건강, 환경당국은 대체로 규제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정책의 기본과 사회적 안녕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당국이나 전통주 진흥당국은 규제를 풀자고 한다. 자유화가 산업을 살린다는 것이다.
사실 나머지 부처청들은 평시에는 특별한 정책적 입장을 개진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민원이 있거나 ‘정책의 창(policy window)’이 열리는 시점에만 수동적으로 불려가 입장표명을 하는 것이 일반적 정황으로 인식된다. 이는 다른 일이 바쁘다는 이유도 있지만 주류전문가들이 정책에 참여하고 있지 않아 단기에 치밀한 정책분석울 해내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사실 술은 필요할 때 마시는 개인적 물질이지 긴밀한 정책의 대상이라고 여기기 어려운 것이 우리나라의 문화적 상태가 아닌가 한다. 그 결과가 정책현장의 모습을 결정짓게 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의견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관련 부처에 주류정책 전문가가 육성되지 않고 있고 있으니 부처 간 이견이 발생할 때에도 적합한 결정으로 맺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과거 대통령이 전통주 육성에 나설 때 일시적으로 수요가 늘어 호황을 맞게 되는 경우도 있다. 대통령이 연 ‘정책의 창’때문인지 당시에 유행한 한류의 힘인지는 분리해서 분석하기는 쉽지 않지만 공전의 수요증대가 있었다. 분명한 것은 정책과 한국문화의 바람이 일시적으로 작용하고 멈춰버린 것이다.
바람은 바람이다. 자연의 섭리를 정책이 바뀌기는 어려운 일이다. 보다 근본적인 정책적 맥락검토가 있었다면 바람에 흔들리는 정책의 현장에서 업체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시 유행했던 전통주의 상승세에 투자를 감행한 정부자금이나 민간 재원은 얼마 지나지 않아 부실을 경험하게 된다. 주류정책의 전문성 미흡에 원인을 돌리고 뒤돌아 한숨을 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최근 전 지구적으로 저성장의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인구가 늘어나는 국가들도 있지만 우리나라는 인구감소의 예측이 무성한지 오래다. 가장 글로벌화가 깊숙이 이루어져 산업의 일거수일투족이 해외자본의 촉수에 감지되고 있다. 소비자들의 인식과 태도도 크게 요동치고 있다. 1인가구의 수가 늘고, 여성음주가 여전히 성장세다.
술집에서 보다 가정에서 마시는 음주량이 늘고 있고, 주종도 과거와는 달리 고정적이지 않다. 주류를 둘러싼 모든 개념이 복합화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이때 우리나라의 주류정책은 어떻게 자리매김을 해야 하는 것일까? 그에 정확치는 않아도 나름 동의라고 합의를 구할 수 있는 방책이 나와야 할 것이다. 우리의 주류정책은 어디로 가야 할까?
<다음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