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도 참!

기생도 참!

 

권 녕 하(시인, 문화평론가)

<한강문학>발행인 겸 편집주간

 

술!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황진이(黃眞伊)는 박연폭포와 함께 송도삼절(松都三絶)로 꼽히는 기생이다. 기방에서는 진랑(眞娘), 명월(明月)이었고 사대부들 사이에서는 시인으로 대접받았다. 조선시대 여성의 위상을 고려했을 때 특별히(?) 파격적 대우를 받은 셈이다. 요즘 말로 하면 학문권력자들의 세상, 조선에서 그들과 코드가 긴밀할 정도로 잘 맞았거나 그래서 큰 배경을 갖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기록에 따르면, 황진이는 중종 때 개성에서 진사(進士)의 서녀(庶女)로 태어났다. 어머니가 첩이었다는 말이다. 그 어머니에게서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떼었고 詩, 書, 음률(音律)에 고루 뛰어난 절세미인이었다고 한다. 그 에미에 그 딸이라! 15살 때 한 총각이 자기를 연모하다 상사병으로 죽자, 자신의 타고난 팔자(?)를 깨닫고, 스스로 기계(妓界)에 투신했다고 한다. 꼭 득도(得道)한 중처럼 기록해 놨다. 당대의 일류 명사들과 교유하며 탁월한 시재(詩才)와 미모로 그들을 매혹시켰으니 그런 대접을 받은 것 같다. 황진이의 유혹을 이겨낸 단 한 사람! 서경덕이 칭송받을 정도였으니~

 

冬至ㅅ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버혀내여

춘풍 니불아레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른님 오신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위 시는 <靑丘永言>에 기록되어있는 황진이의 절창이다. 청구영언은 어떤 책인가? 영조 때 김천택(金天澤)이 고려 말엽부터 전해지는 유명 인사들의 명시를 모아 1728년(영조 4)에 엮은 가집(歌集) 혹은 시집(詩集)이다. 요즘 용어로는 시조집(時調集)이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가집 중에서 편찬 연대가 가장 오래되었고 <해동가요(海東歌謠)>, <가곡원류(歌曲源流)>와 함께 3대 가집으로 꼽힌다. 그런데 그 당시에 책 만드는 일은, 최상류 계층에서 자금과 기술력이 동원되어야 가능했던, 거의 국책사업 급(級)이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소세양(蘇世讓)은 성종 17년부터 명종 17년(1487~1562)간 조선시대 문신이다. 자는 언겸(彦謙), 호는 양곡(陽谷), 퇴재(退齋), 시호는 문정(文靖)으로 본관은 진주이다. 의빈부도사(儀賓府都事) 자파(自坡)의 아들로 식년문과(式年文科,1509)에 을과(乙科)로 급제한 후 형조, 호조, 병조, 이조판서와 관찰사, 한성판윤, 대제학, 중추부사, 우찬성, 좌찬성 등을 역임하였다. 명나라 사신으로 갔을 때 시문으로 그들의 콧대를 꺾어 이름을 떨쳤고, 율시(律詩)와 송설체(松雪體)의 서체로 문명과 필명이 모두 높았다. 따라서 조선을 이끈 전형적인 지도자급 인물이 분명하다. 아울러~ 송도삼절 황진이 소문을 들어 익히 알고 있던 그는 “한 달 정도면 능히 헤어질 수 있고 추호도 미련을 갖지 않겠다”며, 조선사회에 공개적(?)으로 선언한다. 그런 다음 인편으로 황진이에게 편지를 보낸다. 편지에는 단 한 글자! 류(榴, 석류나무 류)가 적혀 있었다. 이 편지를 본 황진이도 똑같이 단 한 글자! 어(漁, 고기 잡을 어)자를 적어 답장을 써준다.

 

소세양이 써 보낸 한자 류(榴)의 뜻을 소리로 차용하면 ‘석류나무류(碩儒那無遊)’ 즉 “학식이 고매한 선비와 어찌 놀지 않겠는가?”라는 뜻인데, 그에 답한 황진이의 어(漁)는 ‘고기잡을어(高氣自不語’는 “높은 기생이 먼저 말을 할까?”가 된다. 이 후 소세양은 대외적으로 한 약속! ‘30일만 머물겠다’를 꺾고 한 동안 더 머물렀다고 한다. 선비사회에서 선망의 대상이었던 명기 황진이가 진정 사랑했던 사람! 바로 소세양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헤어진 뒤에도 인편을 통해서 오랫동안 서찰을 주고받는다. 그 당시 소세양에게 보낸 황진이의 시가 바로 야사하(夜思何) 또는 소요월야(蕭寥月夜)로 남아있다.

 

달 밝은 밤에 그대는 무슨 생각하세요

잠이 들면 그대는 무슨 꿈 꾸시나요

때로는 일기장에 내 얘기도 쓰시나요

나를 만나 행복했나요 나의 사랑을 믿나요

그대 생각 하다보면 모든 게 궁금해요

하루 중에서 내 생각 얼마나 많이 하나요

바쁠 때 생각해도 제 생각이 즐겁나요

참새처럼 떠들어도 여전히 정겨운가요

 

* 자료제공:익산역 홍보관 조인천 씨(익산문화재단 : 063)843-8811)

* 야사하(夜思何):황진이(黃眞伊)가 소세양(蘇世讓)을 그리워하며 읊픈 시조. 가수 이선희의 노래 ‘알고 싶어요’, 작사 양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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