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하의 취중진담
트럼프 당선자도 최순실 안주거리만 못하다
집 나갔던 며느리도 전어 굽는 냄새에 돌아온다는 전어 철이다. 구이로도 좋고, 무침이나 회로도 손색이 없는 전어는 서민들에게 있어 술안주로는 더할 나위 없는 생선이다.
정약전(丁若銓)은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 전어를 한자로 전어(箭魚)라고 썼고, 서유구(徐有榘)는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와 임원경제지에는 전어(錢魚)라고 기재했다. 이는 상인은 염장하여 서울에서 파는데 귀천(貴賤)이 모두 그 맛을 좋아해서 사는 사람이 돈을 생각 하지 않기 때문에 전어(錢魚)라고 했다고 전한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전어(箭魚)건 아님 전어(錢魚)건 무슨 상관이랴, 맛 좋으면 그만인 것을.
그런데 맛 좋은 전어 안주를 시켜 놓고, 술 한 잔을 제키고 나면 전어 보다 더 맛있는 술안주가 술상에 오른다. 직장 상사나 술자리에 끼지 않은 동료를 자근자근 씹어대는 뒷담화 안주 말이다. 이러면 안 된다고 하지만 주석에서 뜻 맞는(?) 사람끼리 뒷담화 즐기지 않는 주당이 있을까. 막상 뒷담화의 주인공이 나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권커니작커니 하는 것이 주당들의 인생이다.
술자리에서 유식한 척 하는 사람들은 ‘주석에선 삼불 즉, 정치·종교·돈 이야기는 금해야 한다’고 일갈하지만 그런 친구들은 한 술 더 떠 국내 정치뿐 아니라 국제 정치사까지 논하려 들지 않나 종교에 대해서도 청산유수다.
때론 입으로 들어가는 술안주보다 귀로 들어가는 술안주가 더 고습고 맛있을 때도 있다.
술자리에 와이당(わいだん,猥談)이라도 잘 하는 친구가 끼어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대개 이런 친구들은 술자리에서 대접을 받아 초청자가 많은 법. 제돈 내지 않고도 술을 입에 달고 살 수 있는 특기를 지닌 친구들이다.
그런데 이런 친구들마저 초토화 시킨 술안주가 술상에 올라왔다. 김영란 법이었다.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짧은 지식을 마치 법관인양 해석까지 붙여서 토로한다. 오늘 같은 술자리에 공무원이나 기자가 끼면 된다커니 안된다커니 해석이 제각각 이다. 친구끼리 술 한 잔 하는데도 그놈의 김영란법 때문에 술 맛 떨어진다.
그런데 김영란 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법) 이란 안주가 싫증나기도 전에 술상에 나온 안주가 송민순 회고록이었다. 이 안주 때문에 일시 야당들은 대응책 마련에 부산을 떨기도 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보수 세력을 자처하는 주당들은 기염을 토했다. “그러면 그렇지 좌파들은 문제가 많아, 아마 좌파 쪽에서 대권을 잡았으면 지금 쯤 대한민국을 통째로 받혔을 지도 모르지….”
이런 술안주가 반도 더 남았는데 상상도 못할 술안주가 올라왔다. 술안주로는 안주 감이 너무 커서 어디부터 칼을 대고 회를 쳐야할지 매운탕을 끊여야 할지 도무지 감이 가지 않는다.
이 안주감은 주당들 몇이서 지지고 볶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최순실인가 하는 안주는 급기야 술집을 뛰쳐나가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김정은이 움켜쥐고 있는 핵폭탄 보다 몇십배 위력이 센 것은 틀림없다.
대통령이 눈물을 보이며 대 국민사과를 해도 소용없다. 대한민국 사상 최대 인원이 모여 촟불집회를 열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물러나라고 소리치고 있다.
박 대통령을 지지하던 콘크리트 지지층마저 배신감에 휩싸여 등을 돌리고 있다. 이런 틈을 타서 야당들은 벌써 정권을 다잡은 모양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국민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
예년 같으면 단풍놀이라도 떠나고 서울광장에선 독거노인들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김치를 만드는 사진이 신문 1면을 장식할 때인데 촛불 군중들만이 꽉 차 있으니 이 노릇을 어찌 해야 할까.
박근혜 대통령이나 최순실이 지금과 같은 시국이 될 거라고 조금이라도 생각을 했을까. 자기들의 만행이 절대로 들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을까. 옛 말에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미국 대통령이 예상을 뒤엎고 트럼프가 되어 안주 감으로는 괜찮아 보이지만 최순실 안주만은 못한 것 같다. 이래저래 오늘은 술 한 잔 해야 겠다.
<본지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