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하의 취중진담
오늘은 무슨 이유로 술을 마실까
주당들에게 “왜 술을 마시느냐?”고 물으면 “술이 거기 있어 마신다”고 한다.
마치 영국의 유명한 등반가, 조지 말로리(George Mallory, 1924년 에베레스트에서 실종)가 “산이 거기 있기에 산에 간다”고 남긴 유명한 말처럼 한다.
등산을 좋아 하는 사람도 술을 마시는 사람도 제 각기 이유와 목적이 있어 산에 오르고 술을 마시겠지만 등산 이유가 술을 마시는 주당들의 이유를 넘지는 못할 것 같다.
걷기 위해 산에 간다지만 산 말고도 걸을 데는 부지기수로 많고, 건강을 위해 산에 오른다지만 건강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부지기수다. 산에 오르는 사람은 그저 산이 좋아서 오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성철 큰 스님이 1981년 1월 조계종 제6대 종정에 추대될 당시 내놓은 ‘아아,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알겠는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고 한 법어(法語)를 패러디해 보면 ‘술은 술이로다’라고나 할까.
특별히 종교적 이유로 술을 금하는 나라를 제외 하곤 술이 없는 나라는 없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술을 마심에 있어 이유와 핑계 또한 다양하다.
인터넷에 떠도는 ‘술 마시는 이유’를 건져보면 참으로 다양 한 이유를 들어 술을 마신다는데 놀람을 금치 못한다.
술 못 마시는 친구가 술이 맛있냐? 물어서 “술을 맛으로 마시냐. 기분과 분위기로 마시지”라고 사설을 늘어놓은 사람도 있다.
일반적으로 술을 마시는 이유로 꼽은 것은 좋은 일이 있을 때 술을 마신다. 나쁜 일이 있을 때 술을 마신다. 축하할 일이 있을 때 술을 마신다. 친해지기 위해 술을 마신다. 고백하기 위해 술을 마신다. 그리운 사람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신다. 속이 상할 때 술을 마신다. 누군가 보고플 때 술을 마신다. 마음이 울적할 때 술을 마신다. 비가 올 때면 술을 마신다. 피로에 지쳤을 때 술을 마신다. 단합을 위해 술을 마신다. 호기심에 술을 마신다. 외로우면 술을 마신다. 마음이 아플 때 술을 마신다. 화가 날 때 술을 마신다. 이별의 아픔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신다. 반가운 이를 만나면 술을 마신다. 스트레스 받으면 술을 마신다. 울고 웃기 위해 술을 마신다. 등등 꽤 많은 이유와 핑계를 대며 술을 마신다고 했다.
참으로 이유가 다양하다.
중앙리서치가 1999년 3월 서울거주 남자 직장인 300명을 대상으로 ‘남성 직장인들은 어떤 핑계로 술을 마실까.’라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친분도모(38%)▴중요한 고민 나누기(27%)▴스트레스 해소(19%) 등을 음주사유로 꼽았다. 조사결과를 보면 술 마시는 이유가운데 사교와 스트레스가 당연 으뜸을 차지하고 있으며, 사교와 고민나누기에 알맞은 술은 ‘소주’가 압도적이었으며, 스트레스 해소용으로는 ‘맥주’를 손님접대용으로는 ‘양주’, 무드조성에는 ‘와인’이 각각 꼽혔다.
그러니까 술 마시는 이유는 세월이 흘러도 큰 변화는 없는 모양이다.
누가 지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어느 주막에 ‘酒仙의 길’이란 글이 붙어 있다. 첫째, 술을 왜 마시는지 묻지 말라.둘째, 술값을 묻지 말라. 셋째, 술의 종류를 묻지 말라. 넷째, 술자리에서의 일을 묻지 말라. 다섯째, 생사여부를 묻지 말라.
어느 방송의 연예프로에서 밝힌 자료에 의하면 ‘술에 취한 대한민국 세대별 술 마시는 이유’에서 20대 여자를 만나러 마신다. 30대 상사에게 잘 보이려고 마신다. 40대 스트레스를 풀게 술밖에 없다. 50대 아내 때문에 마신다. 60대 술 마시는 게 이제 버릇이 돼 버렸다.
주당 여러분 동의하십니까.
“오늘은 무슨 이유로 술을 마실까 고민 마십시오”
그냥 술이 있어 마시면 그만인 것을 말이다. 松江 鄭 澈도 장진주사(將進酒辭)에서 ‘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꽃 꺾어 산(算) 놓고 무진무진 먹세그려/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위에 거적 덮어 줄이어 매여 가나/ 유소보장(流蘇寶張)에 만인이 울어 에나/ 어욱새 속새 떡갈나무 백양 숲에 가기 곧 가면/ 누른 해 힌 달 가는 비 굵은 눈 소소리바람 불 제/ 뉘 한 잔 먹자 할꼬/ 하물며 무덤 위에 잿납이 휘파람 불제야 뉘우친들 어이리.
<본지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