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적인 시대에 대해 저항의 무기로 술을 마신 김수영
박정근
(솔아문학예술관 관장, 황야문학 주간, 문학박사, 작가, 시인)

한국 현대시의 거목, 김수영(1921~1968) 시인에게 술은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었다. 그것은 억압적인 시대와 타협하지 않으려는 시인의 ‘무기’였다. 또한 자신의 비겁함을 찌르는 ‘칼’이기도 했다. 또한 술은 시인으로서 온몸으로 시를 밀고 나가게 하는 ‘연료’였다.
김수영은 술에 대해 생애 동안 흥미로운 일화들이 많다. 그는 문단에서 알아주는 애주가이자, 술에 취하면 터져 나오는 엄청난 ‘주사’로 유명했다. 그는 동료들에게 거침없이 쌍욕을 날렸다. 평소에는 내성적이고 꼼꼼한 성격이었지만, 술이 들어가면 당대 지식인들과 문인들의 위선을 참지 못했다. 명동의 술집에서 문인들과 술을 마시다가 취기가 오르면 사나운 사자가 되었다. 그래서 현실과 타협하는 동료들을 향해 “이 가짜들아!”, “너희들이 시인이냐!”라며 상을 엎고 거침없이 쌍욕을 퍼붓는 일이 다반사였다.
독재로 문인들의 상상력을 억누르던 권력에 대해 순응주의로 일관하는 동료나 친구들의 무력한 모습에 분노를 표현한 것이리라. 부정의 한 사회에 대해 정직하게 비판하고 작품에 일갈하지 못하는 문인들의 무력함이 그를 포함한 문인들의 비겁함에 대해 비위가 상했다.
그래서 술을 마시고 독설을 퍼붓는 것은 김수영의 가슴 아픈 술버릇이 되고 말았다. 권력이 휘두르는 검열의 칼을 미리 예상하고, 작품을 에둘러 표현하는 문학적 현상에 대해 참을 수 없는 자책의 술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
요즘 페미니스트들로부터 종종 공격을 받는 희대의 아이러니한 일화가 있다. 그것은 아내에게 우산을 던지고 구타한 사건이다. 약자인 여성인 아내를 구타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파문을 일으킬 수 있는 일화가 아닐 수 없다. 시인인 김수영이 권력자에게 직접 저항하지 못하고 약자에게 분풀이를 하는 꼴이다. 어쩌면 이런 모순된 행위는 시인이나 문인들의 무력함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밖에서 이런 소시민적 행위는 차마 권력에 저항하지 못하는 문인들이 가족이나 만만한 대상에게 풀려고 하는 소시민성이나 비겁함에 대한 의식의 발로라 볼 수 있다. 시인이 비 오는 날 술에 잔뜩 취해 우산을 들고 귀가하다가, 길거리에서 아내 김현경과 말다툼 끝에 우산을 냅다 던지며 구타한다. 이것은 씩씩거리며 걸어간 일화는 그의 소시민적인 인간미와 콤플렉스를 동시에 보여준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그의 술버릇은 단순한 행패가 아니라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찬 세상에 대해 맨정신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던 울분의 폭발이었다.
필자는 이해할 수 없는 무력한 아내에 김수영의 폭행에 대해 이렇게 노래한다.
쏟아지는 빗줄기에
시대의 울분을 끝내 씻어내지 못한 채
명동의 술집을 비틀거리며 빠져나온 밤
혁명을 부르짖던 입술에는
비겁한 술 냄새와 타협의 찌꺼기만 매달려 있고
손에 쥔 낡은 우산만이 위태로움의 징표이다
골목 어귀에서 맞닥뜨린 아내의 책망이
독재의 서슬 퍼런 검열처럼
시인의 위선과 옹졸함을 찌르고 들어올 때
푸른 집을 향해 뻗지 못한 부끄러운 주먹은
가장 만만한 일상의 안식처를 향해 뻗는다
허공을 가르는 종이우산
자신의 뼈아픈 무력함을 후려치듯
어둠을 찢는 둔탁한 파열음이여
아내를 향해 쏟아부은 비겁한 분노는
권력 앞에 한없이 작아진 비루한 절망이다
내동댕이쳐진 우산살이 빗속에서 부러지고
질척이는 진흙탕 위로 길게 늘어진 못난 그림자여
그대는 자유를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투사가 아니라
골목길 구석에서 아내에게 우산을 집어 던진
겁쟁이 수캐에 불과하구나
비명처럼 쏟아지는 밤비 속에서
부러진 우산을 버려둔 채 뒤돌아 걸어라
거대한 세상 앞에서는 침묵을 지키다가
가장 가까운 맨살에만 생채기를 내는
비겁한 슬픈 혁명가여

1960년대는 4·19 혁명의 희열이 5·16 군사정변으로 무참히 짓밟힌 시대였다. 박정희 정권의 서슬 퍼런 독재와 문학과 예술에 대한 가혹한 검열 속에서 지식인들은 숨을 죽여야 했다. 독재 정권하에서 펜을 든 시인들은 끊임없이 ‘자기 검열’에 시달렸다. 하지만 김수영에게 술은 이 내면의 검열관을 무장해제 시키는 역할을 했다. 문인들은 맨정신으로 공포와 이성 때문에 차마 뱉지 못할 시대의 금기어들을 술기운을 빌려 통쾌하게 토해낼 수 있었다.
그것은 절망과 자기혐오의 확인이었다. 밖으로는 독재 권력에 맞서 싸우자고 외치면서도, 정작 현실에서는 잡혀갈까 두려워 벌벌 떠는 자신의 무력함의 비극을 매일 체감하지 않을 수 없다. 술은 그런 모순된 시인의 정체성을 철저하게 해부하고 조롱하는 거울이 되었다. 시인은 거울을 부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면 다수의 파편들 속에서 다양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진실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고 우회적으로 설사를 거듭하고 있는 시인 자신이었다.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어찌 시인이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있겠는가.
김수영은 “시를 쓰는 것은 머리로 하는 것도,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온몸으로 토해낸 구토와 눈물, 땀방울이 곧 그의 시가 된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답답함과 술에 취해 느끼는 자기혐오는 그의 대표작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1965)에 너무나도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재현되어 있다. 이 시는 술에 취해 밤거리를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한 무력한 지식인의 독백이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 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독재정권이라는 현실 앞에서 시인은 절대 권력을 향해서는 무서워서 한마디도 비판할 수 없다. 대신 술집에서 50원짜리 갈비에 고기보다 기름이 많다고 주인을 향해 핏대를 세우고, 애꿎은 야경꾼에게 화를 낸다. 취기 속에서 발현된 이런 옹졸한 분노는 결국 깊은 자기혐오로 이어진다. 거대한 정치적 폭압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면서, 일상 속 만만한 타자인 술집 주인, 야경꾼에게만 뻗대는 자신의 비겁함을 날카롭게 고발하지 않을 수 없다.
김수영에게 술은 독재라는 숨 막히는 현실과 검열의 공포를 뚫고 나가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취기가 오르면 그는 명동 한복판에서 시대를 향해 욕설을 퍼붓는 광인이 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 숙취 속에서는 한없이 비겁한 자신을 조롱하는 철저한 성찰 자가 된다. 그 술과 눈물, 분노의 찌꺼기들이 모여 한국 현대시의 가장 뜨겁고 진실한 시편들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진 : 1. 김수영 시인
- 종로3가에 위치한 김수영 생가터 표지석
- ‘김수영문학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