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 녕 하 시인, 문학평론가 <한강문학> 발행인
춘도주도(春道酒道)
춘분 날, 공중파에서 ‘개화지도’라는 용어를 썼다. 개화지도(開花地圖)인지 개화지도(開花之道)인지 아니면 또 다른 뜻으로 썼는지 다 알 수는 없겠지만, 한 세대 전 용어(?)로 화신(花信)이 있었다. 봄꽃이 남녘에서부터 위도(緯度) 따라 북쪽으로 눈부시게 피어올라오는 ‘봄소식’을, 일기예보의 등고선처럼 구불구불 그려 일간지 등에서 ‘기사화’ 했던 것을 본 기억이 여직 새롭다. 우리나라 금수강산(錦繡江山)에 꽃이 먼저 피는 지역을 봄소식, 즐거운 소식, 보람찬 소식, 좋아하는 소식, 바람직한 뉴스로 보도했었다.
경기 남부 인근의 충남에 ‘음봉’이란 고장이 있다. 경기도 양수리 인근 한강수 북편에 ‘시우리’ 마을이 있다. 이 두 곳은 봄이 오면! 봄 꽃 사진을 찍으려고 늘 달려가던 곳인데, 공통점이 있다. 궁궁을을(弓弓乙乙)의 태극(太極) 형상의 지형에 바람風이 잠들 듯 고요하고, 햇볕 따뜻한 양지 녘에 사람 발길 닿지 않는 곳이었다. 토질은 발이 푹푹 빠지는 낙엽이 썩은 곳이거나 황토가 잘 배합된 수목이 자라기 좋은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이 두 곳은 위도 상 분명! 중부지방이지만 남쪽에서부터 봄꽃 소식이 시작되면 그 어느 곳보다 먼저 꽃이 피는 아늑한 곳이었다.
그 날도 전에 봐뒀던 칙칙한 산기슭을 향해 달려갔다. 과연 믿음을 배반하지 않고 오우! 진달래가 화려하게 피어있었다. 연한 식물성(?)의 밝은 핏빛이, 여린 소녀의 피부처럼, 퇴락했던 산과 계곡의 경사면에 동맥정맥이 울긋불긋 생명력을 부여하고 있었다. 그 사이사이로는 오시는 임, 길 밝히듯 노오란 등(燈)을 촘촘히 매단 개나리꽃이 어둠 그늘 속에서 출렁이고 있었다. 마을 어귀의 햇살 밝은 곳 혹은 담장 너머 그윽한 곳에는 매화 고목과 함께 꽃부터 불쑥 먼저 피어오른 목련이 해사했다. 마치 상복 입은 여인처럼 외면한 듯 곱게 여몄거나 처절하게 몸부림쳤거나 탱고 리듬에 꺾은 허리 휘돌리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대낮부터 북향화(北向花)로 처량한 척 했다.
강 마을에서~ 이빨 빠진 막사발에 한 잔술 벌컥 들이킨 날, 아슬아슬한 옷차림을 한 소녀가 연민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 날은 장날이었다. 5일장이 서면 시골 아낙네와 할머니들이 봄소식을 들고 나왔다. 이 골짜기 저 골짜기에서 찬바람을 이겨내고 살아낸 봄소식을 싸들고 장터로 나왔다. 한량들은 이때다 싶어 주막을 점령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나누기에 분주했다. 그 때 시끌벅적한 장터 한 모퉁이에서 소녀를 본 것 같았다. 그리움이 쌓인 시간이 달려가고 있었다. 가슴 속에서. 그 날의 그 감성은 장터거리의 완만하게 흐트러진 분위기도 한 몫 했지만, 마을마다 술 익는 계절, 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춘분(春分)이 오면, 된장 띄우고 고추장 담고 닭장에선 병아리 산란하고 텃밭 매며 한결 누그러진 봄바람에 마음 설레던 춘정(春情)의 일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봄기운 붉게 취한 주막집에서였다. “어서~ 이제, 일어나세요. 그리고… 다신 오지 마세요.”
봄이 오고 새 학기가 시작되면 어린 새 생명들이 책가방 메고 학교 갈 때, 연민을 불러일으키던 그 소녀의 무릎엔 아직도 거뭇한 땟국물이 남아있는데, 몌별(袂別)의 소매 끝에는 지도처럼 얼룩진 흔적이 물들어 있는데, 강마을 나루터를 찾아 온 이른 봄날, 이른 봄꽃이 먼저 피는 이곳에서 꽃불 밝히며 스쳐간 소녀가 아롱지고 있었다. 소녀가 부르던 노래 “따옥따옥 따옥 소리 처량한 소리”가 핏빛 진달래 노오란 등불에 출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