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하의 醉中眞談
과도 한 낮술 이대로 괜찮은가
언젠가부터 낮술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식사를 하면서 반주(飯酒)로 한두 잔 하는 것이 아니라 소주를 몇 병씩 마신다. 반주는 애피타이저 와인(Appetizer Wine)처럼 본 식사를 시작하기 전에 식욕을 돋우기 위해 가벼운 술로 한두 잔 하는 것이지 부어라 마셔라 하며 혀가 꼬일 정도로 마시는 것까지 반주로 보기엔 그렇다.
낮술이 언제부터 유행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부터가 아닐까 여겨진다. 유럽을 여행하다보면 그들은 샐러드 등의 전채요리와 함께 한 두 잔 가볍게 마시는 와인으로 아페리티프 와인(Aperitif Wine: 불어)을 즐긴다.
이런 식문화를 보고 배운 것이 반주가 아닐까. 그런데 술이란 것이 한두 잔 마시다 보면 술술 넘어가기 마련이서 한 잔이 두잔 되고 두 잔이 넉 잔 되는 것은 눈 깜짝할 사이다.
과거에도 이런 반주문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과거 양반들의 식사자리나 농민들이 농사를 지으며 농주를 마셔온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농주(막걸리)를 마시면 허기(虛飢)와 피로도 풀리고 어느 정도 힘도 솟아 새참 때는 농주를 마셨다. 하기야 요즘은 농부들도 농주 대신 맥주를 마신다지만….
보통 낮술에 취하면 ‘애미 애비도 몰라본다’는 속설이 있다.
이는 신체의 바이오리듬을 보면 낮 시간에 생체활동이 왕성하고 신진대사도 활발한 시간대인데, 술을 마시게 되면 알코올의 흡수도 빨라져서 혈중 알코올 수치가 더 빠르게 상승하게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직장인들에 있어서 낮술이 과하면 오후 업무능력이 현저히 떨어질 수 있다. 직책이 높은 분들은 잠시 오수(午睡)를 즐길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견디기가 힘들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보면 지나친 낮술은 신체적 경제적으로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렇지만 처음만나 서먹함을 없애는 데는 반주만 한 것도 없으니 낮술은 분명히 양날의 칼이며 야누스의 얼굴이라고나 해야 할까.
낮술 문제는 소시민들의 문제뿐만 아니라 고위직 공무원들에 있어서도 문제 였던 모양이다.
1999년 6월12일 동아일보에는 국무위원간담회 스케치 기사가 실렸는데 ‘낮술 못 먹게 해야 하나’제하의 기사에서 강기원(姜基遠)여성특위위원장은 ‘공직자 낮술 금지조항’을 넣자고 제안했다. 진형구(秦炯九)전 대검공안부장의 ‘취중발언’을 의식한 것. 이에 대해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가 “말썽부리는 사람은(낮술금지)조항을 만들어도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간단히 매듭지었다고 했다.
최근 보도된 뉴스에 의하면 충북도교육청은 낮술을 마시고 학교 교무실에서 동료 교사에게 폭언하는 등 물의를 빚은 교사에게 중징계 의결을 요구하기도 했고, 전주지법은 집행유예 기간에 또 낮술 마시고 운전한 운전자에게 ‘징역 10개월’의 징역에 처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민족대표 33인 유족회는 역사 강사 설민석 씨가 최근 강의와 저서 <무도한국사>에서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이 ‘룸살롱’인 태화관에서 낮술을 먹고, 손병희 선생이 태화관 마담 주옥경과 사귀었다”고 언급 한 것에 대해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고소했다. 모두가 낮술로 빚어진 소동이다.
영어로 낮술은 liquid lunch, 중국어로는 白天喝的酒(바이티엔 흐어 더 지우), 일어로는 ひるざけ(昼酒:히루 자케)라고 하는 것을 보아 낮술은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유행하는 것이 아닌 듯하다.
<낮술도 괜찮아요, 여긴 아일랜드니까요> 심은희 씨가 지난 해 7월 펴낸 책이다. 책에서는 아일랜드는 ‘유럽의 한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역사, 정치, 경제 그리고 여흥을 즐길 줄 아는 기질까지 닮았고, 무엇보다도 술을 좋아하는 것에 있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라라고 했다.
그렇다면 아일랜드에서도 점심 먹으면서 폭탄주까지 돌리는 주당들도 있을까. 폭탄주를 돌리던 소주잔을 돌리던 낮술 먹는 것은 그들의 자유다. 그렇지만 낮술이 타인에게 또는 직장동료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곤란하다. 또한 낮술이 밤술로 이어지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지나치게 낮술을 즐기다보면 알코올 의존증 환자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도 아니다.
<본지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