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살의 나이로 인천탁주 대표로 취임, IMF 외환위기 넘겨

인천탁주합동제조장 丁奎星 대표

  

40살의 나이로 인천탁주 대표로 취임, IMF 외환위기 넘겨

막걸리 업계 ‘협동조합 형태’ 운영은 과감한 도전에 걸림돌

막걸리 업계 최초로 아너 소사이어티 인천 50호에 가입한 정규성 대표

‘生 소성주’ 라벨에는 12간지(干支)의 동물들의 그림이 들어 있어 재미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기 지역과 연관된 야구단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서울은 두산 베어스, 넥센 히어로즈, 부산은 롯데 자이언츠, 인천은 SK 와이번스처럼 말이다.

주당들도 그렇다. 가급적이면 자기 지역에서 생산 하고 있는 술을 찾아 마신다. 소주도 그렇고, 막걸리도 그렇다. 애향심의 발로라고나 할까.

꼭 그래서만은 아니겠지만 3백만 인천시민들은 인천탁주(대표 丁奎星, 58세)가 빚어내는 ‘인천 生 소성주(邵城酒)’를 즐겨 마신다. 인천시민들의 자존심이 담겨 있기도 한 ‘인천 生 소성주’를 인천 시민들은 얼마나 즐겨 마실까?

정규성 인천탁주 대표는 “확실한 통계는 아니지만 인천시의 막걸리 시장에서 소성주가 차지하고 있는 시장점유율은 대략 85%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하루 약 7만병(생산 시설은 8만병) 정도가 출하되고 있으니까 많은 인천 시민들께서 우리 소성주를 즐겨 마시고 있어 항상 감사할 따름입니다.”

인천탁주를 찾은 날은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었는데도 막걸리 출하를 위해 대기하고 있는 차들이 꽉 차 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렇게 많은 막걸 리가 출하되고 나서 여태껏 반품으로 들어오는 막걸리는 없었다고 한다.

◇ ‘소성주’는 신라시대 인천의 옛 이름 소성 현에서 借用

인천탁주가 걸어온 길을 설명하고 있는 정규성 대표인천탁주는 1974년 5월24일 인천시내에 산재 해 있던 11개 막걸리 양조장이 ‘인천탁주합동제조장’을 설립 하면서 태동했다.

서울탁주가 1962년 2월 서울 시내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51개 제조장을 합쳐서 12개 합동 제조장(현재는 영등포·구로·강동·서부·도봉·성동·태릉 등 7개)으로 통합한 것처럼 인천탁주도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뭉치면 살고 헤어지면 죽는다’고 했던 철학이 막걸리 업계를 위해서 한 말일까. 그러다 보니 현재 인천탁주는 연매출 150억 원을 바라보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 같은 막걸리업계의 합동제조장 운영형태가 당장은 많은 이익이 될 수 있어도 때론 막걸리업계의 발전에 발목을 잡히는 꼴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 정규성 대표의 견해다.

주품명(酒品名)을 ‘소성주’로 지은 것에 대해 丁 대표는 “전국에는 그 지방 이름을 딴 막걸리들이 많지 않습니까. 우리 회사는 대화주조, 동영주조, 부림주조, 부천양조, 영화양조, 인천양조, 주안양조, 창영양조, 계림주조, 태안양조 등 11개 회사가 뭉쳐서 만든 회사이다 보니 어떤 이름으로 술 이름을 지을까 고민했었죠. 모두 자기 회사가 사용하던 이름이 들어가기를 바랐지만 그럴 수는 없지 않았겠어요, 그래서 인천을 신라시대부터 소성현(邵城縣)이라 불러 온데 착안하여 ‘소성주’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소성주는 ‘인천술’이란 뜻이 되는 겁니다.”

인천탁주 공장 전경정 대표는 지금의 자유공원 부근인 전동에서 태어난 인천 토박이다. 인천서 나고 자라 공부도 인천서 했기에 인천 사랑이 남다르다.

사회 첫발은 섬유산업이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태어나면서 막걸리와 인연을 맺은 덕인지 자꾸 막걸리에 마음이 쏠렸다.

왜냐하면 정 대표의 조부 정대현(丁大賢) 씨가 1930년대에 대화(大和)양조장을 운영해왔고, 그래서 정 대표의 부친이 물려받아 양조장을 운영해 왔기 때문에 태어나면서 막걸리와 더불어 성장했다고 한다.

대화양조장이 정확히 몇 년에 창업된 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지만 1938년 3월에 당시 한 신문이 인천주류품평회 기사를 실었는데 우등상은 약주부분에서 대화양조장(대표 정대현)과 송학, 금풍이 차지했다고 보도를 했다.

이로 미루어 보아 대화양조장은 90여년의 역사를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긴 역사 속에서 성장 한 정 대표에게 주량을 물으니 막걸리 한두 잔이라 했다. 믿기지 않았으나 사실이란다.

◇ 소성주의 톡 쏘는 탄산의 상쾌한 청량감은 한 번 더 도정 때문?

입고된 쌀을 한 번 더 도정한다. 때문에 막걸리 색깔이 하얗고 톡 쏘는 맛이 난다 ‘生 소성주’는 타 막걸리에 비해 유난히 희다. 마치 우유빛갈과 유사하다. 750ml 초록색 페트병에 담은 6%의 막걸리는 겉으로만 보아서 이렇다 할 차이점을 찾을 수가 없다.

그렇지만 소성주를 한 잔 마셔보고서야 특유의 감칠맛과 톡 쏘는 탄산의 상쾌한 청량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는 숙성시간과 담금 횟수를 늘렸기 때문이다.

소성주의 색깔이 유난히 희고 막걸리에 유질이 뜨지 않는 것한번에 3톤의 쌀을 고도밥으로 쪄내는 가마솥은 공장에 들어가서 그 비밀을 알 수 있었다. 막걸리를 빚기 위해 입고된 쌀을 한 번 더 도정(搗精)하고 있었다. 인천탁주는 미국산과 중국산 쌀을 사용한다.

정 대표는 “우리는 떳떳하게 수입산 쌀을 사용한다고 말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일부 사람들은 애국심 때문일까? “왜 국산 쌀을 쓰지 않고 수입산 쌀을 원료로 사용하느냐?”고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우리 같은 막걸리 업체가 대량으로 수입한 쌀을 사용하지 않으면 외교적인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수입된 쌀이 밥상에 올라갈 수밖에 없는데 막걸리 업체가 이를 대신해 주고 있는 것”이라 말한다. 상당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이에 대해 정 대표는 “국내산 쌀로 막걸리를 빚으면 원료가격이 올라가 저렴한 가격(출하가격 600원)으로 출하를 맞출 수 없기 때문에 부득불 수입산 쌀을 사용한다”고 했다. 그래야만 서민들이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다는 것이 정 대표의 생각이다.

그러다 보니 수입산 쌀은 도정과정이 매끄럽지 못해 쌀 표면에 불순물도 있고 해서 한 번 더 도정을 하여 사용한다. 이 때문에 색깔이 희게 되었고, 청량감을 느낄 만큼 술 맛이 상쾌해졌다는 것이다.

사실 일본의 사케를 제조하기 위해서는 몇 번의 도정을 거쳐 쌀알을 싸고 있는 호분층을 제거하고 배아층만을 사용해야 좋은 사케를 얻는 이치와 같은 원리일 것 같다.

◇ 아너 소사이어티 인천 50호에 가입한 정규성 대표

막걸리 업계로선 어려운 아너 소사이어티 인천 50호에 가입한 정규성 대표‘生 소성주’ 라벨은 독특하다. 12간지(干支)의 동물들의 그림이 들어 있다.

“생각해 보세요, 그냥 술만 마시면 재미없잖아요. 뭔가 소비자들이 술을 마시면서 즐길 거리를 제공하면 재미있겠다 싶어서생각해 낸 것이 12간지 동물을 그려 넣자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소성주를 대표하는 트렌드가 되었습니다.” 기발한 착상 같다.

“자기 띠가 들어 있는 술병을 만나면 좋아하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어떤 외지 분들은 컬렉션 한하루 7만병의 막걸리가 생산된다. 모든 공정이 자동화 내지는 기계화 되어있다.다고 12병을 사가지고 가시는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아이디어는 인천시에서도 호응을 얻어 인천시에서 개최되는 큰 대회 홍보를 ‘소성주’에 실리기도 한다. 벌써 5년이나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금년에는 소성주에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뛸 인천 선수들의 얼굴이 실으면서<‘인천 막걸리’ 소성주가 ‘인천 시민구단’ 인천유나이티드를 응원합니다!>라고 홍보한다.

막걸리를 마시면서 재미있는 대화의 소재가 될 수 있도록 한다는 자체가 신선하다.인천탁주는 이런 빅게임이 있을 때 한시적으로 라벨을 사용하다가 많은 성과(이익)를 올리면 해당 기관에 기부금도 내놓는다고 했다.

인천탁주는 이 같은 기부금 외에도 부평구청과 여성 더드림(The Dream)사업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연간 1억5천만 원 정도를 지원한다. 그 밖에 쌀 지원사업도 빼놓지 않고 한다. 그 밖에 매년 부평 풍물 대 축제에 기부도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막걸리 업계로선 하기 어려운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 인천 50호에 정 대표가 가입했다는 것이다.

정대표는 “인천이 아니었다면 인천탁주도 없었겠죠, 한국 막걸리의 가장 큰 특징을 꼽으라면 바로 그 지역, 로컬성입니다. 그래서인천탁주는 인천과 함께했던 오랜 세월의 그 고마움을 담아 사회에 다시 환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기부로 2014년 11월 사랑의 열매 대상(기부분야 금상)을 수상했고, 2015년 8월에는 제1회 행복나눔상을 수상(보건복지부)했다.

정 대표는 “기업 하는 사람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이윤이 발생하면 어려운 이웃을 위해 베풀어야 한다는 것을 선대로부터 들어왔다”면서 “앞으로도 이익이 발생하면 사회에 기부하는 생활을 실천 하겠습니다”고 했다. 소성주만큼이나 청량감이 있는 마음이다.

◇ 인천탁주 20년 이끌어 온 힘은 조용하고 끈끈한 리더십

 대표가 본격적으로 막걸리업계에 투신 한 것은 1989년 부친이 운영하던 대화주조였다.

정 대표는 3세 경영인으로 1989년 이 중 하나인 대화주조 대표로 취임하고 나서 1997년 그의 40살의 젊은 나이로 인천탁주 대표로 올라섰다. 11개 지역 탁주회사의 정총괄 대표가 된 것이다.

정 대표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인천탁주를 비롯한 막걸리 업계는 꾸준히 하향세였습니다. IMF 외환위기를 맞아 부도 직전까지 갔었지만 젊은 제가 인천탁주의 운명을 맡아 과감한 변화를 꾀하고 자동화 시설을 늘리는 등 지출을 최대한 줄였죠. 그렇지만 겨우 쌀값 주고 직원들 월급정도 밖에 주지 못해 주주들은 한 푼도 가져가지 못하는 어려움도 겪어야 했습니다.”고 어려웠던 당시를 회상했다.

정 대표는 과거 인천탁주 위기의 가장 큰 원인으로 변화에 대한 둔감함을 들었다. 인천탁주의 막걸리 브랜드인 소성주는 1990년 업계 최초로 쌀 막걸리를 출시했다. 하지만 정작 그간 판매는 밀 막걸리로 이뤄졌다. 정 대표는 “2004년 어느 날 부평역에서 우연히 노숙자들이 마시는 술을 보았다”며 “그들이 소성주가 아닌 서울 장수막걸리를 마시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 일 이후 소성주도 밀에서 쌀로 주원료를 바꿨다. 정 대표는 막걸리 업계 성장의 걸림돌로 우선 협동조합의 태생적 한계를 들었다. 그는 “탁주 업계는 오너체제가 아닌 각 사가 모인 협동조합이 많기 때문에 실패를 각오하고 새로운 것을 도전하기 힘든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진단했다. 관계당국이나 국민들이 막걸리를 보는 시각에 대해서도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일부에서는 막걸리를 주류 그 자체로 보지 않고 남는 쌀의 수요처 정도로 보는 시각이 있다”며 “이런 관점은 막걸리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막걸리의 다양화가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정 대표는 “저희같이 비교적 큰 업체는 소비자 다수의 입맛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며 “막걸리 산업이 전체적으로 크려면 소규모 양조장도 살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인천주조의 8대 대표로 취임한지 올해로 20년째다. 이렇다 할 잡음 없이 20여년 인천탁주를 이끌고 있는 것은 그의 끈끈하고 조용한 리더십 덕분이 아닐까.

◇ 제대로 된 박물관도 짓고 국내산 쌀 막걸리도 하반기 출시 계획

인천탁주 연구실. 지금 한창 올 가을에 출시할 새로운 막걸리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인천탁주는 2015년에 인천막걸리의 역사도 제대로 모르고 오랜 시간을 보내왔다며 모든 직원이 막걸리의 역사를 제대로 공부해야겠다는 취지아래 인천탁주 역사관을 만들었다. 정 대표는“아직은 자료들이 미비하여 일반인에게 공개하기는 부끄러운 수준이지만, 차근차근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해 많은 사람들이 다녀갈 수 있는 막걸리 박물관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한다. 인천탁주의 역사가 길어질수록 박물관의 가치는 더욱 높아갈 것 이기 때문이다.

또 농협과 e마트에 입고하는 조건이 국내산 쌀로 막걸리를 빚어야 하기 때문에 올 하반기에 출하를 목표로 연구 개발 중에 있다.

◇ 정규성 대표, ‘대한탁약주제조중앙회’ 23대 회장에 취임

정규성 대표는 지난 1월2일 대한탁약주제조중앙회 23대 회장에 취임했다.

대한탁약주제조중앙회는 창립 후 반세기가 넘는 동안 한국막걸리 산업의 발전과 주세보전의 협력 그리고 탁약주제조업자의 공동복리의 증진을 위해 애써온 단체다.

정규성 회장은 그동안 2014년부터 부회장을 맡았는데 지난 해 중앙회 총회에서 회장에 선임돼 이날 취임한 것이다.

정 회장은 중앙회장에 취임하면서 영국의 성직자 풀러가 말한 “오늘 계란 하나를 가지는 것보다 내일 암탉 한 마리를 가지는 편이 낫다”고 한 말을 인용하면서 “아직 미욱한 저를 회장의 자리에 올려주신 뜻은 좌고우면(左顧右眄) 하지 말고 오직 막걸리 업계의 발전을 위해 뛰라는 명령으로 생각하며 열심히 달려가겠다.”고 했다.

<글·사진 김원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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