實事求是


권녕하

 

 

實事求是

 

 

우리민족의 정신사와 전통은 재세이화(在世理化) 홍익인간(弘益人間) 사상을 기본 바탕에 깔고, 시대별로 도교, 불교, 유교가 통치이념으로 채택, 전개돼 왔다. 이 과정에서도 초창기 우리만의 특성을 살려 태동한 신라시대의 화랑정신, 즉 풍류도(風流道)는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정신사적 역할로 매우 뛰어날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면면히 작용하고 있다는 판단이 필자의 생각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을 통치하는 철학은, 당송(唐宋)에서 융성한 도교도 아니고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도 아니다. 송명원(宋明元)을 거쳐 본격 유입된 성리학(性理學) 즉, 조선조의 통치이념이었던 주자학(朱子學)도 이젠 아니다. 근대국가로의 첫걸음이 된 해방은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다가 외세로부터 선물처럼 받지 않았던가. 또 그 외세의 여파로 6.25 남침을 겪으며 분단이 고착된다. 남한은 자유민주주의라는 배냇저고리를 얻어 입었고 북한은 로스케의 외투를 등 뒤에 걸친 채 아직도 외세의 장단에 맞춰 어깨춤을 까딱거리는 중이다. 이런데도 스스로 나라 지킬 힘도 없고 민족통일도 주변국들 눈치나 봐야하는 못난이가 그저 한다는 짓이라고는 자유민준지 무상복진지 평등인지 연금인지 나눠먹느라 꽤 똑똑한 척(?) 용감하게(?) 사는 중이다. 강대국들은 대한민국이 꼭 몽유병환자처럼 정글에서 휘적대고 있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이 시각(視覺)은 전 세계 언론의 논조에서 잘 드러난다. 국제무대는 바로 정글이며 수렵자유구역이다. 수렵자유구역에서는 먹이사슬의 최 상위권에 있는 사자나 호랑이도 새끼 때 어리거나 병들고 유약하면 살아남지 못한다. “잡아먹혀 죽어서 다른 짐승들에게 삶의 에너지가 된다”는 것이 진리이다. 정글에는 민족도 경제도 외교도 없고 핵우산도 물론 없다.

 

실사구시(實事求是)는 한 세대 전, 국가의 미래를 과연 어떠한 철학으로 이끌어나가야 할지 고민했던 선각자들의 정신편력 중 하나이다. 양명학(陽明學)도 강화학파(江華學派)도 쇄국(鎖國)도 척사(斥邪)도 애국애족을 위한 한 방편이었다. 이 당시 조선국은 외교권을 청국에 위탁(?)하고 있었고 국방 또한 별로 다르지 않았다. 이 어이없는 상황을 영민하게 파악하고 있던 일제는 개항 과정을 통해 청국으로부터 조선의 외교권을 장악, 할양받아 본격적인 경제침탈을 시작한다. 식민지배는 19세기 말부터 이미 시작됐다고 봐야한다. 온갖 조약과 명칭을 들이대며, 식민통치 기간을 36년? 37년? 따지는데, 1년이 줄면 덜 속상하고 1년이 늘면 더 속상할까.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끌려나와 나라를 바쳐 항복한 사실을 정축하성(丁丑下城)이라고 고상하게(?) 기록한 관리들이, 충신으로 추앙받는 대단하고 위대한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이렇게! 최소한! 한 번 이상! 홀랑 망했었는데도 “끊임없이 외침을 받고도 살아남은 위대한 민족성” 운운하는 학설을 정설로 인정하고 취급하는 몰 체면에 몰상식이 만연된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이렇게 술맛 떨어질 정도로 대단하고 위대한 나라에서~ 술맛 나는 스토리 하나 발견했다. 신라시대 화랑이 명산을 찾아 유람할 때 밥은 먹어가며 도를 닦았을 터인데 술 마셨다는 기록은 없다. 도교의 음양오행, 방중술, 신선술, 풍수에도 술에 관한 기록은 없다. 대승이니 화엄이니 천태니 하는 기록에도 물론 없다. 기(氣)냐 리(理)냐 하는 주자학에서도 기록은 없지만 술 냄새가 풍긴다. 단원의 그림에서도 난다. 한시(漢詩)에서도 보인다. 요즘말로 술이 서민(?)층에서도 어느 정도는 수작(酬酌) 부렸나보다. 그래서~ 실사구시 사상가는 술 마실 때 기준이 어떠했을까? 반가운 마음에 요즘 스타일로 스토리를 재구성해보자.

 

사람 만났을 때, 비싼 커피집 보다 막걸리 집이 더 좋다! 카페에 갈 수 밖에 없었을 때에도 남들 다 음료 시킬 때 차라리 맥주 한 병이 더 좋다! 문화의 거리 인사동에서도 전통찻집보다는 낙원동 모듬전 집을 훨씬 더 좋아한다! 이런 생각 하는 사람을 이상한 부류 보듯이 보는 사람은 술 맛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술 안 먹어도 사는 사람들은 절대! 이 분위기와 마음의 흐름을 알 리가 없다. 실사구시는 이렇게 생활 속에 녹아날 때 그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하지 않겠는가. 화랑도 도사도 스님도 학자도 속 터지는 날이 있었을 것 아니겠는가? 그런 날이 오면! 실사구시로 꼭 술 한 잔 합시다!.

 

* 實事求是는 조선 후기 실학자 茶山 丁若鏞을 중심으로 전개된 학문이다. 與野가 派黨으로 갈려 연일 싸우지 않는 날이 없는 현실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강산도 바뀌건만 왜 인간의 못된 짓은 바뀔 줄 모르고?” 하며 애태우던 200년 전 선각자의 모습이 술잔에 떠오르는 오늘입니다.

* 人臣無外交:<禮記> 남의 신하된 자는 독립적으로 외교하지 않는다. 즉 두 군주를 섬기지 않는다는 뜻.

 

권녕하 : 시인, 문화평론가 <한강문학>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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