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하의 취중진담
정상들이 건배주로 사용한다면…
국가 정상 간 만찬 시 빠지지 않는 것이 술이다. 정상들은 술을 잘 마시든 못 마시든 간에 술잔을 들어 건배를 한다. 이런 자리에 참석해보지 못해 정확한 내용은 모르겠으나 대개는 입만 대고 홀짝 마시지는 않는 모양이다.
그런데 1972년 2월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과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 간 건배시 닉슨 대통령은 보좌관들이 마오타이(茅台)주는 독한 술이니까 입에 갖다 대는 시늉만 하라는 보좌관의 귀띔을 무시한 채 단숨에 들이켰다.
알코올 도수 40도를 넘는 술을 마실 때 닉슨 대통령은 잠시 얼굴이 일그러졌으나 그 효과는 상상을 초월했다. 닉슨이 알았던 몰랐던 중국인들은 손님에게 술을 권했을 때 잘 마시면 오랜 친구처럼 대한다는 중국의 음주문화에 딱 맞았던 것이다.
이어서 화기애애하게 대화가 이어진 만찬 덕분에 중국 건국 이후 27년간 서방에 적대적인 죽의 장막이 걷혔다.
죽의 장막이 걷힘 못지않게 중국의 명주 마오타이(茅台)는 전 세계 애주가들의 관심이 대상이 되었다.
우리나라에 양주가 귀하던 시절 미군 부대 등에서 흘러나온 조니워커(Johnnie Walker) 한 병이면 폼을 잡던 시절, 1979년 10월 26일 이른바 10·26 사태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마시던 술이 시바스 리갈(Chivas Regal) 이란 것이 알려지면서 주당들은 시바스 리갈 구하기에 동분서주하기도 했었다.
정상들의 만찬주 못지않게 재벌들의 만찬주도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술이 되어 버린다. 대표적인 것이 이건희 회장이 건강할 때 그룹 만찬시 또는 재벌들간 만찬시 어떤 술이 테이블에 오르느냐는 것이 관심사가 된 적도 많았다.
와인을 즐기는 이 회장이 와인과 곁들여 전통주를 내 놓을 때가 많았는데 한 때 ‘백련 맑은 술’이 등장하기도 했고, ‘자희향’이 나와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와인 업계에서는 삼성만찬 때 어떤 와인이 등장하느냐에 촉각을 곤두세우기도 했다니 국가 정상이나 경제계의 만찬주가 세인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술은 소시민들에 있어 일상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묘약(妙藥)이지만 때론 술자리를 통해서 일이 깨어지기도 하고 성사되기도 한다.
전 세계적으로 관심이 집중되었던 제1차 남북정상회담(2000년 6월15일) 때도 건배주가 올라왔는데 이 때 올라온 술이 들쭉술이었다고 뉴스는 전했다. 백두산에서 나는 들쭉이라는 열매로 만들었다는 술이다. 이후 들쭉술은 애주가들이 마셔보고 싶은 술이 되었다.
이 보다 앞서 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1998년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정일 위원장에게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막걸리를 좋아했다고 하자 그 막걸 리가 먹고 싶다하여 2000년 정몽헌 회장이 평양을 방문할 때 가져갔다고 해서 ‘배다리’ 막걸리는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지난 7월 27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요 기업인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호프미팅을 가졌었다. 이날 사용한 호프는 한국 최초의 수제 맥주 기업인 세븐브로이의 ‘강서 마일드 에일’이었다.
대통령을 비롯한 재계 총수들이 노타이 스타일로 맥주잔을 들고 위하여를 외치는 모습은 생맥주만큼이나 청량감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 후 ‘강서 마일드 에일’이 얼마나 많이 팔렸는지는 알 수 없으나 대통령을 비롯해서 재벌 총수들이 마신 술이라는데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전통주 업계는 이번 호프미팅을 보면서 마냥 부러웠을 것 같다. 호프가 아닌 막걸리나 전통주였다면 활성화에 기여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해서다.
이낙연 국무총리의 막걸리 사랑은 유별나다. 이 총리가 지방 순시나 행사시 그 지방 전통주나 막걸리를 마시는 장면이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면 시들어 가는 막걸리 업계에 활력소가 되지 않을까.
막걸리 업계도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업계 스스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감나무 밑에 누워서 연시 입 안에 떨어지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본지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