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녕하 칼럼
자유민주평화 좋아하세요?
“굴러 들어온 밤”을 보면 참 기분 좋다. 숲 그늘 아래 자리만 잘 잡고 앉아 있으면, 툭- 떨어지는 소리가 시선을 끌면서 밤톨이 데굴데굴 굴러들어온다. 이 때 기분은 신기하고, 기쁘고, 뿌듯해진다. 손에 든 밤 한 톨이 공짜로 생겼다는 시각적이고 물질적인 만족감 보다는, 의외의 순간 기대하지 못했던 행운이 그것도 스스로 나를 찾아 굴러들어왔다는 정신적 쾌감이 증폭된다. 그리고 이 현실은 바로 사실이며 확실한 진실이기에 만족감은 한층 커다란 충만감으로 출렁인다.
추석은 본래 풍성한 자연의 혜택을 누리게 된 인간이 감사한 마음으로 하늘에 제례를 올리고, 차례를 통해 조상의 은덕을 기리는 날이다. 연휴는 전통 민속을 지키면서 즐기자고 만든 제도인데 올 해 추석명절은 무려 장장 10여 일이나 계속되는 연휴가 시작된다. 살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다 생긴다.
사랑방을 세놓게 됐다. 체면과 주위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이다. 여성은 삼종지도에 얽혀 살던 때인데 집안에 남자를 들여놓은 것이다. 근대화 바람이 불어와 전세인지 월세인지 달세인지 깔세인지 계약서나 용어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공공연하게 공식적으로 외간남자가 집안에 들어왔다는 현실상황이 중요할 뿐이다. 그것도 딸 아이 하나 달랑 키우며 수절하는 과부가 사는 집이다.
사랑방은 본래 가옥구조에서 안채와 구별되는 남편의 공간이다. 그래서 이 공간은 여성에겐 배우자의 공간이며 보호자 관리자 혹은 지배자의 공간이 된다. 이렇게 민감한 공간에 외간남자가 입주했으니, 아무리 소설이고 영화라지만 그 역할이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주요한 著)
설정된 상황과 무대는 요즘 같으면 아무 문제도 없는 상황이 맞다. 불륜은커녕, 법률도 바뀐 21세기에, ‘몰래한 사랑’으로 갈지, 말지가 궁금하지, 구태의연하게 가정을 꾸린다는 설정은 관심도 없다. 그 사랑 혹은 로맨스도 계약서에 따른 전세인지 월세인지 달세인지가 궁금할 뿐이다.
“굴러 들어온 밤”은 꿩 먹고 알 먹고다. 집세도 벌어가면서 엄혹한 주위의 따가운 시선에서도 해방되는 자유를 누릴 수 있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자유도 좋고 해방도 좋지만, 길고 긴 연휴기간을 뭘 하며 보내야할지 벌써부터 고민하는 술꾼들이 늘어난다. 참 딱하다. 가져다 줘도 놀려줘도 못 먹겠다면 할 수 없다. 그래서 “자유민주평화 좋아하세요?” 하고 한 번쯤은 꼭 물어봐야한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정말 궁금해서 묻는 이 말에, 딱 부러지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누릴 자격이 정말! 있는지. “아자씨! 우리 엄마 좋아하우?”
수많은 사람이 잊혀지겠죠.
아자씨! 우리 엄마를 좋아하우?
권녕하 : 시인, 문화평론가 <한강문학>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