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우의 에세이
크래프트 정신이란 무엇인가?
전북대 개교 70주년 기념주
내가 전북대에 입학한 것은 1992년이었다. 그곳에서 학교를 다니며 술과 시와 사랑을 알게 되었다.
어느덧 졸업한지 20여년을 헤아리는 이제는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종종 전북대에 찾아가게 되는데 20대의 젊은이들을 보며 나도 저런 빛나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무엇보다 전북대에는 많은 건물이 들어섰다. 또한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보다 외국인들이 무척 많아졌다.
전북대에서는 몇 년 전부터 김제의 새만금에 여러 작물을 농사지어왔다. 약 50ha(1ha는 3,000평)의 농지를 경작하는 전북대는 새만금에 가장 많은 농사를 짓고 있다.
간척지 땅이라 소금기가 많고 늘 바람이 부는 새만금의 농지에서 그나마 보리의 작황이 좋은 편이었다고 한다.
새만금의 보리로 전북대와 함께 술을 만들기로 했다. 2017년인 올해는 전북대 개교 70주년이다. 그러니까 전북대 개교 70주년 기념주를 만드는 것이다.
새만금 보리
새만금의 보리를 가지러 갔다. 김제의 넓은 들은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끝이 없었다. 바람은 보드라웠으며, 하늘은 맑았다.
예상한대로 보리의 품질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품종도 맥주보리와 6줄의 겉보리가 섞여 있었다. 맥주보리는 2줄로 자라는데 알갱이가 6줄의 겉보리보다 훨씬 실하게 굵다.
이걸 가져다가 술을 만들어보았다. 술을 만들기 전에 보리의 까락과 검불을 불어내는 일부터 해야 했다. 많은 양이 아니어서 선별이나 정선의 과정이 모두 생략된 보리다. 선별이나 정선이란 탈곡된 보리에 섞여 있는 이물질들을 걸러내고 보리알갱이의 크기를 일정한 놈으로 골라내는 일이다. 그래야 안정되고 균일한 품질의 술을 만들 수 있다.
검불 등은 골라낼 수 있었으나 보리의 알갱이 크기는 일정한 놈으로 골라낼 수 없다. 선별기가 있어야 하는데 매우 고가의 제품이기 때문이다. 또한 소량의 보리로는 선별기를 가지고 있는 곡물처리장에서 받아주지 않는다.
깨끗하게 정선된 보리를 건조기에 넣고 돌린다. 보통 곡물은 수분 함량이 13%가 되는데 이를 더 말려서 약 4%정도로 건조시킨다. 건조가 끝난 보리는 다시 볶음 솥에서 약 100도의 온도에서 처리한다. 볶음 작업을 하지 않으면 술에서 풋내가 난다. 특히나 술에서 나는 금속취(메탈취)는 볶음 작업을 하지 않으면 난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분쇄해서 당화와 여과공정을 진행하는데 관이 막힌다. 보리 알갱이가 작다보니 작게 분쇄되어 관이 얇아지는 곳에서 막히는 것이다. 압을 가하거나 감하고 꼬챙이를 밀어 넣어 겨우 뚫어내며 작업을 진행했다.
늘 새로운 원료를 사용한다는 것은 어떤 변수가 생기는지 예상 못한다. 그에 비해 수입산 몰트를 사용하여 맥주를 만드는 일은 아주 안정적이며 모든 일들이 예측 가능하다.
획일화를 경계하다
우리나라의 수제맥주 붐은 다양성과 다름으로 출발했다. 애초 라거위주의 맥주에서 출발한 우리나라맥주를 몇몇 언론에서 맛없는 맥주라고 비판하며 수제맥주의 존재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수입맥주에 열광하고 있었으며, 외국여행을 통해 다양한 맥주를 경험해본터라 국산맥주의 밍밍한 맛이 질리던 때이기도 했다.
그 틈을 타고 수입맥주와 수제맥주 시장이 급속하게 크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서울의 이태원 등을 중심으로 수제맥주가 빠르게 확산되었다. 낮부터 수제맥주를 마셨던데 외국인들도 상당한 수가 동참했다.
그리고 지금은 대도시는 물론 지방의 중규모 도시까지 수제맥주시장이 넓어지고 있다.
하지만 다양성과 다름으로 출발한 수제맥주는 최근 몇몇의 맥주가 자리를 잡아감에 따라 혹은 미국 크래프트 맥주의 영향을 받아서 오히려 획일화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많은 홉을 때려 넣으며 호피한 맥주가 대세를 이루기도 하는데 양조장들의 양조기술이 향상됨에 따라 주질이 평준화되고 있는 추세다.
보다 근저에는 농업이 전혀 없이 전량 수입해 오는 맥아와 홉으로 맥주를 만들다보니 외국의 피상적인 맥주스타일만을 좇을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의 수제맥주 붐은 보리를 맥아로 만드는 몰팅(킬링포함-보리를 볶는 기술)기술과 홉재배의 원천기술을 가진 미국과 유럽의 손아귀에 있는 찻잔의 태풍일 수밖에.
이미 맥주 선진국들은 그들 각자의 토양과 자연에서 최적화된 보리와 홉을 농사지어 또 전과는 다른 그들만의 다양한 맥주를 발전시켜 새로운 스타일의 맥주를 끊임없이 창출해 왔다.
크래프트 정신이란 무엇인가?
새로운 문화를 갈망하며 새로운 맥주문화를 만드는 크래프트 정신이란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크래프트 정신이란 다양성과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미 굳어 있는 맥주스타일에 기대어 새로운 것을 평가하고 비교하여 맛이 있다 없다 등의 단선적인 평가는 한국에서 수제맥주 붐이 일 때의 초기 크래프트 정신과 어긋난다.
또한 우리나라 농업과 문화와의 결합이라고 본다. 맥주는 비록 외국에서 들어온 산물이지만 그 지역의 풍토 속에서 발전해 왔다. 유럽 각지의 맥주가 그렇게 성장했으며, 중국의 칭다오와 일본의 지비루도 지역성을 대변하거나 반영하며 세계적인 맥주로 성장해가고 있다.
또한 지역의 농업과 문화가 있어 다양한 이야기가 맥주 맛에 함께 실릴 수 있다.
지역의 물과 공기 그리고 보리로 맥주를 만드는 일은 그래서 크래프트 정신이 충만하며, 고유성을 가지고 있어 세계에 하나뿐인 세계적인 맥주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