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록담의 복원 전통주스토리텔링
43번째 이야기 溫故知新
우리나라 전통의 맥주 추모주(秋麰酒)/ ‘가을보리술’
‘추모주(秋麰酒)’ 또는 ‘가을보리술’은 가을보리쌀로 빚는, 우리나라 전통의 맥주(麥酒)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발효법과 부재료의 첨가 유무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 ‘추모주(秋麰酒)’가 외면당하고 쌀 중심의 미주(米酒)로 술빚기가 발달 해 온 까닭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동안 못 먹고 못 입고 가난에 시달려 온데 대한 보상심리와 소위 멥쌀과 찹쌀 등 미식(美食)으로서 흰밥인 쌀밥문화를 추구해 온 데 그 이유가 있다.
하기야 평생 보리밥도 못 먹고 살아 온 사람들은 보리밥도 감지덕지할 일이지만, 보리밥을 주식으로 먹어 온 사람들은 형편이 점차 나아지게 되면, 다시는 보리밥을 먹고 싶지 않다고 하거나 소위 ‘별식’으로서 궁핍했던 시절의 추억이 깃든 음식으로 여기곤 한다.
보리밥은 무엇보다 소화가 잘 안되거니와 밥을 짓기까지 공이 많이 들어간다. 또 먹을 때의 식감이 떨어져 맛이 없게 느껴진다.
더러 보리밥에 대한 추억을 떠올려 일부러 보리밥집을 찾는 미식가(?)들도 있긴 하지만, 아무리 보리밥을 잘 지었다 하더라도 쌀밥보다 못한 것은 사실이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보리술도 우리들 관심에서 멀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이러한 보리술이 독일과 영국 등 선진국의 대중주로, 세계 주류시장의 중심에 서 있어, 우리도 그들의 방식을 추구하고 있고, 그것도 모자라서 직접 수입해서 마시거나 맛을 따라잡기에 분주하다.
‘추모주(秋麰酒)’ 또는 ‘가을보리술’은 이미 고려시대 때부터 서민들 사이에서 빚어져 애용되어왔고, 부유층에서는 증류식 소주를 즐겼음을 알 수 있다. 진도지방의 ‘홍주’나 전주지방의 ‘이강주’, 제주지방의 ‘고소리술’이 보리쌀이나 보리누룩인 맥국(麥麴)으로 빚은 술이란 사실은 잘 모르는 가운데서도 이들 술이 조선시대에는 유명 특산주로서 이름을 떨쳤고, 지금도 한국 명주(名酒)의 반열에 올라 있음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런데 왜 보리술이 최근에는 사랑받지 못하고 자취를 감추고 말았을까. 생산자도 소비자도 외면했기에 ‘추모주(秋麰酒)’ 또는 ‘가을보리술’과 같은 보리술이 이 땅에서 사라져 버렸을까?
나름대로 그 이유를 찾아보니, 우선은 보리쌀로 만든 술은 그 제조과정이 여느 곡물로 빚는 술에 비해 매우 힘들고 까다롭다는 데 있다.
이를테면 보리쌀은 밥으로 먹거나 술을 빚기 위해 고두밥을 만들기까지 기타 쌀에 비해 가공단계를 많이 거쳐야 하기 때문에 비경제적이라는 사실이다. 또한 일단 술을 빚어놓고 보더라도 다른 곡물로 빚은 술에 비해 알코올도수가 낮아, 비경제적이라는 것이 보리술이 안고 있는 문제점이다.
특히 최근까지 소비자 또는 사람들의 음주경향으로, 근대화 이후 희석식 소주의 등장과 함께 비교적 독한 술에 입맛이 길들여져 왔다는 사실도 보리술이 사라진 이유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보리술은 알코올도수가 낮아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고 보리술이 사라져야 할 이유는 없다. 보리술이 갖고 있는 장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추모주(秋麰酒)’ 또는 ‘가을보리술’이 일반 전통주와는 달리 그 제조과정이 매우 까다롭다는 것은 <林園十六志>의 주방문을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우선 ‘추모(秋麰)’라 함은 가을보리를 가리키는데, 알이 잘 여물고 충실한 보리를 가리킨다. 이 보리를 잘 도정하는데 술을 빚을 때는 일반 식사용 보리쌀보다 도정을 더 많이 하는 것이 좋다. 보리쌀이 준비되면 깨끗하게 잘 씻은 뒤, 물에 오랫동안 불리는데 보리쌀이 부패가 일어날 정도라야 하므로, 대략 10일(봄, 여름철 5~7일)간으로, 추운 계절에는 따뜻하게 해줄 필요가 있다.
보리쌀을 담가 둔 그릇의 수면 위에 골마지와 함께 거품이 앉아 두텁게 된 것을 볼 수 있는데, 늦봄이나 여름철에는 한두 번 제거시켜주고 다른 계절에는 그대로 방치한다. 시간이 되어 보리쌀이 충분히 부식(부패)되었으면, 새 물에 다시 한 번 깨끗하게 씻어 건져서 시루에 안치고 쪄서 보리밥을 짓는데, 쌀을 씻었을 때보다 훨씬 심한 냄새(향분 :香紛)가 나더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찐 보리밥에 누룩가루를 합하고 절구에 담아 힘껏 찧는데, 물을 넣지 않는다. 찐 보리밥이 물러져서 껌같이 되다가 부드러워지면 단맛이 나기 시작하는데, 이때 술독에 퍼 담고 발효시키면 된다. 절구에 넣고 찧는 작업으로 거친 원료의 당화를 촉진시켜, 발효를 도와주는 원리가 깃들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잘 빚은 ‘추모주(秋麰酒)’ 또는 ‘가을보리술’은 주독이 낮아 건강에 좋다. ‘보리술’은 구수한 맛과 향기가 있어, 우리나라 사람들의 취향에 맞는 술이다. ‘추모주(秋麰酒)’ 또는 ‘가을보리술’이 어느 정도 일반화되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단서가 있는데, 주로 사대부들에 의해 저술된 <群學會騰>을 비롯하여 <農政會要>와 <林園十六志>, <增補山林經濟> 등에 ‘추모주법(秋麰酒法)’, ‘추모주방(秋麰酒方)’을 볼 수 있고, 부인네들에 의해 저술된 것으로 생각되는 <술방>과 <諺書酒饌方>에도 ‘가을보리술’과 ‘츄모쥬’가 등장한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이들 문헌에서 한결같이 단양주법의 ‘추모주(秋麰酒)’ 방문을 수록하고 있는데, 그 과정이 동일하다. 다만, <술방>의 ‘가을보리술’에서만 물을 사용하여 ‘미음’처럼 술밑을 빚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추모주(秋麰酒)’ 이외 ‘모미주’, ‘모미소주’, ‘피모소주’까지 포함하면 의외로 보리를 원료로 한 양주가 상당히 대중화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이라도 ‘모미주’를 비롯한 ‘피모소주’의 복원과 개발에 힘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보리의 소비는 농가의 소득증대와 함께 수입대체 효과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며. 특히 가장 ‘한국적인’, ‘한국인의 소주’ 개발도 가능하리라고 본다.
◈ 秋麰酒法 <群學會騰> <農政會要> <林園十六志> <增補山林經濟>
◇술 재료:보리 1말, 묵은 누룩가루 1홉
◇술 빚는 법:①가을보리를 도정을 많이 하여 보리쌀을 만든 뒤, 백세 하여 물에 담가 불린다.②보리쌀을 담근 물을 자주(3~4차례) 갈아 주면서 10일간 불려 부식시킨다.③반쯤 부패한 보리쌀을 손으로 비벼보아 저절로 문드러지면, 다시 씻어 말갛게 헹궈 건진 뒤, 시루에 안쳐서 무른 고두밥을 짓는다.④보리밥 1대접(반 되)에 누룩가루 1홉(주먹)을 섞어 넣고, 절구로 찧어 인절미 같은 술밑을 빚는다.⑤물기가 없는 술독에 술밑을 담아 안치고, 종이로 단단히 밀봉하여 서늘한 곳에서 14일간 발효시킨다.⑥술독 뚜껑을 열어보아, 향기가 가득하고 맛이 좋으면 채주하여 사용한다.
* 방문 말미에 “독에 담고 좋은 종이로 단단히 봉하여 서늘한 곳에 놓아둔다. 열나흘 지나 향기가 방 안에 가득하게 되면 비로소 떠내어 먹는다.”고 하였다.
<추모주법(秋麰酒法)> 秋麰精舂水浸經宿後換新水三四次十日旣過則半腐傷以手按之自碎然後去所浸水蒸爛以碓舂之而每麰米一椀許入陳好麯一掬和搗納無水氣之甕以好紙封固置凉處二七日後則香氣滿室方可取用
<추모주법(秋麰酒法)> 秋麰精舂水浸經宿後換新水三四次十日旣過則半腐傷以手按之自碎然後去所浸水蒸爛以碓舂之而每麰米一椀許入陳好麯一掬和搗納無水氣之甕以好紙封固置凉處二七日後則香氣滿室方可取用 <三山方>.
<추모주방(秋麰酒方)> 秋麰精舂水浸經宿後換新水三四次十日旣過則半腐傷以手按之自碎然後去所浸水蒸爛以碓舂之而每麰米一椀許入陳好麯一掬和搗納無水氣之甕以好紙封固置凉處二七日後則香氣滿室方可取用.
◈ 가을보리술 <술방>
◇술 재료:가을보리 (1말), 좋은 누룩 (4되), (끓는 물 5되)
◇술 빚는 법:①가을보리를 정히 씻어 물에 담가 하루 밤 불린다.②불린 보리를 3~4차례 찬물을 갈아주어 3일을 지낸다.③보리를 손으로 만져보아 부서지거든 다시 새물에 헹궈서 건진다.④불린 보리를 방아에 찧어 가루로 만든다.⑤보릿가루를 시루에 안쳐서 떡을 찐 후, (보리 양의 3배가 되는 끓는 물로 다시 익혀) 미음을 만들어 차게 식힌다.⑥보리 미음 1사발에 묵힌 좋은 누룩 한줌씩 섞어 항에 담아 안치고, 종이로 굳게 봉한다.⑦술독은 서늘한 곳에 두어 7일간 발효시킨다.
* 주방문 말미에 “칠일 후면 향기 집에 가득하리라.”고 하였다.
<가을보리슐>은 보리 졍히 쓰려 물의 담가 밤 와 삼 물 가라 담가 삼일이 지난즉, 반니나 상여 숀으로 만져도 부셔진 후, 방하방의 으되, 보리미음 발의 묵은 죠흔 누룩 쥼식 셧거 어 물긔 업 방의 너허 죠희로 구지 봉여 셔늘 곳데 두면 칠일 후면 향긔 집의 가득니라.
◈ 츄모쥬 <諺書酒饌方>
◇술 재료:가을 보리쌀 1사발, 누룩가루 1줌
◇술 빚는 법:①가을보리를 가장 많이 깎아 도정을 한 다음, 물에 담가 밤재워 불려 놓는다.②다음 날 물을 갈아주는데, 물을 3회 정도 갈아주어 10일간 보리쌀을 썩힌다.③보리쌀이 반은 썩어서 손으로 비벼서 부서지면, 제 물을 따라내고 (새물로 깨끗이 씻어 헹궈서) 물기를 뺀다.④보리쌀을 끓는 물솥의 시루에 안쳐서 고두밥을 익게 쪄낸다.⑤쪄낸 보리쌀을 방아에 찧되, 보리쌀 1사발에 대해 누룩가루 한줌씩 섞어 찧는다.⑥술밑이 다 찧어졌으면, 물기 없는 술독에 안치고, 서늘한데 자리를 잡아 앉힌다.⑦두터운 종이로 술독 아가리를 가장 단단히 싸매서 발효시키는데, 14일 후가 되면 열어보지 않아도 향기가 집안에 가득하다.
<츄모쥬> 을보리 장 이 슬허 리고 믈에 가 밤 잔 후제 새 믈을 세 번 라 열흘 후제 반은 서것거 손으로 부븨여 아 딘후제 갓던 믈란 업시고 닉게 방하예 디호 디흘제 그 사발애 무근 누록 줌식 섯거 디허 믈 업 독에 녀허 서늘 노코 두터온 죠로 독부리 장 이 야 두닐웨 휘면 여디 아녀도 향내 집의 니라.
박록담은
* 현재 : 시인, 사)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객원교수, 중요무형문화재 인증심의위원, 한국문인협회원, 우리술교육기관협의회장 활동 중이며, 국내의 가양주 조사발굴활동과 850여종의 전통주 복원작업을 마쳤으며, 국내 최초의 전통주교육기관인 ‘박록담의 전통주교실’을 개설, 후진양성과 가양주문화가꾸기운동을 전개하여 전통주 대중화를 주도해왔다.
* 전통주 관련 저서 : <韓國의 傳統民俗酒>, <名家名酒>, <우리의 부엌살림(공저)>, <우리 술 빚는 법>, <우리술 103가지(공저)>, <다시 쓰는 酒方文>, <釀酒集(공저)>, <전통주비법 211가지>, <버선발로 디딘 누룩(공저)>, <꽃으로 빚는 가향주 101가지(공저)>, <전통주>, <문배주>, <면천두견주>, 영문판 <Sul> 등이 있으며,
* 시집 : <겸손한 사랑 그대 항시 나를 앞지르고>, <그대 속의 확실한 나>, <사는 동안이 사랑이고만 싶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