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台祐 교수의 특별기고
가양주(家釀酒)와 세시풍속(中)
나는 항상 三道酒란 술을 마신다. 이 술은 사람 사는 마을에는 없는 곳이 없다. 무엇으로 만든 술인고 하니 菊花酒도 梅實酒도 竹葉酒도 아무것도 아니다. 역시 쌀과 누룩으로 빚은 술이다. 그런데, 三道酒란 이름은 어디서 왔는가.
仲尼先生이 애써 가꾸신 쌀과 老聃翁이 손수 만든 누룩으로 悉達多上人이 길어 오신 샘물로 빚은 술인 緣故다. 컬컬한 막걸리지만 淸新한 맛이 天下一品이다. 나는 半 40에 三道酒를 배운다. 몇 해나 醉해야 나를 볼는지 알 수 없다. 李白은 仙酒만 마셨으니 神仙이 되었지만 이 三道酒는 神仙도 부처도 聖賢도 아무것도 될 리 없다.
목적이 있어서 술을 마시는 者는 술 힘을 빌어서 싸움하려는 者를 두고는 다시없을 것이다. 神仙이고 부처고 聖賢이고간에 目的이 있어서 마시는 술은 下之下品이요 俗酒다. 술의 진미를 玩味하는 心境이면 濁酒·燒酒·藥酒 할 것 없이 可謂 道酒라 할 것이다.
오늘 달 아래 술을 거른다. 내 손수 따 온 머루와 솔잎과 當歸로 빚은 술이다. 내 앉은 키와 가지런한 술독이 아랫목에 앉아 있고 술지게미 말라붙은 체도 윗목에 걸려 있고 달 잠긴 샘물도 童僧이 길어 왔다. 두 팔을 걷어붙이고 주물러 걸러 내니 방 안에 이미 향기가 가득하다. 造釀에 同樂한 枕虛和尙이 한 사발을 들이킨다. 뒷입맛 다시는 소리가 북 소리 같다. 영서상통(靈犀相通)으로 請할 겨를도 없이 들어서는 석규화상(昔規和尙)에게 선 채로 한 사발을 권한다. 검은 눈동자가 슬며시 옆으로 돌아간다. 어디 보자 나도 한 사발. 그만하면 훌륭하군. 會心의 微笑가 떠오른다.
머루 맛에서 老子가 웃는다.
솔잎 맛에서 佛陀가 웃는다.
當歸맛에서 孔子가 웃는다.
머루의 이 깨끗한 맛이여. 혓바닥을 몇 번 다시는 동안 날아가는 허무적멸(虛無寂滅). 솔잎의 씹을수록 향내 나는 그 妙味. 當歸의 香氣는 너무 짙어서 쓰기까지 하되 훌륭한 補血劑다. 그러나 이제 걸러 낸 술 머루는 어디 갔느뇨. 솔잎은 어디 갔느뇨. 當歸는 또한 어디 갔느뇨.
지재차산중(只在此山中)이언 마는
운심부지처(雲深不知處)로다.
三道酒를 마시고 道를 그만 잊고 만다.
중당 때 시인 가도(賈島, 779-843)의 시어의 절제의 미를 보여주는 <심은자불우(尋隱者不遇)>의 3연 ‘只在此山中’과 4연 ‘雲深不知處’에서 읊은 것을 취하여 ‘다만 이 산 가운데 계시련만, 구름이 깊어서 그 곳을 알지 못하겠다네’라고 하였다. 찾아간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는 광경을 동자와의 대화 형식으로 쓰고 있는데, 구름과 소나무 등이 나타내는 의미는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것처럼 여유 있고, 신비스럽게 만든다. 이런 삶은 궁극적으로 세상과 등진 사람들의 삶의 여유를 대변하는 것 같다.
그의 시는 북송(北宋)의 시인 소동파(蘇東坡)와 같은 무렵의 시인 맹교(孟郊)와 더불어 ‘교한도수(郊寒島瘦)’라 평한 것처럼 풍족한 정서는 결핍되어 있지만, 서정적인 시는 매우 세련되어 세세한 부분까지 잘 묘사되어 있다. 그는 1자 1구도 소홀히 하지 않고 고음(苦吟)하여 쌓아올리는 시풍이었으므로, 유명한 ‘퇴고(推敲)’의 어원이 된 일화는 그의 창작 태도에서 생기게 된 것이다.
◈ 5월 단오절(端午節), 창포주(菖蒲酒)
‘연중 가장 양기가 왕성한 날’이라고 하여 명절로 삼은 음력 5월 5일을 ‘단오(端午)’라고 한다. ‘수릿날’, ‘天中節’이라고 불린다. 이 날의 절식으로 수리취 절편과 제호탕(醍醐湯), 옥추단(玉樞丹), 앵두화채 등과 함께 ‘부의주(浮蟻酒)’에 창포뿌리를 찧어 만든 ‘창포주’를 마신다. ‘창포주’는 옛날에 단오절을 3대 명절로 여겼던 까닭에, 이때 행사용 술로 쓰는 한편, 창포의 향기가 나쁜 병과 사악한 것을 쫓아준다고 믿는 벽사풍속(辟邪風俗)에서 유래한다.
5월은 만물이 성장을 도모하는 성장의례가 행해지는 시기이다. 인간의 일생과 대비하자면 청춘의 아름다움이 흐르는 시기이기도 하다. 춘향이와 이 도령의 사랑이 5월 단오에 이루어지는 것도 어울리는 시간적 배려이다. 5월은 석류꽃이 빨갛게 피는 달이라 일명 석류달이라고 하는데 특히 5월 23일은 대나무 생일날(竹醉日)이라 한다. 이 날 대나무를 옮겨 심으면서 대나무의 푸른 매실처럼 무성히 자라라고 염원하면서 매실주를 마셨다고 한다.
5월 석류꽃이 핏빛을 머금으니
대나무 생일도 십삼일에 속한다.
수풀 동산에서 청매(靑梅)술을 잔뜩 먹고
꽃과 같이 훈훈하고 대와 같이 취한다.
‘창포주(菖蒲酒)’는 음력 5월 5일 단옷날의 술을 말한다. ‘창포주’는 단옷날의 행사용 술인 동시에 창포의 향기가 모든 나쁜 병을 쫓는 것으로 믿어 왔다. 그 때의 술 이름을 액막이 술이라 하였다. 흔히 마시는 평범한 술이 아니라 악마나 마귀가 싫어하는 액을 막는데 효력이 센 ‘창포주’와 웅황의 가루를 넣어 담은 술 ‘웅황주(雄黃酒)’를 마셔야 했다. 그런데 5월 5일, 그것도 햇볕이 쨍쨍 내려 쬐는 오시(午時)에 마셔야 효력이 있다고 하여 이 날만은 대낮부터 ‘창포술’에 취했던 것이다.
창포를 술에 담근 것이 ‘창포주’이고, 유황의 분말을 술에 탄 것이 ‘웅황주’이다. 사실은 창포의 부리를 간 것과 유황가루를 함께 집어넣은 것인데, 유황 기운이 세면 ‘웅황주’, 창포 기운이 세면 ‘창포주’라고 하였다. 서양에서는 유황의 냄새를 지옥의 냄새라고 하지만 합리적인 사상을 지닌 중국인은 벌레가 싫어하는 유황이면 귀신도 싫어하리라고 생각하여 이를 ‘액막이 술’이라고도 하였다.
◈ 유두연(流頭宴), 유두음(流頭飮)
음력 6월 보름을 ‘유두날’이라고 하는데, ‘流頭’는 ‘동류두목욕(東流頭沐浴)’의 준말이다. “동편의 맑은 시냇가에서 머리 감고 몸을 씻는다”는 의미인데, 여름철 더운 날씨를 이겨내는 방법이며 동쪽은 양기가 가장 왕성한 곳으로 청(靑)에 해당하기에 ‘동류(東流)’를 택하여 불길한 것을 씻어내는 것이다. 풍속 가운데 매월 15일 보름날에 행해지는 풍속이 많기 때문에 ‘유두일(流頭日)’ 역시 정월 대보름과 8월 한가위, ‘백중절(百中節)’, 시월 ‘시제(時祭)’ 등과 함께 6월의 큰 명절로 이어오고 있다.
이는 고려 명종(明宗) 때의 학자 김극기(金克己)의 문집에 신라(新羅) 동도(東都) 지방에 전해 내려오는 풍속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몸을 청결하게 하고 하루를 맑게 노닐면서 지내면 상서(祥瑞)롭지 못한 기운을 제거하고 여름철의 더위를 먹지 않는다는 의미로 행해지는 토속적(土俗的)인 풍속이다.
6월 15일 문사들이 주효(酒肴)를 장만하여 계곡이나 수정(水停)을 찾아 풍월을 읊으며 하루를 즐겼는데 이것을 ‘유두연’이라 한다. 또 맑은 물에 머리를 감으며 ‘동류어욕발(東流於浴髮)’의 시를 읊었다. ‘동쪽으로 흐르는 맑은 물에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하며, 청유한다는 뜻이다.’ 유두 무렵에는 과일이 새로 나기 시작하므로, 수박이나 참외 등을 따고 떡을 빚어, 사당에 올리고 나서야 먹는 옛 조상들의 관습으로, ‘추원보본사상(追遠報本思想)’에서 생겨난 아름다운 풍습이다. 이날 선비들은 술과 고기를 장만하여, 계곡이나 樓亭을 찾아 풍월을 읊으며 하루를 즐기는, 풍류가 깃든 풍속으로 발전했다.
고려 명종 때 학자 김극기(金克己)는 자신의 문집을 통해 “경주 풍속에 6월 보름에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아 불길한 것을 씻어 버린다. 그리고 술 마시고 놀면서 유두잔치를 한다”고 소개했다. 소두(梳頭)ㆍ수두(水頭)라고도 표기했다. 수두란 물 마리(마리는 머리의 옛말)로서 ‘물맞이’라는 뜻이 있다. 오늘날에도 신라 옛 지역인 경상도 지역에는 유두를 ‘물맞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런 풍습에 기인해 무더위가 시작되는 초복과 유두날을 즈음해 선조들은 다가 올 한여름 무더위를 불길한 기운으로 생각했는지 산수 좋은 곳의 폭포를 찾아 물맞이를 하면서 무더위를 대비했다.
◈ 伯仲日과 盂蘭盆會
7월 보름을 ‘백중(伯仲)’이라고 하는데, ‘百種’, ‘中元’ 또는 ‘亡魂日’이라고 한다. 이 무렵부터 과일과 채소가 많이 나와, 옛날에는 ‘백 가지 곡식의 씨앗을 갖추어 놓았다.’하여 유래한 명칭이다. 민가의 풍속으로, 이 날 밤에 채소와 과일, 술 밥 등을 차려 놓고 돌아가신 어버이의 혼을 부르는 풍속이 있어, 이날을 ‘亡魂日’이라고 한다.
또 농사일에 수고한 사람에게 술과 안주를 내어 위로하는 행사를 벌이는가 하면, 서울 사람들은 성찬을 차려 산에 올라가 노래하며 춤추는 것으로 낙을 삼았다 한다. 7월은 역법에 이르기를 황종의 양기가 쇠약하고 임종의 음기의 도움을 받아서 만물이 성장할 수 있는 달이다. 대체로 8절기의 하나인 입추가 6월에 들 때도 있으나 대개의 경우 7월에 들고 처서, 말복 등이 7월 세시행사로 되어 있다. 7월에는 칠석날이 있으며, ‘백종일(百種日)’ 혹은 ‘망종일(亡魂日)’로서 불가에서는 행사가 있는 달이다.
이 날은 농번기 동안 열심히 일한 일꾼들에게 휴식을 제공하고 잔치를 열어 그 동안의 노고에 감사하는 축제일에서 비롯됐으며 불가에서는 스님들이 재를 올리고 불공을 드리는 큰 명절로 여겨왔었다. ‘일본의 추석(오봉)’으로도 알려져 있는 ‘백중맞이’는 우리나라에서는 불교의 행사로 행해지고 있으나, 원래 중국에서 들어왔으며 불교에서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백중’을 ‘망백일(亡魄日)’,즉 ‘죽은 혼백의 날’이라고 해서 술과 음식을 차려놓고 굿판을 벌이곤 했다. 이날은 정결한 마음으로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는 정도의 민속으로 되어왔고, 독특한 풍속으로 농촌에서는 이날을 전후하여 곡식들이 풍작을 이루기를 바라는 큰 굿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호미씻이’의 놀이가 있었고, 그네뛰기, 사물놀이 등의 행사와 씨름대회가 열리기도 했으며 이 날을 명일로 치기도 했다. 아직도 불교계에서는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백중의 의미와 조상천도 및 효행이라는 ‘우란분절(盂蘭盆節, 죽은 부모의 극락을 기원)’의 뜻을 함께 살리는 행사를 기획하는 등 백중을 맞는 자세가 남다르다.
이 날을 초연(草宴) 또는 머슴날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7월 15일을 전후하여 마을 형편에 따라 택일한다. 각 가정에서는 제각기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산이나 계곡에 모여 가무로 하루를 즐긴다. 이 때 마을 중에서 곡식이 가장 잘된 집의 머슴을 뽑아 일을 잘했다고 칭찬하며 술을 권하며 위로하고 삿갓을 씌워 소에 태워 마을을 돌아다게 한다.
◈ 추석절의 신도주(新稻酒)
음력 8월 15일을 추석이라고 한다. 수확의 명절이자 달의 명절이라고 하는 추석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내려오는 고유의 풍속으로서, 농경문화의 습속이다. 농경민족이었던 우리 조상들은, 봄에서 여름 동안 가꾼 곡식과 과일들이 익음에 수확할 계절이 되었고, 연중 가장 큰 만월을 맞이하여 ‘신도주(新稻酒)’와 오려송편을 빚어 조상께 천신하고 다례를 지낸다. 또 조상의 산소에 가서 성묘하는 농공감사제를 지내왔다. 이에 대한 내용은 다시 상세하게 전개된 다.
◈ 중구(重九)의 국화주(菊花酒)
<동국세시기>에 “서울 풍속에 남산과 북악산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시고 ‘국화전’을 먹으며 즐기는 풍습이 있는데, 이는 등고(登高)의 옛 풍습을 답습한 것이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날 높은데 올라 ‘국화주’를 마시면 화를 면할 수 있다는 중국 후한대의 풍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 때가 되면 ‘제비가 강남으로 돌아가고, 뱀이 돌에 입을 닦고 땅 속에 들어가 동면하고, 갈까마귀와 기러기가 온다’고 한다.
음력 9월 9일은 양수가 겹쳤다는 뜻에서 절기상 좋은 때로 여겨, 제삿날을 모르는 사람과 연고자 없이 떠돌다 죽은 귀신의 제사를 지냈다. 또 햇곡식으로 떡과 술을 장만하여 추석과 같이 차례를 지냈다. 이 때의 술은, 초가을 찹쌀로 술을 빚고 술이 익을 때쯤 국화꽃잎을 따서 깨끗이 씻은 후, 함께 섞어 넣었다가 며칠 후에 걸러서 마시거나, 말린 국화꽃잎을 주머니에 담아 술항아리 안에 넣고 밀봉해 두면, 국향이 그윽한 ‘국화주’가 된다. 또 별식으로 ‘국화전’을 빚어 먹었다.
중양절에 마시는 술은 대부분 ‘국주(菊酒)’, ‘황화주(黃花酒)’, ‘낙영주’(落英酒, ‘초사’의 아직 만개하지 않은 추국의 꽃봉오리를 따다 먹네라는 구절에서 비롯된 명칭), ‘동리주’(東籬酒, 도연명의 시 중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 꺾어 들고’라는 구절에서 비롯됨) 등으로 불렀다. 이처럼 국화주는 9월 9일 중양절에 마시는 술의 대명사로 불렸던 것이다. <다음호 계속>
남태우 교수
▴문학박사/중앙대학교 명예교수▴전남대 교수▴중앙대학교 도서관장▴중앙대학교 교무처장▴중앙대학교 문과대학장▴한국정보관리학회장▴한국도서관협회장▴대통령소속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