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하의 취중진담
썸 타듯 술을 마시자
시쳇말로 남녀 간 밀당을 ‘썸 탄다’고 한다. ‘썸 탄다’라는 뜻은 남녀가 활발하게 연애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호감을 가지고 알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고 하는데 나이 지긋한 분들에게는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다.
지금의 장년층이 젊었을 때 남녀 간 밀고 당기는 미묘한 심리 싸움을 ‘밀당’이라고 했다. 줄다리기 하는 것처럼 좋아하는 척 하다가도 관심 없는 척 한다. 밀당을 지나치게 하다가 대어를 놓치고 땅을 치고 후회를 한두 번 해 봐야 그 때서야 사람 보는 눈이 조금은 뜨이기 마련이다.
썸을 타든 밀당을 하든 기성세대들에게는 한 낱 아련한 향수일 뿐이다.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한 여자의 남편이 된 이상 알콩달콩 잘 사는 것이 최상의 낙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술을 마심에 있어서도 썸타듯 마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계절이다.
연말이 코앞이라 이런저런 행사가 많아 술 마실 날이 많아졌다. 매년 되풀이 되는 일이긴 하지만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술잔을 앞에 놓고, “너 나 좋아하니, 난 어제도 너 때문에 혼이 났는데 오늘도 따라왔어…”하며 술잔을 바라보라. 그러면 술잔이 “그래 무지하게 좋아하거든요”라고 하거든 “오늘은 너를 만날 생각이 없거든, 내일 연락할게”하며 한번 쯤 뜅겨보라.
이태백은 달을 보고도 수작(酬酌)을 걸며 술을 마시고, 술 한말을 마시면 시 1백수(李白一斗詩百篇)를 읊었다고 하지만 결국 술에 취해 달을 잡으려다가 호수에 빠져 죽었다고 하지 않은가.
술은 직장인들에 있어 일상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묘약(妙藥)이라고 칭송이 자자하지만 묘약 너무 좋아하다가 큰 코 다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명심할 때다.
때문인가 요즈음 직장인들 가운데는 망년회를 술자리 대신 건전한 게임을 하는 것으로 대신 하는 경우도 있고, 연극이나 영화를 보는 것으로 대체 하는 직장도 많다지만 그래도 한두 잔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술이란 참 묘한 것이 오늘은 절대로 안 마신다고 굴뚝처럼 맹세했건만 저녁노을이 질 때쯤이면 슬슬 생각나게 하는 것이 술이다.
“악마가 사람을 찾아다니기에 바쁠 때는 술을 대리인으로 보낸다”는 말도 있고, “전쟁과 흉년, 전염병 폐해를 모두 합쳐도 술의 해악과 비교할 수 없다”는 영국 정치인 윌리엄 글래드스턴(1809~1898년)의 경고도 있지만 술을 멀리하기엔 마음 약한 것이 주당들이다.
술에 대해 한번 생각 해 볼 것은 술은 아무리 장점이 많더라도 자칫 방심해 임계치를 넘어서면 불행과 비극의 씨앗이 된다는 것이다.
술을 평생 마셔도 건강을 유지하는 도사들은 바로 이 임계치(臨界値)를 지키며 마신다고 한다. 가령 주량이 100이라고 할 때 70정도를 임계치로 정해 놓고 마시면 큰 탈 없이 술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술 도사들의 충언이다.
지나친 음주가 문제가 되는 것은 건강을 해치는 것도 문제지만 술을 지나치게 마시고 각종 사고를 치는 것이다.
과거에는 술을 마시고 사고를 치면 ‘주취감형(酒醉減刑·술에 취해 저지른 범죄에 대해 형벌을 줄여주는 것)’ 보편화 되었다.
서태영 변호사는 <피고인에게 술을 먹여라>에서 판사가 피고인의 형량을 감해 주는 방법 중 하나로 변호사에게 피고인은 “술을 마시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하라고 유도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청와대 홈페이지의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주취감형폐지’ 청원이 줄을 잇고, 신창현 의원은 술에 취한 채 강력범죄 등을 저지른 사람이 단지 술에 취했다는 이유로 감형 받을 수 없도록 한 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해서 술에 취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르면 감형 받기 보단 가중처벌이 예상되고 있는 판국이다.
고사 성어 중에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는 말이 있다. “너무 멀지도 않게, 너무 가깝지도 않게”하라는 뜻인데 술을 두고 한말은 아닐까.
<삶과술 발행인>